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합헌결정에 대한 연대회의 성명서 – 정부와 국회는 즉각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
26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조항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위헌제청 사건에 대해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다수의견을 통해 “기본권의 행사는 국가의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국가의 안전보장은 국가의 존립과 영토의 보존, 국민의 생명·안전의 수호를 위한 불가결한 전제조건으로서 헌법상 인정되는 중대한 법익”으로 병역법의 처벌조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연대회의는 헌법재판소가 통상적인 심판 기간인 180일의 무려 다섯 배가 넘는 기간인 2년 반 동안 이 문제를 숙고해 왔음에도 결국 종래의 처벌 관행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심히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국정부가 가입하고 비준한 유엔 인권위원회 및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보편적인 인권으로서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헌법 조항인 제6조 1항에 대해서는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헌재 역시 지난 7월 15일 대법원 판결에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가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입법자에 대한 권고를 결정문에 포함시킴으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단순히 실정법상의 해석에 따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될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제도적 대책 마련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입법자가 사회적 소수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심각하고도 오랜 갈등관계를 해소하여 조화를 도모할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입영을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하는 범위에서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위헌”임을 밝힌 김경일, 전효숙 재판관의 의견에 대해서는 크게 환영하는 바이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류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결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며, 비폭력, 불살생, 평화주의 등으로 나타난 평화에 대한 이상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하고 존중해 온 것”이라며 이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헌법전문의 정신과도 닿아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헌법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일 것이다.
혹독한 처벌과 사회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반세기 동안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강압과 배제로 유지되는 국가안보는 지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역행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연대회의는 비록 이번 헌재의 결정이 크게 미흡하긴 하나 지난 대법원 판결에 이어 다시 한 번 입법부에 현실적 구제방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정부와 입법부의 조속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이다. 정부와 국회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고에 따라 즉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
2004. 8. 26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