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 시우(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번역 감수: 오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2021년 병역거부의 날의 이슈 국가는 터키입니다. 터키는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국가로 많은 한국인들이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데요, 터키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은 한국 사회에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터키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 독일의 평화운동 단체 커넥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번역해서 올립니다. 본문 중에서 [  ]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번역자가 덧붙인 설명으로 원문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이 글은 터키의 병역거부자가 놓인 현재 상황을 개괄적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터키 출신 병역거부자의 난민 신청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약 천 명의 징집대상자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습니다. 병역을 수행하지 않을 다른 방식을 찾거나 도피한 이들은 수십만 명에 이르고, 박해를 피해 외국에서 난민 인정을 신청한 이들도 수백 명에 달합니다.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법안 제정의 무산

터키는 유럽평의회에 속한 47개국 가운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병역거부자는 병역을 수행하라는 강제적인 요구에 시달리며 다양한 형태의 제재를 받습니다. 이로 인해 병역거부자는 체포 영장의 지속적인 발부, 평생 반복되는 박해와 수감,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생활을 할 수 없는 ‘시민권 상실’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각 나라의 인권 상황을 4년마다 심의하는 ‘정례인권검토’를 진행하는데, 이 가운데] 제2기(2012년~2016년)에 해당하는 2015년, 크로아티아, 독일, 슬로베니아는 터키 정부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것, 차별이나 처벌과는 무관하며 민간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대체 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터키 정부는 이와 같은 권고를 ‘참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권고를 ‘거부(object)’할 수 없는 정례인권검토 메커니즘에서 ‘참조(note)’는 사실상 반대 의견과 같습니다.]

법안 제정을 위한 터키 정부의 노력은 전무했습니다. [진보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이 발의한 법안은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여당과 다른 야당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의회에서 부결됐습니다. 2019년 7월, 터키 정부는 기존의 병역법을 전면개정했습니다. 인민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개정된 병역법에서도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은 유지됐습니다.

전면개정된 병역법 제9조는 복무 기간 단축에 관한 내용을 규정합니다. 이에 따르면 징집대상자가 5,000 유로[약 700만 원]를 내면 복무 기간이 6개월에서 1개월로 줄어듭니다. 다만 복무 기간이 단축되더라도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2019년 터키 정부는 20세 이상의 남성 대부분에게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복무 기간을 12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앞서 밝힌 것처럼 경우에 따라 복무 기간이 6개월보다 더 짧아지기도 하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1개월간의 기초 군사 훈련은 면제되지 않습니다.]

 

병역거부자가 마주하는 법적 상황과 제재

현재 병역거부자는 병역기피자로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체포 영장은 지속적으로 발부됩니다. 이로 인해 경찰이나 헌병대가 신분확인을 요구하는 경우, 병역거부자는 언제든 구금될 위험에 놓입니다. 터키에서 신분확인은 다양한 상황에서 매우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처음 구금된 경우에는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그다음부터는 새로운 군형법 제63조가 적용됩니다. 병역거부자에게는 2개월 이상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으며, 대체로 벌금형이 선고되는 편입니다. (다시) 구속 혹은 체포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회생활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시민권 상실

유럽인권법원은 터키 병역거부자가 ‘시민권 상실’ 상태에 놓여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Ulke v. Turkey, 청원 39437/98) 병역거부자를 ‘시민권 상실’ 상태로 몰아넣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회를 박탈하는 현행법입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병역거부자는 공공 영역에서도 민간 영역에서도 노동할 수 없습니다. 징집이나 소집을 회피한 이를 고용하는 것이 범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병역거부자는 실업 상태에 머무르거나 불안정하고 비합법적인 영역에 종사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립니다. 병역거부자에게는 투표할 권리도 출마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반복되는 박해와 징역형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병역거부자는 계속되는 형사처벌의 위험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병역거부자에게는 2개월 이상 3년 이하의 징역형이 반복적으로 선고됩니다. 징집이나 소집에 응하지 않은 기간이 길수록 처벌 기간 역시 길어집니다.

세 번째는 반복되는 구금 아니면 권리 박탈 가운데 양자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구금 이후에는 어김없이 형사처벌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병역거부자는 사회적, 경제적, 법적, 문화적 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됩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권 신청, 운전면허증 발급, 혼인신고를 할 수 없음
  • 범죄나 사고로 피해를 겪어도 경찰서/헌병대에 가지 못함
  • 호텔, 호스텔, 캠핑, 공유 숙박시설 등을 이용할 수 없음
  • 자동차를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없음
  • 대로나 광장을 비롯한 모든 공공장소에 갈 수 없음
  • 기차, 버스, 지하철, 배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음
  • 공항을 이용할 수 없음
  • 법원이나 감옥에 방문할 수 없음(병역거부자가 변호사인 경우에도 마찬가지)
  • 투표소에 갈 수 없음

결국 의무적인 군 복무를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거부하는 이들은 평생 반복되는 징역형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하고 시민권이 박탈되는 상황을 견뎌야 합니다. 이때의 시민권 박탈은 법이 강제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른 구금 혹은 수감을 피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범죄화와 시민권 상실은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병역거부 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적용됩니다.

