오수환 (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 주:

오수환님은 헌법재판소 결정 전에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 전에 병역거부를 해서 병무청으로부터 고발 당한 병역거부자들은 헌재 결정 이후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여호와의증인들은 대부분 무죄를 선고 받지만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병역거부자들은 반대로 대부분 유죄 선고를 받고 있습니다. 재판은 벌써 몇년을 끌어오고 있는데다, 재판에서 검사나 판사의 질문은 양심의 자유를 오히려 침해하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유죄가 나와서 감옥에 갈지, 혹은 무죄가 나오더라도 대체복무는 과연 언제 시작해서 끝날 수 있을지, 모든 상황이 불확실합니다. 답답하고 한치앞도 안 보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런 상황이 병역거부자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은 정체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1년 반 동안 휴학을 하고, 월세를 아끼기 위해 부모님 집으로 내려가고,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고민해보곤 했다. 분명히 병역거부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그러했고, 주변의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구 남친도 아니고 2달에 한 번 꼴로 다시 만나자고 전화하는 경찰을 빼면 아무런 일도 없었고, 최근에는 추가 기소가 없을 것이라는 소식마저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점을 따거나 빡세게 일을 해서 유학 비용을 모았을 텐데, 언제 재판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냈다는 빡침 한 스푼. 공부 계속 할 거면 유학 가야 하는데, 입법까지 반 년, 시행까지 n개월, 심사에서 떨어지면 혼파망, 통과해도 대체복무를 하는데 3년이 걸린다고 하니, 진작 거부할 걸, 지금이라도 재판 받을 수 있을까, 진로를 바꿔야 하나 싶은 후회와 이런저런 생각들.

비단 직업과 진로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체감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 나는 병역거부를 하고 조사를 받는 과정이 스스로에게 솔직하여 생각과 행동과 말을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 믿었다. 일관된 자아는 법원에 앞서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원한 것은 내가 왜 병역거부를 했는가, 어떤 고민을 했는가가 아니라 결심을 한 계기, 결심을 한 시간, 결심이 드러난 행동들을 깔끔한 타임라인으로 정리하는 것이었고, 나는 이 모든 것에 취약했다. 올해 3월 두 번째 경찰 조사를 받고 난 후, 경찰 조서들 사이에 다른 점이 있으면 거짓 진술의 증거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헌재 판결 이전에 처음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어차피 유죄라 생각하여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던 것이 기억났고, 허겁지겁 자료를 청구하여 비교해보았다. 다행히도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었다. 세 번째 경찰 조사를 받을 때에는 아예 앞선 두 조서의 내용을 외우고 갔다. 처음 병역거부를 고민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처음 병역거부를 결심한 건 2013년 봄이다, 처음 관련 행사에 참여한 것은 2014년 7월이다 등등. 이런 자기서사를 정리하고 다닌 것은 10년 전 한창 커밍아웃을 하던 때를 제외하면 처음인 것 같다. 몹시 신선하고 찜찜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게 정말 나의 병역거부 이야기인가? 대체복무제 심사를 받을 때에도 되풀이될 풍경일까? 사실 특별한 계기랄 것도, 서사랄 것도 없는데.

지난

지난해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국회는 올해 말까지 대체복무법을 만들어야 하고 병역거부자들은 내년부터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유죄 선고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까다롭게 양심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절차는 없었지만, 일련의 재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과정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관된 서사를 만들 듯 일관된 생각을 만들고, 적절한 표현을 짜서 예상 답안을 입에 익히고, 이전에 했던 대답들을 달달 외우고, 이 모든 것들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들을 긁어모으고, 무엇보다도 꼬투리 잡히지 않고! 딱히 병역거부에 거창한 의미 부여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처음 병역거부를 했을 때와 지금은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사회적 실천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내 삶을 꾸려 나가는 데 지속적인 지표가 되고 다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번거롭고 기약 없는 행정절차의 굴곡진 단계들을 통과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미세한 틈바구니에 몸을 구겨 넣기 위해 애를 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 정체도 아니고 퇴보일까?

한편, 병역거부를 하기 전에 거쳤어야 하는 과정을 이제야 겪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병역거부의 이유를 설명하라면, 한마디로 그것은 군대가 있기 때문이다. 군대 가라고? 군인 되라고? 그게 뭔데? 요구를 받았으니 고민해보았고,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거절하였다. 그래서 나는 군인이 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이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가늠해보았지, 정의로운 폭력에 대해서, 어떤 형태의 군대가 가능하고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국제적인 분쟁 상황이나 방산 시스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전쟁을 재생산하는 구조와 요인들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이를 끊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까다로운 검증 절차가 고민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 셈이다. 꼭 그렇게 다양하고 복잡하고 역사 깊은 문제들에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말로 풀어낼 수 있어야만 병역거부를 할 수 있나, 너무 문턱이 높은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러지 않고 어떻게 양심을 증명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이 모든 질문들이 정말 양심을 증명하고 있냐고 묻는다 해도 대답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글쎄? 내 서사를 구구절절 풀어내고 싶지도 않고, 논술문제 풀 듯이 논리적인 언어를 전개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럼에도 그 자체로 인정해달라고 말하는 건 너무 유아적일까? 지금 시점에서 너무 사치스러운 주장일까? 그렇다면 뭐라도 해야지, 그렇게 원하는 활동 증거라도, 정의와 폭력과 평화에 대한 찰진 대답이라도 쌓아놔야지 싶으면서도, 조용히 누워 이야기도 논리도 증거도 없는 마음들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그것은 정체된 마음일까, 양심일 수 있을까. 정체하다 못해 퇴보하는 것 같은 나는 어떤 마음들과 함께 다시 병역거부를 고민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