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연(피스모모 활동가, 육아하는피스모모회원모임 o:WOW 운영중)
엄마는 전투기가 멋지지 않아
우리집 둘째는 자동차를 참 좋아합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보면 늘 자동차를 그리고 있어요.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비행기예요. 비행기 중에서도 전투기를 참 좋아합니다.
전투기가 왜 좋냐고 물어보면 “미사일을 쓩 발사해서 파파박! 공격할 수 있잖아!”라고 눈을 반짝거리며 이야기합니다. 그럴때면, 무슨 반응을 해주어야 할지, 순간 멈칫하게 돼요. 엄마로서 아이의 흥미를 무 자르듯 싹둑 잘라낼 수도 없고, 마냥 멋지다고 호응해줄 수도 없는 오묘한 입장에 있어요. 그런 저는 평화와 육아를 함께 고민하는 육아하는 피스빌더랍니다.
작년인가요. 아이와 서점에 갔다가 아이 눈에 딱 들어온 책이 있었어요. “진짜진짜 재미있는 전투기 그림책”입니다.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진 전투기를 하나 하나 설명해 놓은 그림책이에요. 안그래도 비행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이 책을 꼭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어요. 제가 보기에 전투기는 전쟁 무기이지만, 아이에게는 단순히 멋진 비행기일 뿐이죠. 제 눈에는 ‘재밌는’ 그림책이 아니라고 해도, 무작정 아이의 흥미를 차단해버릴 권한은 없다고 생각해서, 책을 사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책 앞머리에 ‘전투기는 전쟁에 사용되었던 무기였다’는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전투기를 설명하는 장에서는 그것의 기술적인 부분과 어떤 전쟁에 참여해서 어떤 나라에 승리를 이끄는 데 한 몫을 했는지만 서술하고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너, 여기서 떨어지는 미사일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 미사일이 전투기에서 떨어져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야. 우리가 사는 집 같은 데에 떨어져. 그래서 지금도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그냥 아이들이 읽는 책일 뿐인데, 굳이 너무 현실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것일까요?
멋있는 전투기가 있는 방산전시회?
평화활동가의 입장에서 볼 때, 코로나19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나 대한민국방위산업전(DX Korea)과 같은 무기박람회가 제한적으로 개최되었다는 것이에요. 덕분에(?) 가족 단위의 일반 참가자들이 ‘무기’를 ‘체험’하는 부스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최첨단 무기들을 즐비하게 전시하고, 에어쇼 등으로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무기박람회의 실상은 ‘죽음의 무기를 사고파는’ 전쟁 시장이지요. 전투기 실물을 전시해서 직접 체험을 해볼 수 있게 하지만, 이 전투기가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무기라는 사실은 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기박람회에 참여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은 ‘아이가 즐거워했다’라는 반응을 냅니다. 다음에 또 방문하겠다는 약속도 함께 하곤 하지요. 반드시 해야할 이야기를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방위산업 전시회’를 보도하는 뉴스 기사도 ‘멋진 무기’ 이야기에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019년 ADEX 보도 기사에는 ‘34개국 430개 업체가 참가해 최신 항공기를 비롯한 장비’들을 선보이는 전시회이며,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X의 실물 외관 모형’이 최초로 공개된다며 들뜬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지난 해, 코로나19 확산 추세에도 ‘K-방역’을 자랑하며 개최된 DX Korea도 ‘코로나19에 대응하여 온라인으로도 무기 거래가 가능하도록 플랫폼을 갖췄으며’, 해외 여러 국가에서 ‘국내 지상군 주력무기인 K2전차와 K-9 자주포, 장갑차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목소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무기들은 첨단 기술 발달의 지표일 뿐일까요?
2021년도 국방비 예산은 53조원으로 편성되었습니다. 그 중 무기 구입에 사용되는 ‘방위력 개선비’는 전년 보다 2.4% 증가한 17조 738억원입니다. 특히, ‘북한 핵·WMD(대량살상무기) 위협 대응을 위해 전략표적 타격 전력, 한국형 미사일방어 구축, 압도적 대응 전력 구비 등 36개 사업에 5조8천70억원을 편성했다’고 언론은 보도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간 그 전보다 57% 많이 무기를 사들였고, 세계에서는 9번째로 많이 무기를 파는 나라입니다. 무기를 사는 데에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우리 나라는 ‘안전’해질까요? 무기를 많이 파는 나라라서 ‘기술이 발달’된 나라일까요?
장난감 총이 재밌지만은 않은 이유
전투기 그림책 이야기를 하다가 방위산업체까지 나왔습니다. 어린이들이 접하는 장난스러운 놀이감일 뿐인데, 너무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칼 싸움도 하고, 총 싸움도 하고, 전투기 흉내도 내고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그런 놀이의 한 장면을 앞 뒤로 길게 늘어뜨린다면, 재미있는 순간만 있지는 않을 거에요. 지난 4월 15일, 홍콩에서는 ‘국가안보 교육의 날’에 어린이들이 장난감 총을 갖고 논 것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장난감 총을 갖고 놀았다는 장면 그 자체로는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홍콩에 국가보안법이 실시된 이후 제정된 첫 ‘국가안보 교육의 날’이었고, 아이들은 홍콩 경찰대 견학 중이었으며, 지하철 모형 안에서 총 놀이를 하게 된 것이지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2019년에 홍콩이 국가보안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반발했고, 홍콩 정부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사실이 있지요. 게다가 당시 경찰이 지하철에서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한 사실이 있는데, 이를 아이들에게 놀이 형식으로 교육시키려 했다는 맥락을 펼쳐본다면, 도저히 재미있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A~Z까지 이야기해야 할 의무
아이들은 이야기를 먹고 삽니다. 양육자에게, 돌봄 교사에게, 학교 선생님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미디어에서 들리는 이야기들로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며 성장합니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닐거에요. 여러 사람과 어쩔수없이 여러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가지 이야기만 먹고 산다면 그 한 가지 생각과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란 참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을 하려면 다양한 생각을 읽고,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연습을 할 수 밖에요. 특히 사회가 즐겨하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는 일부러 들으려고 하지 않는 한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꼭 들려주어야 할 의무가 평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전투기의 미사일은 분명 멋지기도 하고, 최첨단 기술이 도입된 자랑스러운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시리아의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을 피흘리게 하고, 로힝야의 어린 아이들을 다치게 했다고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무기들 덕분에 국가 예산이 탄탄해지고, 최첨단 무기들을 사들여 나라 안보가 한층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무기들이 미얀마 군부가 자국민들을 학살하는 자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사회는 즐거워하지 않겠지만, A가 Z로 이어지고 있다는 연결점을 똑똑히 밝히고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 어떻게 이어지는 지 앞서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일 말이죠. 물론, 제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집 둘째는 종종 전투기를 그릴 것이고, 총 싸움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때 마다 옆에서 “그 미사일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 총은 뭐 할 때 쓰는 거게?”라고 말해줄 거에요. 이야기가 쌓이면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가진 아이는 새로운 행동을 할 테니까요. 그렇게 사회가 즐겨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그런 이야기들 위에 우리 아이들이 다양한 몸짓을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될거라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