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국민과 난민 사이에서

2016년 5월, 전쟁없는세상에서 진행한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학업을 이유로 병역 연기가 어려워진 시점에 외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방법을 고민하던 때였다. 병역거부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가 점차 주목받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성소수자 병역거부자로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는 2000년대부터 계속되던 터였다.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서 만난 활동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난민 심사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지난하며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임을 강조했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며, 생활이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삶을 몇 년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었다. 병역거부에 따른 형사처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국민으로 감옥에 수감되는 일과 난민으로 이주하는 일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발생했다. 난민 지위 인정에 관한 공식 절차는 기본적으로 심사를 신청할 국가에 도착한 이후에 시작되는데, 이는 난민 신청인이 출신국의 경계를 넘어 체류국 내지 비호국에 진입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징집대상자가 만 28세가 되는 해부터는 단기 국외여행을 이유로 하는 여권 발급이 제한되기에 적어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국경을 넘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현재 한국은 징집대상자가 만 25세가 되면 해외로 나갈 때마다 병무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국외여행의 경우는 만 27세까지로 제한된다. 해외로 여행을 갈 때 귀국보증서를 작성해야 했던 시대를 지나서 만 24세까지는 5년 유효기간의 복수여권이 나오는 시대가 찾아왔지만, 징집대상자가 만 28세가 되는 해부터는 ‘부득이한 사유’을 제외하고 국외여행을 제한하는 조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아닌 입장에서, 병무청 담당자가 내게 알려준 국외여행 허가 예외 사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친인척의 경조사였고 다른 하나는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이요?!” 너무 황당해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성 간의 결혼 관계만을 배타적으로 인정하는 사법 체계, 비혼 인구의 정치적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 관행과 제도, 친밀성의 연결망을 혈연과 계약에 기초한 친족 관계로만 협소하게 이해하는 사회적 인식이 만들어낸 벽 앞에서, 비혼으로 사는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국민국가의 영토 안에서 어떤 권리가 보장되고 어떤 권리가 정지되며 어떤 권리가 아예 상상조차 되지 않는지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관련해서 몇 가지 내용을 덧붙이자면,

  1.  2013년, 헌법재판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징집대상자가 만 27세가 될 때까지만 단기 국외여행을 허용하는 제도에 전원 일치 합헌 결정을 내렸다(2011헌마475).
  2.  2019년, 병무청은 ‘병역기피자의 해외여행은 금지된다’라는 이유로 병역법 위반 재판 중인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해외여행 신청을 불허했다. 이 중에는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서 법원에서 이미 여행 허가를 받은 사례와 무죄 취지로 하급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 이후 항소심 판단을 기다리던 사례가 포함되었다. (각주1)
  3.  2020년, 정부는 만 18세 이상 37세 이하의 모든 징집대상자에게 5년 유효기간의 복수여권 발급을 허가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자격 심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병역거부에 따른 사법 절차는 그 자체로 끊임없이 자격을 심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느 활동가의 말처럼, 그간 병역거부자는 법적 처벌과 사회적 비난을 감당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이 양심과 신념에 기초한 것임을 입증하는 회로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병역거부와 병역기피의 구분이 주요 논쟁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고, 병역거부를 병역기피의 하나로 비난하기 위해서든 거부와 저항의 의미를 확장하기 위해서든 둘 사이의 구분을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병역거부에 대한 일률적인 형사처벌이 완화되고 대체복무제가 마련된 변화로 인해 병역거부자는 이른바 진정한 양심을 규명하려는 이들 앞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로 이동하게 됐다. 병역거부와 병역기피라는 무의미한 구분이 자격심사에 통과한 진짜 병역거부자와 탈락한 가짜 병역거부자라는 조악한 구분으로 반복되는 모양새다.

