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희(인권운동공간 활)
지금은 코로나19와 전쟁 중
코로나19와 함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삶을 산 지 1년째, “코로나 전쟁서 이길 ‘백신 방패’가 만들” 1)어져 미국과 유럽에서 접종이 시작됐다. 백신접종으로 일상을 회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지만 “‘코로나 전쟁’ 승전까지는 아직 수개월2)” 남았기 때문에 여전히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는 필수적이다. 다른 나라가 접종을 시작하자 한국의 상황은 대체 어떤지 정치권의 공방은 시끄러웠고, 언론 기사도 연일 넘쳤다. “한국이 ‘백신 전쟁’에서 밀려3)”났다며, “영화 스타트렉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속도를 의미하는 워프 스피드(warp speed)를 붙인 워프 스피드(초고속) 작전4)”을 펼친 미국의 백신 개발과 확보 과정을 보도하기도 했다.
윗글은 최근 12월 백신과 관련한 기사로 구성한 내용이다. 백신뿐이겠는가. 2020년 내내 ‘코로나와의 전쟁’을 치루는 말들과 함께했다. 대통령이 “코로나 전쟁 반드시 승리하자5)”며 정부를 믿어달라고 요청하고, 총리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라며 “불법행위자 즉시 검거6)”할 것을 주문했고, 클럽과 지역에서 코로나 확산이 우려되면 “감염폭탄 막아7)”내라며 경찰과 정부의 합동단속을 실시하고 “확진자 부주의·무책임이 폭탄8)”이라며 비난했다.
코로나와 ‘전쟁 중’이라는 프레임은 긴급함, 실존적 위협, 위협의 침략적 성격9), 전략적 대응의 필요성, 전면적이고 잘 조율된 정부 대응의 필요성을 떠올리게 한다10). ‘전쟁’은 신속한 중앙집권적 지휘 아래 통일된 국민적 행동을 요구한다. 이에 반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와 같아 방역조치를 따르지 않(못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도덕적 비난이 아닌 진압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방역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한다고 여겨진다. 또한 전쟁은 승리를 목표로 한다. 승리로 가는 길에 영웅의 이야기와 희생의 미담이 전면에 나설 때 오류와 실패의 이야기는 눈에 띄지 않거나 기억에서 사라진다. 오류와 실패에 대한 확인은 뼈아픈 과정일 수 있지만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만든다. 그러나 검토와 토론, 설득과 같은 민주주의의 방식은 신속한 대응의 필요성에 무력해진다.
우리는 정말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와 전쟁 중인 것일까? 이 전쟁의 승리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종식’ 또는 ‘극복’인 것일까?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평화가 찾아오는 것일까? 이 질문들의 답을 구하려면 지금 여기, 코로나라는 적으로부터 구해야 할 생명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불안과 공포가 만드는 것
불확실성은 불안을 증대시키고 안전의 요구가 우선되는 상황을 만든다.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면 강제적인 조치를 쉽게 수용하게 되며 시민의 수동성을 강화하기 쉽다(평소에도 정치권력이 안전을 가장 중요한 사회 가치로 만드는 이유이기도). 불안감은 손쉽게 행정 권력의 권한을 키운다. 생명 안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행정(공권력 포함) 재량권의 폭이 확장됐다. 전시(戰時)처럼 명령과 통제에 중점을 두는 행정력이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높이지만 손쉽게 유보할 수 있었다. K방역을 지탱하는 추적-사실상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을 감시하는 기술-을, 전파를 막는다는 격리–그러나 격리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예방적 코호트-를, 확산을 예방하는 집합금지-코로나로 해고가 되어도 항의할 수 없는 집회금지-를 생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지속하고 있다.
공포에 휩싸이면 불안을 경감시켜줄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그 방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의 검증은 뒤로 미뤄도 지금 당장 무엇인가 진행되는 것이 확인되어야 안심이 된다. 신속한 동선공개가 빠르게 감염자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확진자가 다녀간 곳을 확인해야 감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마스크를 써야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만남이 될 수 있다는 신뢰가 만들어진다. 동선공개와 마스크 쓰기는 나와 공동체를 지키는 방어막으로 사회적 실천이며 동시에 이런 방역의 실천은 개인의 과업이 된다. 방역의 실천이 가능한 조건과 자원의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채 불안과 분노는 확진된 환자에게 집중된다. 환자는 환자의 권리를 말하기 어렵고 사망자에 대한 충분한 애도도 가질 수 없다.
이 전쟁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적’을 상대로 한다지만 현실은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사람’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드러난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더 두려웠다고 한다. 서울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포스터11)는 “어떤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 남이 씌워줄 땐 늦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책을 읽는 사람과 인공호흡기를 쓰고 누워 있는 사람을 대비해 보인다. 정부의 공포를 이용한 메시지는 재난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지우고 개인의 책임인 문제로 만든다. 이런 메시지는 방역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것을 범죄화하고 처벌12) 하는 것으로도 손쉽게 이어진다. 최근에는 방역 위반을 신고하면 정부가 포상금을 지급13)해 시민들이 서로를 감시하기에 이르렀다.
