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솔비(시각 문화 연구자, <난민, 난민화되는 삶> 공동 저자)

 

 

누군가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저항하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서명하는 활동가 동료들을 보면 그들의 하루하루가 모두 기념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만 말하기엔 뭔가 부족한 여러 내밀한 관계들 속에서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나는 하루들과, 때로 혐오 발언과 법의 이상한 언어들을 마주하며 힘이 빠지는 하루들이 겹겹이 이들의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그러한 매일의 나날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OO의 날’들은 OO을 생각하는 행사와 성명, 시위, 거리 공연, 집담회 등이 다시 OO의 존재를 힘 있게 각인시키는 하루다.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의 날을 기념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힘을 주는 하루가 마련되었다. ‘병역거부를 사유로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는 이예다 님, 예멘에서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탈영한 뒤 한국으로 온 난민 히샴 님,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 병역거부 선언을 했던 숲이아 님’ 이렇게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세계 병역거부의 날, 많은 이들이 접속 링크를 누르고 같은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스크린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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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병역거부자 이예다

코로나 19로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하고 적극 활용하여 작년에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패널들이 솔직한 토크와 속 시원한 꽁트를 보여주었다면 올해의 ‘전쟁없는세상’은 줌이라는 화상 회의 플랫폼을 통해 프랑스와 한국에 사는 사람들, 서울 뿐만 아니라 제주와 전국 각지에 사는 사람들이 먼 거리를 뛰어넘어 한 화면 안에 얼굴을 맞대고 모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날의 행사는 미리 인터뷰하듯 촬영된 세 편의 영상을 함께 보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는데 이는 흡사 세 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gv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세 가지로 이어진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을 떠난, 한국으로 온, 한국에 남아있는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서로를 비추는지, 또 우리의 일상 속에 흩어지고 잊힌 여러 결심과 후회, 선택과 미련의 순간들을 되 비추는지 돌아보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예다, 히샴, 숲이아, 이 세 사람에게 깃든 난민성과 병역거부, 반군사주의 안에는 미묘한 차이와 함께 겹치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예다 님은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프랑스로 난민 신청을 하면서 더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는 삶을 택해야 했다. 병역거부자, 그리고 난민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기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히샴 님은 같은 민족에게 총구를 대는 것을 거부하며 징집을 피해 탈영했고 한국으로 난민 신청을 했지만,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징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어떤 정치적인 신념의 표명인가를 놓고 이것에서 과연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당한 박해의 사유를 찾을 수 있을지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히샴 님의 경우에는 ‘(병역거부) 선언의 부재’나 ‘증거 없음’이 난민의 삶으로 가는 길조차 막고 있다. 한편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온 히샴 님에게 한국의 무기 산업이 고국 예멘의 내전과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예다 님이 총을 들기를 거부한 마음으로 떠난 한국이라는 시공간에 히샴 님이 총을 들기를 거부한 마음으로 도착했다. 이 둘의 자리 교체는 군사주의와 폭력의 연쇄가 계속해서 뿌리 뽑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떠나고 싶지 않은’ 이들을 뿌리 뽑고 큰 ‘결심’과 ‘선택’을 하게 하고 그 뒤로 ‘상실’해야 하는 것들을 남겨놓는 세계. 그 세계의 폭력성을 간파하는 숲이아 님은 자신의 몸이 전쟁터라는 것을 깨달으며 병역거부선언을 했다. 병역의 의무가 없는 한국 여성으로 병역거부선언을 한다는 건 일상 속에 만연한 폭력과 군사주의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정치적 실천이다. 한국을 떠난 이유와 한국으로 오게 된 이유, 그리고 한국에 남아있는 이유는 이렇듯 겹치며 서로를 끌어당긴다. 이날 토크는 연루된 관계 위에서 무엇이 우리를 이동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머무르게 하는지, 개인의 선택으로 남은 큰 결심이 어떤 거대한 힘으로 추동 되는지를 세 사람의 얼굴을 겹쳐놓으며 마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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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소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영하여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병역거부자 히샴

이날 세 사람은 자신이 병역거부 ‘선언’을 했거나, 군대에 가기를 ‘거부’했거나, 반군에서 탈영하여 ‘국경을 넘던’ 결심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나눠주었다. 그러한 이야기의 나눔은 그 과거의 시간 이후에 이 결심과 선택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우리가 절대 전부 가늠할 수 없는 고민과 두려움의 시간이 얼마나 지나쳐 갔는지를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했다. 말한 것 뒤에 말하지 않은/못한 것이 있고 아마 그 말도 어떤 다음 자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날 나눠준 근황에서 히샴 님은 배우를 꿈꾸며 현재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고, 숲이아 님은 최근 도시를 떠나 더 자연이 가까운 곳으로 갔고, 이예다 님은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과거에 큰 선택을 한 누군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듣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그 이후의 삶 안에서 어떤 생각들로 살아왔는지 듣는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경험일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한 행위들이 남긴 감정들이나 그때 자신의 선택에 대한 긍정성이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의 삶에 어떤 부담과 차별, 혐오나 박해의 경험, 그로 인한 후회, 후회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로 스쳐 지나갔을지는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웹상에서는 병역거부자의 삶이 군대에 가지 않아서 얼마나 더 나은 삶이 되었는지 지켜보자고 폭력적으로 추궁하듯 추적하는 말들이 떠돈다.) 하지만 이러한 자리에 참석해서 이들의 현재를 마주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미래를 질문하고 상상하게 한다.

서로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기 힘든 비대면의 세계이지만, 이날은 스크린을 켜놓고 화면 가득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경험이 그렇게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 오래 화면을 켜놓고 말하다 보니, 그리고 여러 이야기로 얼굴이 상기되다 보니 뭔가 스크린 너머로 서로의 온기가 전달되는 것 같다고 착각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병역거부의 날이 지나가고, 다시 하루하루 날짜로 셈해지는 평소와 같은 일상이 돌아왔다. 이때 삶 속에서 필요한 건 개인의 용기 있는 선택이 혼자 지고 가야할 무게나 부담, 공허한 언어로만 남지 않도록, 그런 선언의 순간들이 이어지고 함께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선택의 바통을 넘겨받을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이런 토크 자리나 공동체 안에서 편하게 등장하도록 서로의 안부를 지속적으로 물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었을지 모를 그 순간이 과거로 아득하게 흘러간 현재에 서서 이제 이 시간을 살아가야 할 나만 남았다고 느껴질 날이 오더라도, 그 시간 위에서 선언하고 반대하고 선택하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길 바란다. 계속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선언을 한 사람들의 근황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얼굴을 또 볼 수 있다면, 다음 번에는 모였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만 더 손을 잡고 다시 모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여러 번 읽었던 숲이아 님의 병역거부선언문 마지막 문장을 여기서도 한 번 더 쓰고 싶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병역거부선언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어서 하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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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비남성으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한 숲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