재판 과정의 측면에서도 국회에 비군사적 대체복무의 법제화를 주문한 헌법재판소 결정과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로 과거와 다르면서 비슷한 풍경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신청하기만 하면 병역거부가 인정되며 이에 따른 대체복무도 자동 면제되어서 사실상 신청서 제출로 어떠한 병역도 수행하지 않는 노르웨이의 사례는 아주 먼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지옥문이 열렸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만큼 모욕적인 물음이 잇따르고 갑갑한 판결이 나온다. 양심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으로서 모두가 누려야 하지만, 현실은 대법원이 제시한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라는 안전한 정답에 가까운 사람들을 솎아내고, ‘천사 같은 얼굴로 세계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평화주의자’라는 허상에 들어맞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심사의 연속이다. 표준에 가까운 몸들만을 정답으로 인정하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국가는 병역거부자에게 검찰과 법원, 국방부와 병무청, 그리고 일반 대중이 가진 고정관념에 부합한 서사만을 고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예비군 훈련 병역거부자에게 군 복무 중에 사격훈련을 하지 않았는지 물은 검사가 있었다.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한 병역거부자가 ‘훈련소에서 진행된 사격훈련 이외에 총을 쏜 적은 없다’라고 답하자 이번에는 근무 중에 총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지 추가로 물었다. 병역거부자가 ‘사격훈련장과 근무지가 멀어서 평소에 들을 일이 별로 없다’라고 답하자 검사가 ‘그럴 리 없다’라며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물었다. 만약 총소리를 들었다고 했다면, ‘사격훈련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게 피고인의 양심에 부합하지 않았을 텐데 별다른 문제 없이 군 복무를 마친 것으로 보아 양심의 일관성이 없다’라는 아무 말 대잔치가 의식의 흐름대로 펼쳐졌을 것이다. 병역거부는 전쟁에 저항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직접 행동의 하나로서 집총거부보다 넓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차지하더라도, 총소리를 들은 경험이 양심과 신념의 진정성을 부인할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가족 중에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가 없기에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 판결한 판사가 있었다(“피고인의 가족 중에서 병역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이 양심적 병역거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종교를 신봉하거나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논리라면,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해야 하는 법관(헌법 제103조)을 임용할 때, 가족 중에 법관이 있는지 검토해서 있으면 가점을 하고 없으면 감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반대로 가족 중에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가 있기에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 판결한 판사도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종교 생활을 했고 정식으로 침례를 받은 사실도 인정되지만, 피고인의 양심은 가족이나 같은 종교집단 사람들의 영향으로 생겨난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것일 가능성이 있다.”(각주2) 그렇다면 이번에는 가족 중에 법관이 있을 때는 감점을 하고 없을 때는 가점을 해야 하는 걸까?

트랜스젠더 연구자 샌디 스톤Sandy Stone은 자격과 조건을 갖춘 몸, 이른바 정상적인 인구 중 하나로 스며들 수 있는 몸을 형성하는 과정을 ‘텍스트적 폭력textual violence’이라고 부른 바 있다.(각주3) ‘모든 인간은 여성 또는 남성으로 태어나서 여성적 또는 남성적 존재로 성장하고 자신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 인식한다’라는 신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정체성과 몸에 대한 풍성한 서사를 써왔다. 그러나 이른바 의료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의 다채로운 경험을 ‘남성 몸에 갇힌 여성’ ‘여성 몸에 갇힌 남성’ 범주로 환원하고 트랜스젠더를 병리화하는 일에 나섰다. 호르몬 투여와 외과 수술을 비롯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트랜스젠더는 진짜와 가짜를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납작하고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강요받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샌디 스톤은 진짜 주체로 인정받는 몸은 무엇이 진짜고 누가 정상인지 규정한 텍스트가 규율과 처벌, 강제와 폭력으로 직조한 것임을 지적한다.

숨 쉬는 모든 순간마다 지정 성별과는 다른 성별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고 그에 따라 기대되는 성별 역할에 충실해 온 ‘진성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결코 변한 적 없는 양심을 고수한 ‘선천적 병역거부자’가 아니라면, 매우 짧은 면접 시간 동안 자신이 경험한 박해의 위협을 여러 증빙자료를 가지고 일목요연하게 진술할 수 있는 ‘완벽한 난민 신청인’이 아니라면, 텍스트적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언제든 가짜라는 낙인이 찍힐 각오를 해야 한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 이들, 진짜와 가짜를 분류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이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이미 정해진 답변을 되풀이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야 우리 국민이, 우리 병역의무자가, 우리 ‘여성’이 안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진짜 주체는 보호하고 가짜 주체는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했다고 뿌듯해하는 집단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자의적인 기준에 반영된 정상성과 규범성에 어떻게 도전해야 할까?

