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람 (전 녹색연합 활동가, <미세먼지 클리어> 공저자)
몇 년 전 여름, 오래된 다가구 주택 꼭대기 층에 에어컨 없이 살던 나는 정말 죽겠다 싶었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까페에서 최대한 버틸 만큼 버티다 들어온 새벽 한 시의 집 온도는 30도를 우습게 넘겨버렸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모텔을 가려 해도 역 근처의 모텔들이 이미 죄다 만실인 적도 있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폭염은 사람을 죽였다.
지난 2017년 서울대 김호 교수팀은 2009년부터 4년간 서울의 전체 사망자를 대상으로 폭염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가난, 교육수준 등 사회경제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울 안에서도 사회경제적 요인과 함께 녹지 면적, 병원과의 거리에 따라 폭염 사망률의 차이가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교수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겨울과 여름, 일교차 등 기온 변동성이 커서 기후변화의 신호가 오히려 늦은 편이라 한다. 이미 투발로나 방글라데시와 같은 섬나라에서는 국토가 물에 잠기고 있고 사람들은 삶의 기반을 잃고 있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이, 기후변화 역시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부터 밀어낸다. 가장 변두리에 있는 이들이 목숨과 삶의 기반을 흔들며 변두리가 점차 좁아진다. 폭염이 사람을 죽이는 구나 하고 이제야 알아차렸다면 이제야 우리의 순서가 되었을 뿐이다. 같은 온도의 폭염과 열대야가 한국의 모든 이들에게 같은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듯 기후변화의 영향과 양상은 국가와 지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대규모로, 땅을, 삶의 기반과 공동체 전체가 세계에서 퇴출당하는 이들이 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 물에 잠기는 나라, 강물이 말라버리고 있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 변두리가 뭉텅뭉텅 떨어져 나갈 때마다 생존을 위한 갈등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갈등이 인종, 종교, 국제정치적 문제와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전쟁도 불사하게 된다
여기 수단 다르푸르 내전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시작된 수단의 내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며칠 전의 뉴스는 다르푸르 120여 명의 주민이 내전으로 인해 학살되었다고 보도했다. 인종, 분쟁, 난민, 구호단체와 같은 단어로 뉴스가 구성되어있었지만, 많은 이들은 여기에 ‘기후변화’를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단 다르푸르는 기후변화로 인한 21세기의 최초의 전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수단의 인구는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의 부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계는 대체로 유목을 하며 살아가고 아프리카계는 농업을 삶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1956년도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한 이후, 이슬람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 계층과 토착민 그리고 소수민족 간 갈등이 계속되었고 평화협정과 같은 제도적 노력이 있어왔으나 이것이 충분한 중재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1980년대 파국 수준의 대가뭄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는데 지난 20여 년간 강수량의 1/3이 줄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매우 심각한 가뭄을 다시 겪었다. 토지는 사막화되었고 이것이 민족으로 구분된 농민과 유목민 사이의 갈등에 불을 질렀다. 수단 북부에서 목축업을 해오던 아랍계 유목민들은 가축에게 먹일 풀을 찾아 이동했다. 농민들은 안 그래도 황폐화 되어가는 들판에 가축들이 들어와 풀을 뜯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유목민은 유목민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막아서기 시작했고, 이것이 폭력과 내전을 심화시킨 것이다.
게다가 수단의 산림과 농지는 대규모로 중국, 한국, 유럽과 같은 국가와 투자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세계화, 금융화에 따른 대규모 토지 수탈이 이뤄지면서 저개발 국가의 도시와 영토의 권리가 사라지고 있다. 소위 선진국과 자본은 2000년대 이후 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대규모로 농지를 구매하고 있다. 이렇게 팔려진 땅의 37%에 야자나무가 심겨지는 데, 우습게도 이것이 선진국의 친환경정책이라 불리는 바이오디젤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다. 게다가 수단과 같이 금이나 우라늄, 유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국가들은 유전이나 광산개발을 피할 수 없다. 대규모 토지거래, 자원개발, 군사적 갈등과 기후변화는 식량과 물을 확보하기 위한 저개발국가의 능력을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하고 있다.
전쟁과 기후변화, 기후변화와 폭력
가뭄, 사막화, 강우량 부족, 토지 수탈, 숲의 황폐화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며 이것이 서로 상승작용을 불러온다. 여기에 인종, 민족적 갈등이 더해져 군사적 긴장감을 불러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쟁은 그 자체로 땅을 황폐화한다. 과거에는 고엽제를 숲에 뿌리고, 하천을 일부러 오염시키는 것을 군사적 전략으로 선택했지만, 지금은 댐을 막아 하류의 물 공급을 중단하는 것들이 선택된다. 시리아 IS가 정부군을 공격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이 전략은, 식량과 생존을 위한 식수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또 다른 폭력을 자극할 것이다.
수단에서 사막화로 몸살을 앓아온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의 숲 50%가 지난 30여 년간 사라졌다. 여기에는 농민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아몬드나 파스타치오, 향나무 숲도 포함된다. 이미 국가와 사회시스템은 농민과 가난한 이들을 구제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얻을 수 있는 토지를 둘러싼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은 공동체와 숲, 토지를 황폐화하는 데 일조하고 공동체와 토지는 공생공락의 관계를 깨뜨린다. 기후변화가 취약한 지역의 사회안전, 방재 시스템의 붕괴와 기존의 군사적 갈등을 자극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홍수는 수십만 명의 피난민과 소요사태를 불러왔다.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었으며 치안이 심각하게 혼란해지자 야외 감옥까지 만들어졌다. 이는 재난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과 지역에 가장 강력하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재난이 폭력을 자극할 때, 취약성이 국가 차원으로 존재하는 곳에서 군사적 갈등은 더 첨예할 것이다. 폭력 사태를 중재하고 방지할 힘이 국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국가의 조직된 군대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폭력 기구와 조직에 의해 나타날 것이다. 독일의 기후변화 관련 공공정책기관인 아델피(Adelphi)는 기후변화에 따른 물이나 식량부족 현상이 국제적 테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 이로 인한 재난이 폭력과 전쟁의 원인이 되거나 기존의 폭력과 전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취약한 집단의 희생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평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하랄트 벨처, 2010, 「기후전쟁」, 영림카디널
사스키아 사센, 2016, 「축출 자본주의」, 그물코
박세환, 2018, 지구온난화의 악영향과 대응방안, 환경부.
권혜숙, ‘기후악당’된 대한민국… “한국인 식량난민될 가능성 높다”, 국민일보, 2020.07. 27
김길원, “저소득층 폭염 사망위험 일반인보다 18% 높아…지역편차도“, 연합뉴스, 2017. 07.21
유엔환경계획한국 협회 https://unep.or.kr/main/main.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