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쭝 (비폭력 트레이너)
‘매드 프라이드’는 정신장애 당사자, 정신의료 서비스 생존자,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친 혹은 광기어린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끼고자 만든 축제이다. 1993년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되어서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지난 26일에야 1회 행사가 열렸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가보니… 사실 축제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부스도 아담하게 딱 15개였고, 행진 코스도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아주 짧은 거리였다. 뭐, 지금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퀴어 퍼레이드도 20년 전에는 매우 아기자기했으니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부스에선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사진이나 시, 수필, 미술 작품을 전시했다.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부스도 있었고, 하얀 가면에 알록달록 색칠을 하는 부스도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장애인들이 선보인 춤과 연극도 참 보기 좋았다.
행진에는 강압적인 병원 치료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침대 밀기(Bed Push)’ 퍼포먼스가 등장했다. 전 세계 매드 프라이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을 보여주듯 노란 나비가 뒤를 이었다. 마침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던 어르신이 한참을 쳐다보더니 “이건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미친 게 무슨 자랑이냐고?
이 날 행사는 정신장애인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언론의 눈길을 끌었지만, 특히 내 마음을 가장 잡아 끈 것은 바로 ‘자부심’이라는 키워드였다. 사실 이미 정신장애인들의 모습은 꽤 많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각종 사건사고 뉴스,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는 정신장애인은 언제 무슨 짓을 할 지 모를 위험한 사람,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할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해야 한다. 스스로가 자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는 ‘미친 게 자랑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미쳤다’는 표현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참 많다. 흔히 무언가에 열정을 집중할 때 ‘OO에 미쳤다’고 말한다. ‘자동차광’, ‘영화광’ 같은 단어도 미칠 광(狂) 자를 쓴다. 금기와 제한을 넘어섰을 때도 이런 표현을 쓴다.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도른자’는 개성이 뚜렷하고 존재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미친 속도’, ‘미친 퀄리티’에서처럼 아예 ‘미쳤다’는 것이 칭찬으로 쓰일 때도 있다.
이렇게 보면 미친 것은 그저 남들과 다른 고유한 개성일 뿐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매드 프라이드가 ‘매드’와 ‘프라이드’를 붙여서 축제 이름을 만든 것, 이 축제에서 다양한 정신장애인의 예술 작품을 보여주는 것 역시 그러한 자부심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마치 “우리는 미친 것이 부끄럽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선언 같다.
내 병명은 내가 짓는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힘든 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정신승리’와는 다르다. 정신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불편한 일일 것이다. 개인의 마음가짐만으로 이 불편과 고통이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퉁칠 수는 없다.
아마도 장애인(또는 여러 소수자들이)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 불편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적∙육체적∙사회적인 고통을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경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일 거라 생각한다. (과정이기 때문에 결코 끝이 없다.)
이날 행사 부스에서 만났던 많은 정신장애인들은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쓰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시와 그림과 사진과 춤과 연극과 행진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스는 ‘당사자 연구’에 대한 전시였다. 특히 ‘자기 병명 정하기’라는 개념이 눈에 띄었다. 주치의로부터 받은 의학적 병명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고생의 패턴을 파악하고 동료나 관계자와 함께 새로 병명을 짓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부정적인 경험도 보물이 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대처방법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 전시된 연구 사례를 보면, 한 정신장애인은 종일 보이지 않는 감시자에게 감시 당한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감시자는 그가 아는 사람과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 그를 왕따 시킨다. 그러나 그는 연구를 통해 대처방법도 알아냈다. 동료들이 웃음을 보여주면 감시자로부터 피할 수 있다. 이 장애인은 벌써 24년째 병을 겪고 있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볼링동호회에도 참여하고 친한 동료들과 관계도 만들었다. 자신의 마음 고생 패턴을 정리하고 이를 표현했다. 그는 분명히 미친 사람이지만 동시에 매우 존엄한 주체이다.

정신병원이 없는 나라로 알려진 이탈리아 정신보건혁명의 상징 ‘마르코 까발로’. 1973년 이탈리아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 폐쇄 운동을 시작하며 만든 정신장애인들의 자유를 의미하는 상징물.
용감한 사람들 곁에 함께 서기
정신장애인이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려 축제까지 벌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토록 온 사회가 자신의 존재를 경멸하고 혐오한다면, 그 정체성을 긍정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 하기까지는 정말 큰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여전히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종종 길에서 환청과 대화하고 있는 듯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움찔 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적당히 멀리 자리를 잡는다. 티를 내지는 않지만 어쨌든 무섭고 불편하고 싫은 것이다.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그가 날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게다가 나는 그 동안 몸과 마음에 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종종 만났으며 좋은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매드 프라이드에도 참가하고 그 후기를 쓰는 지금도 나는 편견과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하면서 나는 조금은 편견과 혐오를 덜어낸 것 같다. 함께 행진을 해보니 정신장애인들은 참 용감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을 병명 안에 가두지 않고 사람들 앞에 드러냈다. 이 혐오의 시대에 끝내 병원 침대를 밀고 거리로 나섰다. 나는 이 멋진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는 것이 기뻤다. 그들이 자랑스러웠고 곁에 선 자신도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계속 만나다 보면, 오래 묵은 내 편견과 혐오도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감시자와 싸우는 친구에게 웃음을 보여주는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신장애인들이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나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매드 프라이드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축제만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도 정신장애인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혐오를 깨는 좋은 방법은 자주 만나서 함께 교류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