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란 빈타겐 (Stellan Vinthagen, 메사추세츠주립대학 저항학 교수, WRI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올해 팬데믹 버전 평화캠프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과 사회운동에 관한 번역글 세번째입니다. 역시 War Resisters’ International(WRI)에서 발행하는 잡지 Broken Rifle 113호(2020년 8월 발행)에 실린 글이고요 영어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그리고 드뎌 <2020 평화캠프 팬데믹 버전: 슬기로운 사회운동 탐구하기> 참가신청 페이지가 열렸습니다. 첫번째 팬데믹과 군사주의 블로그 글 포스팅하면서 예고했던 일정에서 온라인 워크숍 일정에 조금 변경이 생겼어요. 패널 한 분이 미국에서 참여하시게 되어서 그리 되었습니다. 자세한 캠프 내용은 아래 설명을 참조해주세요. 모두 캠프에서 만나요!
- 1회차 오프라인: 10월 24일 (토) 서울시 은평구(예정), 오전 10시~오후 6시, 보드게임으로 배우는 사회운동전략이란 무엇인가?
- 2회차 온라인: 10월 31일 (토), 화상회의 플랫폼 ZOOM(예정), 낮 1시~2시30분, 팬데믹과 군사주의 (국가는 팬데믹 상황에 어떻게 군사적으로 대응하는가)
- 3회차 온라인: 10월 31일 (토), 화상회의 플랫폼 ZOOM(예정), 낮 3시30분~5시, 팬데믹과 사회운동 (사회운동은 이에 어떻게 도전해왔고 도전할 것인가)
- 평가 및 작별인사 (온라인): 11월 3일 (화), 화상회의 플랫폼 ZOOM(예정), 저녁 7시30분~8시30분
자세한 내용보기 및 참가신청은 요기로!
이 팬데믹 위기 동안, 집콕을 하면서, 나는 우리가 멀리 사는 동료 활동가들, 시민들과 온라인에서 관계를 더 깊게 맺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살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교육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미래를 위한 광범위한 동맹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를 바란다.
우리의 보통 생활 방식에서 벗어난 이 단절의 기간 동안 나는 또한 5월 1일 시위나 기타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소규모 시위 행진과 같은 의례적인 형태의 시위와 결별하기를 바란다.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국가의 이데올로기인 지역에서는 아무것에도 도전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1932년 노동당이 제1정부를 구성한 이후 매년 5월 1일 노동당의 총리가 노동자들과 함께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도시지역, 특히 수도에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걸으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200년 전 운동에서 물려받은 신화가 있다. 워싱턴으로, 런던으로, 베를린으로, 그리고 또 다시 다른 도시로. 사람들은 여전히 행진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공허하며, (자유주의적 진보적) 반대를 위한 아편일 뿐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시위가 있은 후 아룬다티 로이가 말했다. 주말 시위로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회사를 말 그대로 막아야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재교육하면서, 나는 대신 우리가 아나키스트들로부터, 직접행동의, 똑같이 오래되었지만 잊혀진 또 다른 전통에 집중하는 가치를 보길 바란다. 문제를 발견하면 대안을 만들거나(공정무역과 같은), 봉쇄, 토지 및 공장의 점령을 통해 상대에게 저항함으로써 그 문제를 다룰 운동을 만드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대안을 만드는 것으로써 저항한다. 그러나 물론, 항의 행진을 불법으로 만드는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행진이 직접행동으로 타당하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시위는 일종의 시민불복종이다.
시민불복종, 파업, 개입의 힘은 시위와 호소보다 훨씬 크다. 우리 민중들이 그들의 법을 준수하고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공장, 기업, 대학 내에서 계속 생산해 내는 한, 모든 핵심 문제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봉쇄조치(lockdown) 이후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급진적 상상력과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필요한 광범위하고 대중적인 동맹을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위해 건설하고 있는 새로운 광범위한 운동 연합에 궁극적으로 중요한 전략은 무엇인가? 세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하나는 시위지향적인(protest-oriented) 운동, 다른 하나는 저항지향적인(resistance-oriented) 운동, 그리고 나에게 있어 가장 희망적인 사회 변화의 신호는 세번째 “건설적 저항”이라고 불릴 수 있는 토착적 전통-대안의 제정을 통한 저항이다.