방역의 해악으로 지목되는 사람들
코로나19 초기부터 집회가 금지되었다. 2월 21일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과 주변 차도와 인도에 집회금지를 통보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각 지자체로 확장되면서 금지장소가 점점 늘어났다. 지자체의 집회금지 고시는 주요 집회 장소나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졌고, 예외 없이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금지 기간은 대부분 종료일이 명시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집회가 금지되자 목소리를 내려 했던 사람들의 공간이 치워지고 사라졌다. “이 시국에 집회라니”라는 비난과 함께 집회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 방역에 해가 되는 사람으로 지목되고, 생명 안전과 집회의 권리가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됐다.
이런 와중에 8월 15일 광화문 집회는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시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을 청원하고 여당 국회의원은 판사의 이름을 붙인 법을 발의했다. 이후 개천절 집회를 막기 위해 187대 중대 약 12,000명의 경찰이 동원되었고, 300여 대의 경찰버스와 철제 펜스 등으로 거대한 차벽을 세웠다. 이 차벽이 논란이 되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화문에 세워진 것은 코로나 방어선이자, 영세사업자와 상인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가 계속되는 한 집회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일까? 집회가 우리는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방역독재라며 집회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의 출현하면서 방역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집회를 통해서 삶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구별이 어려워졌다. 아니 애써 구별하려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방역과 집회의 자유가 대립하고, 방역은 선이고 집회는 악인 것으로만 보였다. 정치는 이런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활용했고, 온갖 법들이 쏟아져나왔다. 그중 놀라웠던 것 중 하나가 감염병 검사와 치료를 거부는 행위를 테러로 명문화한 ‘국민 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개정안14)이었다.
코로나로 경영이 어렵다고 해고된 노동자들이, 용역들에게 집을 철거당해 집에 머무를 수조차 없는 철거민들이 집회 한 번 하기 힘들다면, 코로나로 더 위기로 몰리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누가 돌볼 수 있을까? 집회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삶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세계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을 만드는 동시에 우리의 삶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시공간을 거리에서 만들고 지킨다. 이들은 연대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감염병의 시대를 살아가는 권리 침해의 피해자이자 코로나19의 문제를 드러내는 고발자, 질병을 만드는 사회의 증언자이다. 코로나19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권력을 목격하고 경험한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삶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면, 생명을 지킨다는 이 ‘전쟁’은 어떤 생명을 지키고자 함일까?
전쟁 이후의 미래
전쟁은 사상자의 숫자를 집계한다. K방역은 매일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를 공개한다. 매일 확인되는 숫자와 함께 느꼈을 안도이거나 분노, 또는 궁금증에 웅성거렸던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만들었다. 감염된 이들을 걱정하고 회복을 바라기 이전에 앞선 감정들을 어떻게 돌아봐야 할까? 방역을 평가하고 안전을 확인하는 기준이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만일 때, 다른 국가에 비해 적은 확진자 수는 K방역의 ‘성공’이고, 이 ‘성공’이라는 말이 현재 방역에 대한 질문 없이 유지하게 한다.
코로나19의 유행을 억제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안녕하고 존엄한 삶을 위해서는 숫자를 줄이기를 넘어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조치가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하고 물어야 한다. 코로나의 위기는 확진자의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느냐에 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사람의 삶의 총체, 삶의 존엄을 지키는 방역조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백신에 대한 기대를 높여갈 때 요양병원에서, 장애인 시설에서, 구치소에서 한발도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각주
- “코로나 전쟁서 이길 ‘백신 방패’ 만들어”, 동아일보, 2020.12.18.
- “美 백신 접종 코 앞이지만…’코로나 전쟁’ 승전까지는 아직 수개월”, 한국일보, 2020.12.11.
- “한국이 ‘백신 전쟁’에서 밀려난 네 가지 이유, 이렇다”. 한국일보, 2020.12.16.
- “007도 울고갈 백신 확보전…전시동원령·첩보기관 가세”, 매일경제, 2020.12.26.
- “文 “지역감염 확진자 수 4명…코로나 전쟁 반드시 승리하자””, 서울경제, 2020.07.20.
- “정세균 “전쟁에 준하는 사태…불법행위자 즉시 검거”“, 경향신문, 2020.09.27.
- ““핼러윈발 클럽 감염폭탄 막아라”…경찰·서울시 합동단속”, 뉴스1, 2020.10.27.
- “지역감염 주범 누군가 봤더니…’확진자 부주의·무책임’이 폭탄”, 뉴스1, 2020.09.06.
- 바이러스가 외부에서 신체로 침투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뿐만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를 매개한 사람의 침투로 확장된다. 종종 언론과 정부는 ‘뚫렸다’거나 ‘청정지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내부와 외부를 가른다.
-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 코로나19는 전쟁 상대가 아니다, 과학잡지 에피 12, 2020.6.3.
- https://news.seoul.go.kr/html/27/522238/
- 8월 26일까지 격리조치 위반 610명, 집합금지 위반 758명, 집회금지 위반 108명, 역학조사 방해132명 등 총 1,630명이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해 사법처리를 받거나 수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 ““5명 모였네” 찰칵 6만건… 불신만 키우는 코파라치”, 서울신문, 2020.12.30.
- ““코로나 검사 거부하면 테러리스트?” 與의 위험한 방역”, 한국일보, 202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