 

자격 없는 이들의 곁에서

2년간의 재판을 거치면서 종종 ‘주제넘은’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재판부에 내가 얼마나 훌륭한 병역거부자인지 호소하기 위해서 그간 해온 신앙생활, 비판적 연구, 시민단체 활동을 길게 적어갈 때면, 혹시라도 내가 ‘진정한’ 병역거부자로 인정받아서 대체복무 심사의 문턱을 높이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론 나보다 더 오래 열심히 활동한 경력이 있고 진솔한 소견서를 제출한 병역거부자들도 유죄 선고를 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민망한 웃음이 나온다. 그간의 삶의 여정을 적어 낸 2심 소견서 결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국가가 저를 적법한 병역거부자로 인정하든 정당하지 않은 병역기피자로 판단하든 저는 그저 소박하고 정직하게 양심과 신념에 따른 삶을 앞으로도 이어나갈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피고인 ‘주제’에 건방진 건 아닌지 염려가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야 할 말은 했다는 후련한 마음이었다. 다만 재판부가 피고인의 소견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2020년 5월 13일, 세계 병역거부의 날(5월 15일)을 기념해서 ‘자격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가짜 신청인인 건 아닌지, 다른 목적이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살면 되는데도 굳이 심사를 신청한 이유는 무엇인지 자격에 자격을 검증하려는 질문 앞에 놓인 이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경험을 차분하게 전달할 기회는 박탈된 이들, 말 한마디 꺼낼 때마다 곳곳에 깔린 악의적인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 조심해야 하는 이들, 진정성이 없다고, 충분한 사유가 없다고, 진술이 불일치한다고 실격 통보를 받는 이들, 때로는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대답을 거부하고 침묵하면서 순응과 저항을 넘나드는 이들이 모였다. ‘가짜 난민’ 프레임에서 벗어나 난민 신청을 권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기 위해서(은지, 웅), ‘국가가 허락한 양심’을 넘어 폭력과 불화하는 삶을 모색하기 위해서(형수),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성별을 증명하라’라는 법원의 오만함에 맞서 성별에 대한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서(한희), 그런 난민, 병역거부자, 트랜스젠더는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모였다.
‘자격 없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의 ‘주제넘은’ 도전은 무엇을 해낼 것인가? 올해 초,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성명을 인용하면서 이에 답하려고 한다.(각주4) 

우리는 존재에 대한 비난을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바꿈으로써
‘자격 없는’ 이들로서, ‘자격 없는’ 이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것이다.

 

온라인 방송 바로 보기 링크 (클릭)

병역거부자의날 토크쇼 ‘그런 난민, 병역거부자, 트랜스젠더는 없다’ 실시간 온라인 방송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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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양심적 병역거부 결정에도 병무청 출국 불허… “신혼여행도 못가”, 한겨레, 2019. 6. 10.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7343.html
  2. ‘양심적 병역거부’ 여호와의 증인 5명 1심 유죄… “진정한 신념 아냐”, 뉴스1, 2020. 3. 29. https://www.news1.kr/articles/?3889121
  3. Sandy Stone, “THE ‘EMPIRE’ STRIKES BACK: A POSTTRANSSEXUAL MANIFESTO”, in Julia Epstein and Kristina Straub eds., 『Body Guards: The Cultural Politics of Sexual Ambiguity』(New York: Routledge 1991). 원문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andystone.com/empire-strikes-back.pdf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웹진 《인-무브》에 해당 논문의 한국어 번역본이 게시되어 있다.- 샌디 스톤, “제국의 역습: 포스트성전환자 선언(1/2)”, 백소하 옮김, 단감·김호영 감수, 2019. 11. 12. https://en-movement.net/276?category=718342- 샌디 스톤, “제국의 역습: 포스트성전환자 선언(2/2)”, 백소하 옮김, 단감·김호영 감수, 2019. 11. 25. https://en-movement.net/277?category=718342
  4. [논평]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20. 2. 6. http://www.sisters.or.kr/load.asp?subPage=120&board_md=view&idx=5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