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영 (오월의 봄 편집자)
20여년간 무기산업을 파헤친 앤드루 파인스타인의 책 《어둠의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기산업 대폭로’일 것이다. 1차 대전 전후부터 현재까지, 미국부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까지 방대한 범위의 조사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이 드러낸 무기산업의 실상은 끔찍하다. 매 장마다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전개 앞에 치미는 분노를 붙들고 혼란스러웠다. 이게 현실이고 역사라니. 끝없이 쫓는 게 평화가 아니라 돈다발이라니. 아룬다티 로이의 말처럼 “소름 돋고, 가슴 아프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거대한 무기업체들과 무기를 거래하는 거의 모든 국가가 공식적으로 방위와 안보를 내세우지만, 실상 무기산업과 무기거래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거래 성사의 대가로 지급되는 커미션이다. 역사상 가장 부패한 무기거래로 꼽히는 1985년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알야마마 사업’은 거래 규모만 400억 파운드(약 62조 6,500억 원)를 넘었고, 이 거래를 성사시킨 대가로 지난 20여 년간 분할되어 지급된 커미션은 총 10억 파운드(약 1조 8,000억 원)에 이르렀다. 해당 거래의 무기업체인 BAE를 출처로 거액의 커미션이 흘러든 계좌의 주인은 다름아닌 사우디의 반다르 왕자. 반다르 왕자는 미국, 사우디, 영국 사이에서 외교관, 중재자, 자금조달책, 무기딜러라는 1인 4역을 소화하며 무기거래로 막대한 부를 챙긴 인물이다. 바실 자하로프의 진화 버전이랄까.
‘죽음의 슈퍼 세일즈맨’이란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화려한 이력의 전설적 무기딜러 바실 자하로프는 이 책의 1부를 여는 인물이다. 1차 대전 발발을 앞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어둠의 세계》는 책 전체에서 소환하는 수많은 인물 중 첫 번째로 바실 자하로프를 불러낸다. 그는 무기산업이 급성장할 당시 ‘뒤엉킨 신의의 표본’으로 상징되었던 인물이고, 거래의 기본적인 상식을 뒤엎어버린 인물이다. 당시 많은 무기업체들이 거래에 나설 때 주요 전략은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면 거래가 성사될 것이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자하로프는 이러한 상식을 뒤집었다. 그의 방식은 경쟁사보다 두 배 더 비싸게 팔고, 세 배 더 많은 뇌물을 정치인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바실 자하로프의 생전 모습
끔찍한 이야기지만, 이 방식은 현재까지 통한다. 이 책이 바실 자하로프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자하로프의 방식은 부패한 정치와 만나 이내 무기거래 그 자체의 방식이 되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뇌물을 필수로 이루어지는 무기거래. 100년 전과 지금의 차이라면 부풀리는 가격과 그 거품의 사용처가 되는 커미션이 훨씬 더 늘어났다는 것, 이 탐욕의 네트워크에 연루된 이들이 너무도 많아졌다는 것, 국내법이든 국제법이든 틈새를 이용하고(없으면 만들어내서) 더욱 교묘하게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 각국에서 피해를 입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훨씬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무기산업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분쟁을 일으키고 부추겼다. 이로 인해 2억 3,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발생한 폭력은 그보다 더욱 심각했다.”(734쪽)
무기거래가 전 세계 무역 관련 부패의 4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산업의 작동 방식이 무엇일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산업과 무기거래에 뛰어든 이들 중 누구도 분쟁, 폭력, 빈곤을 끝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속시킨다. 겉으로는 안보니 평화니 테러와의 전쟁이니 온갖 수사와 명분을 내세워도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권력을 이용한 사익 추구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 정치인, 무기딜러, 에이전트, 밀수업자, 정부 관료, 군 관료 등 무수한 인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얽히고설킨 네트워크에 어떤 나라도, 어떤 법도 무기거래 비리를 제대로 처벌하거나 제약을 가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목숨을 잃었다. 무분별한 무기거래로 인한 분쟁과 폭력의 참상을 되짚는 ‘5부 킬링필드’는 유독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아프리카 대륙을 “어둠의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었다”라고 말한다. 독일의 메렉스, 영국 정부와 BAE, 미국과 록히드마틴의 사례는 비교적 공식적이고 대표적인 네트워크일 뿐 실제 이들과 연결된 느슨한 네트워크가 분쟁이 있는 곳 어디든 등장해 ‘비즈니스’를 한다.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 소말리아, 수단, 이집트, 리비아, 코트디부아르 등에서의 참상과 분쟁은 손쉬운 무기 공급 때문에 더욱 극렬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르완다 대학살을 대표적으로 본다면, 르완다의 불안정한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해 추가적 무기 공급을 거부한 벨기에와 달리 아프리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목적으로 무기를 공급한 프랑스의 예를 들 수 있다. 물론 단순히 프랑스의 무기 공급이 르완다 대학살을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저자도 인정하지만, 그러한 대학살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UN은 뒤늦게 강제적 무기금수조치를 취했지만 무기 공급은 멈추지 않았다. 르완다 정부가 무기 공급처를 더욱 어두운 세계의 무기딜러와 업체로 바꾸었을 뿐이다. 영국 어느 지방에 소재한 무기업체는 무기금수조치도 무력화시키고 르완다에 무기를 공급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진 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분쟁이 일어나면 이를 기회로 보는 이들이 등장해 무기를 공급하고 부채질을 한다. 상황이 극렬해질수록 ‘전쟁시장’은 호황을 누린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호황 속에서 폐허가 된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자주 떠올랐다. 9.11테러로 사망한 아버지를 둔 아홉 살 소년의 이야기. 《어둠의 세계》는 비윤리적 무기거래로 의도치 않은 상황에 무기가 흘러들어가거나, 그렇게 흘러들어간 무기가 때로 판매국을 겨냥하는 것을 무기 역류 현상으로 짚으며 그 대표적 사례로 9.11 테러를 서술한다. 어둠의 세계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깝다.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어둠의 세계를 끝낼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은 전 세계 시민들의 감시라고 답을 내린 듯하다. 여러언어로 번역된 이 책이 열 번째로 한국에서 출간되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무기산업에 대한 감시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전 세계의 시민들이 낭비가 심한 국방 부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비밀 무기거래에 지금처럼 많은 세금을 투입하는 관행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부패는 더욱 심화되고, 민주주의는 약화되며, 세계의 건전성과 안전성은 오히려 후퇴할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서문에서)
《어둠의 세계》를 편집하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내게 남은 질문은 그럼 이제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전쟁없는세상의 무기감시 활동을 새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전쟁장사를 멈춰라”, 다행히도 한국에서 그렇게 외쳐온 눈동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