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6월 28일), 모두가 군대에 가야만 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군입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회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이 헌법에 불합치 한다며, 다만 2019년 12월 31일까지 병역법의 효력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해 11월 1일 대법원은 처음으로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2월 27일 국회에서 대체복무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의미가 무색하게 대체복무 법안은 많은 문제점과 더불어 개선 지점을 과제로 남겼습니다. 실제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애초 국방부가 제시했던 법안보다도 인권적인 측면에서 후퇴한 법안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은 분명 징벌적인 성격이어서 유엔 등 국제 사회에서 개선하라는 권고를 받을 게 뻔했고, 교정시설로 한정지은 복무영역은 대체복무 도입의 사회적인 효과를 반감시키는 결정이었습니다. 특히 현역 군인의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군인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한 것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복무제도의 세부사항이 규정되어 있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도 여러 우려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행규칙에서는 ‘부모 및 친분이 있는 3명 이상의 주변인 진술서’와 ‘초등학교, 중학교 및 고등학교 학교생활세부사항 기록부 사본’을 필수적으로 제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일관되게 군대나 폭력을 멀리해왔는지를 살펴서 양심의 일관성을 판단하는 취지일 것입니다. 양심의 일관성은 중요하지만 일관성이라는 것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성찰하는 존재입니다. 군대 갔다온 사람이 생각과 신념이 바뀌어 예비군 훈련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복무 관련 법에서도 예비군 훈련 거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양심 형성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병역거부가 양심 표출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의 일관성은, 양심이 어떤 흐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를 겪는지 그 과정이 과연 합리적인지를 상식에 맞춰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재판 과정에서도 우려점은 찾을 수 있습니다.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개별적인 개인의 양심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가 속한 집단(종교인이라면 교단 혹은 그가 어느 시민사회단체 회원인지)을 준거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심을 판단하기 어려운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헌법상 양심의 자유는 철저하게 개인의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것이고 그것이 외부로 발현될 때는 주로 집단의 결정과 다른 양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 속한 양심을 심사한다면서 집단을 준거로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양심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거짓 양심을 찾아내겠다며 형사사건 범인 색출하는 방식으로 검사가 병역거부자에게 무리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종교재판처럼 병역거부자가 속한 교단의 교리를 따지고 든다거나, 곤란한 상황을 던져놓고 이분법적인 대답을 강요하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고 대체복무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대체복무 심사에서 그대로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도가 원래 입법 취지대로 잘 안착된다면 대체복무제는 병역거부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동안 헌법 조문 안에서만 존재했던 양심의 자유가 실질적인 권리로 인식될 것입니다. 대체복무 영역이 복지, 안전, 의료 등으로 확장된다면 사회의 안정망을 확충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사회 취약계층의 삶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안보의 개념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열어줄 것입니다.
이런 장미빛 미래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인권과 평화를 위한 대체복무제는 실현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의 문제입니다.국회와 국방부, 병무청, 법무부 등 대체복무와 연관 있는 국가 기관들 모두 의지를 갖고 제도 개선를 개선하고 대체복무제가 본래의 취지에 맞게 잘 안착화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많이 늦은 대체복무제 도입이지만, 늦은 만큼 더 훌륭한 제도로 만들어 갈 기회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2020년 6월 28일 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