시위지향적인 운동의 가장 분명한 예는 현재 흑인인권운동(또는 BLM)의 놀라운 조직화를 들 수 있다. 이미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운동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시위운동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작은 도시와 대도시에 걸쳐 다른 주 전역에 파급 효과를 내고 있다. 경찰 예산 삭감과 함께 인종차별적 경찰 폭력의 기소 가능성, 그리고 경찰의 군사화를 저지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면서 정치적 결과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이 운동은 2013년부터 지역리더십, 소셜미디어, 전문 단체(민권변호사 등)와의 제휴 및 협력의 강력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NFL 선수와 같은 미국인 특유의 대표주자들이 있어 현재 우리가 보는 시위물결의 토대를 마련해왔다. 이러한 방식으로 BLM은, 물론 얼마나 많은 것이 불분명한지, 이 시위가 창출한 틈새가 어떻게 처리될지에 달려있지만 시위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향은 시위가 더 작고 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미래의 또 다른 예로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저항과 직접행동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국 국민파업(People’s Strike)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엘리트들로 하여금 사회 변화를 강제하는 시도이다. 이 캠페인은 새로운 종류의 5월 1일 행동으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미시시피주 잭슨의 반제국주의자들의 흑인 해방 공동체에 의해 시작된 6월 1일, 7월 1일, 그리고 그 이후 일련의 행동들이 뒤따랐다. 여기서 사람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좌파와 진보적인 동맹을 온라인으로 조직하고 있으며, 월마트, 아마존, 홀푸드 같은 기업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결합하고 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직장 태업이 일어나고 있으며, 세입자 파업, 자동차 경적 시위 및 기타 활동도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바이러스라는 슬로건 아래 단결하고 있다. 만약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참여한다면, 그리고 그들의 파업이 경제 엘리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은 강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가 희망적이지만, 나는 실험을 통해 “건설적 저항”의 한 형태를 발전시키는 운동이 전략적인 방법의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미시시피주 잭슨에 있는 Cooperation Jackson의 흑인 임파워먼트 운동, 미네소타주 화이트어스 보호구역에 있는 Native Americans, 멕시코 치아파스에 있는 사파티스타스, 시리아 북부 로자바의 쿠르드족, 브라질의 무토지 노동자 운동 MST가 포함된다.
브라질의 땅 없는 노동자들의 운동은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조직인 MST(Movimento dos trabalhadores rurais Sem Terra— the Brazilian Landless Workers Movement)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큰 사회 운동 중 하나이다. 이 운동의 참여자들은 대개 빈민가 노동자나 도시 빈민가 거주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토지 개혁을 위한 투쟁으로 단결했다. 이것은 불모의 땅 점령을 통해 촉진된다. 지금까지 2천여 개의 점령을 완료해 35만 명 이상의 무토지인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정부가 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이다. 토지 점령을 기다리는 동안 활동가들은 임시 야영지(acampamentos)에서 산다. 토지 점거 후에는 임시 주택이 건설된다. 만약 정부가 토지를 수용하고 재분배한다면, 그들은 마침내 영구 정착지(자산)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
MST는 유기농 농업 협동조합, 성평등, 점령한 땅에 세운 자신들의 야영지에 대한 민주적 거버넌스, 자율 조직 마을, 협동조합 사업, 보건소, 초등 및 성인 학교, 그리고 그들의 자율적이고 개방적이며 등록금이 없는 활동가 대학으로 구성된 “새로운 브라질”에 대한 비전의 일환으로 대안 농업 개발의 야심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MST가 토지 점유를 수행할 때, 그들은 사유 재산법을 위반하게 된다. 그들은 검은 플라스틱 텐트로 임시 마을을 짓고 학교를 만들고 땅을 경작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난폭하게 퇴거조치 되지만, 다시 돌아와 재건한다. 변함없는 끈기로 그들은 토지권을 주장하고 비무장의 집단적 힘, 대중 매체, 도시 연합(변호사, 정치인, 언론인 등)으로 새로운 사회를 방어한다. 핵심은 단순히 당국에 대해 자신들을 대신하거나 국가로부터 법적 인정을 받기 위해 시위를 벌이거나 요구하거나 로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지금 여기, 지금 스스로 필요한 것을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협동조합, 생태 농업 기술, 지역 민주주의 기관, 프레이리(Freire) 교육학을 갖춘 학교를 개발하여 문해력과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정치적 인식도 가르친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를 창조한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불공평한 토지 분배 중 하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또한 그들이 구상하는 대안적인 제도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따라서 저항행위를 통해 정치윤리적 미래를 구현한다. 그들은 건설적인 저항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기존의 부당한 사회를 대체하려는 일정 수준이나 규모에 도달하면 우리는 당연히 “혁명적” 과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MST의 사실상의 혁명적 프로세스는 확산되고 확장되는 지역 혁명으로 구성된다. 1980년대 이후 MST가 해방시킨 땅은 거의 쿠바 크기에 해당한다.(MST는 총 7,500만 헥타르의 면적을 획득했다. 쿠바는 110,000 평방킬로미터이다.) 이는 MST가 남미에서 새로운“쿠바 혁명”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이번에는 비무장인, 지역화되고 분산된 혁명이다. 국지적 혁명적 과정은 MST가 국가의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고 가능할 때 국가와 협력하고 필요할 때 저항함으로써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대안을 제정하여 저항하는 “건설적 저항”은 사회 변화를 위한 투쟁에서 “예”와 “아니오”를 결합한 저항의 한 형태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매우 다른 전략이다. 건설적 활동은 기존의 문제에 대해 존엄성, 자원, 임파워먼트 및 희망적인 대안을 구축하는 한편, 대규모 저항은 사람과 자연,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파괴하는 지배 엘리트들의 권력체계를 허물고 방해한다.
따라서 건설적인 저항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교육하고, 전략과 창의적인 전술을 재정 및 개발하고, 관계를 구축하고, 동맹을 형성하고, 우리가 조직하는 방법을 재고하는 측면에서 팬데믹 기간 동안 할 일이 많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현재의 코로나19 위기에서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시스템 위기와 이 행성의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훨씬 더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