 

터키 형법 제318조 및 반테러법 제7조 제2항

터키 형법 제318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제1항 병역 면탈을 조장하거나 병역을 기피하는 분위기를 반복적으로 조성하는 경우에는 6개월 이상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제2항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제1항의 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는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터키 형법 제318조는 대부분 병역거부자와 이들의 지지자에게 적용됩니다. 이 조항은 병역거부자의 선언, 반군사주의 단체의 성명, 반전 단체의 성명에도 적용됩니다. 의무적인 군 복무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모든 행위는 제318조에 따라 조사 및 기소 대상이 됩니다. SNS에서의 의견 표명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더욱이 국가 기관에서 ‘테러리스트 활동의 선동․선전’을 금지하는 반테러법 제7조 제2항 위반으로 병역거부자, 지지자,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증거자료를 모으고 기록을 해왔습니다. 반테러법 제7조 제2항은 표현이 모호하고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한데다가 폭력이나 범죄와 무관한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해당 규정은 비폭력을 옹호하는 의견 표명을 억압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데, 피고인에게는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형이 선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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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유럽평의회 각료위원회의 성명서

2020년 6월 유럽평의회 각료위원회는 터키 정부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홉 명의 병역거부자에 관한 결정은 다음과 같습니다(CM/Del/Dec(2020)1377/H46-40).

‘위원회는 오스만 무라트 윌케(Osman Murat Ülke), 유누스 에르체프(Yunus Erçep), 에르신 욀귄(Ersin Ölgün)이 현재까지도 병역기피자로 간주되어 ‘시민권 상실’ 상태에 여전히 놓여 있다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또한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세 명의 청구인이 박해를 받거나 유죄를 선고받는 일이 결코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터키 정부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지체 없이 마련할 것을 강하게 요청한다. 터키 정부는 2020년 9월 1일까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아홉 명의 청구인이 형벌 위반으로 인해 겪은 피해를 확실하게 회복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 여기에는 과태료 반환, 병역거부 전과를 이유로 하는 영장 청구 중단, 전과 기록 말소 등이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위원회는 청구인들이 병역거부자로서 부과 명령을 받은 과태료 납부를 거부함에 따라 박해와 수감의 위험에 놓여 있음을 인정하고, 이들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

빈약한 난민 보호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에 따른 보호

터키의 병역거부자 가운데는 박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병역거부에 따른 박해가 난민 인정 사유로 받아들여지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많은 경우, 터키에서의 박해가 징병제를 유지하기 위한 유효한 조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본 터키의 상황을 고려할 때, 터키의 병역거부자는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서 규정한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어 그에 따른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해당 규정에 대해 유엔 난민기구에서 제시한 여러 의견과도 일치합니다.

‘특정 사회집단은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이외에 다른 공통된 특성이 있거나,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되는 개인들의 집단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성이란 대개 내재적이며, 불변적이거나 정체성, 양심 또는 인권행사의 기초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HCR/GIP/02/02, 2002년 5월 7일, 11조)

[해당 표현은 다음에서 빌려왔음을 밝힙니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및 1967년 의정서에 의한 난민 지위의 인정기준 및 절차 편람과 지침(HCR/1P/4/ENG/REV.3)》,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2호: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제1조 제A항 제2호 및 1967년 의정서의 맥락에서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2002년 5월 7일, HCR/GIP/02/02, 영문 개정판 2011년 12월, 한글판 2014년 9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옮김, 85쪽.]

다시 말해서 유엔 난민기구에서는 병역거부자를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정체성에 근본적인 신념을 공유하고 사회가 그들을 특정 사회 집단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특정 사회 집단에 해당한다. 징병 기피자나 탈영자들의 경우도 이와 같이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 불변적 공통의 성격을 공유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병역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를 국가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여기거나 또는 해당인들에 대한 다른 대우 즉, 공공 부문의 채용에 있어서의 차별 등을 이유로 탈영자들을 분리하거나 구별지으므로 특정 사회 집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징병 기피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10호, 2014년 11월 10일, HCR/GIP/13/10/Corr. 1, 58호)

[해당 표현은 다음에서 빌려왔음을 밝힙니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및 1967년 의정서에 의한 난민 지위의 인정기준 및 절차 편람과 지침(HCR/1P/4/ENG/REV.3)》,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10호: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제1조 제A항 제2호 및 1967년 의정서의 맥락에서 군 복무에 기반한 난민 신청」, 2012년 12월 3일, HCR/GRIP/13/10, 영문 개정판 2011년 12월, 한글판 2014년 9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옮김, 211쪽.]

 

[터키 병역거부 상황과 관련한 참고 기사]

「유럽인권재판소 “터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은 인권침해”」, 한겨레, 2011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