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희(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이 책은 역사학자 가토 요코가 중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한 강의록을 엮은 것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군사주의 국가로 가는 일본의 여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짬짬이 읽기 좋다고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일본 사회에 담담한 반추를 유도하는 책이다. 전후 일본에서 전쟁의 책임과 반성을 이야기 하던 리버럴과 좌파들이 힘을 잃고 패전의 책임이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이 책은 과연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건조하게 되짚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일단 이 책은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일본이 어떤 이유로 군국주의 국가로 치닫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 쓰여진 일본의 과거를 타산지석 삼아 한국의 현재를 읽게 되었다.
우선 전자를 이야기해 보자면,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 여러 번의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여 현재의 국가가 되었다. 이름 그대로 “일본제국”에서 “일본국”이 된 것이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면, 크게 두 가지를 열거 할 수 있겠다. 첫째는 국체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일본은 어디까지나 ‘만세일계의 천황’을 중심으로 한 천황의 국가였다. 민주공화국에 사는 한국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체제였다. 패전 후 일본은 주권재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현재 일본의 천황은 (어디까지나) 법률상으로 국가 통합의 상징이고, 이 또한 일본 국민의 민의에 기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쉽게 말해, 지금의 일본 천황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상징이고, 법률상으로 아무 권한이 없으며, 명확히 국가원수도 아니라서 국민 위에 군림 할 수도 없다. 나는 이를 반쯤 농담 삼아 “신성한 인간문화재 같은 위치”라고 이야기 한다.
두 번째는 평화헌법이다. 일본은 패전 후 미군정의 영향으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 헌법으로 일본은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침략 전쟁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본 자위대의 재무장 문제나 여러 가지 국제정치적 이슈로 인해 과거의 일본과 현재의 일본의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곤 한다.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일본은 현재 국민의 의무에서 국방의 의무가 없다. 일본 국민들은 납세, 노동, 교육의 의무만을 진다. 게다가 자위대도 법적으로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군법이 없다. 자위대원들은 근무 이탈 시에 공무원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재군비로 인해 규모도 크고 첨단화 되어있지만, 시스템 상으로는 그러하다.
일본인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자신들의 손으로 군부의 폭주를 저지하지 못했으며, 국익을 위해 전쟁을 서슴지 않는 체제를 통제하지 못했고, 결국 패전국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아직도 UN에서 경제적, 정치적 위상에 걸 맞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임팔 전투에서 영국령 인도군에게 생포된 일본군 병사들. 일본은 군부의 독단으로 무리한 전쟁을 계속했다. 특히 임팔 전투는 아사자가 속출한 어처구니 없는 작전이었다. 사진출처: nam.ac.uk
흔히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전쟁을 불러왔고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이 패배로 귀결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야기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사실 외형상으로는 입헌, 즉 근대 국가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 그에 발맞추어 민권 신장이라던가 국제 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개념을 수용한다던가 하는 ‘소프트웨어적’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했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일본이 당시 충분히 전쟁을 피하거나 외교적 해결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체주의적인 국체론과 국익 개념 때문에, 그리고 당시 외부의 제국주의와의 협업 때문에 결국 군국주의로 진화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제까지의 단순 도식적인 근현대사의 인식이 아닌, 전쟁은 좀 더 복합적이고 국제 정치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층위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일본은 이러한 것들을 잊어 버리고 단순히 당시 국제 정세상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핵무기라는 잔인한 방법으로 일본인들을 살해했다는 이상한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잊혀진 과거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이 책에서 현재 한국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한국은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너무 많은 파벌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에 통일된 정치 체제를 수립하지 못했다. 백남준의 말마따나 “맑시즘, 바쿠닌, 프루동, 부하린, 생디칼리즘, 페이비언 사회주의 등등” 온갖 사상이 횡행했다. 그런 와중에 북과 남의 지도자들은 전면전에 돌입한다. 3년에 걸친 전쟁 후 남한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휴전이 체결되었다. 그 이후 남북은 수많은 국지전과 테러 행위를 겪으며 70여 년 가까이 지내왔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기 손으로 전쟁을 일으켜본 적도, 전쟁을 끝내본 적도 없다. 한국인들에게 전쟁은 언제나 상수처럼 자리잡은 것이었고, 전쟁은 늘 만성 질환처럼 우리와 함께 존재해 왔다. 물론 자기 손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게 좋을 리 없겠지만은, 이러한 인식 속에서 우리들은 1950년 이후 전쟁이 무슨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나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천재지변같은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아울러 이 책은 전쟁이 어디까지나 경제적 이익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추동된다는 사실도 면밀히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당시 군부가 특수전비를 통해 계속 중일전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다든가, 일본군은 사실상 독자적인 이익 추구가 가능했기 때문에 상당한 소득을 얻고자 전쟁을 찬성하는 여론을 이끌어 냈다든가 하는 것이다.
한국도 사실 별로 다르지 않다. 분단과 대립은 군수산업에게 막대한 영향을 안겨주고 있고 정치권과 군수산업계에는 퇴역한 군인들이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다. 60만 대군이라는 숫자 또한 UN의 군사원조를 얻기 위함이었음이 이미 1950년대에 진작에 밝혀졌고, 현대의 첩보전을 다룬 르포를 토대로 한 영화들은 남한 또한 북한에 공작원을 파견한 일이 왕왕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은 여전히 전쟁에 대한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전쟁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인 양, 전쟁이 순결한 강토에 침입한 외적의 소행인 양 자기 합리화만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를 깨고 보다 직설적으로 전쟁을 마주하기 위해 이 책은 오히려 한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힐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일본이라는 사실을 변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국제정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면 전쟁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이 책으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수행중인 한국이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출 수 있을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먼 훗날 후대의 사람들이 “당시 한국은 그럼에도 전쟁을 선택했다”라고 평가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