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민(병역거부자, 비건)

대체역 심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임성민 님이, 대체역 심사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느낌을 정리하고 심사에 통과한 뒤 대체복무 수행을 기다리는 일상을 담은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임성민 님의 병역거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성민님이 다른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한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세요.  (대표이미지는 성민님이 일하는 비건 바닐라의 비건빵 사진입니다. )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로서 두 번째로 대체역 심사를 통과한 임성민입니다. 이미 보도된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한 분이 있었을 텐데요. 저는 통과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끔은 병역거부를 준비한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치열했던 사유의 흔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작년에 쓴 진술서를 다시 읽어 봤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결의에 찬 문장을 보니 낯 뜨겁기도 하면서, 국가가 강제적으로 개인을 군대로 징집하는 것에 대한 격한 저항이 담겨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국가를 상대로 제출했던 진술서와는 별개로 제가 왜 병역거부를 했는지 한 번 더 글을 쓰고 싶었어요. 양심은 내용이나 동기에 의해 판단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준비 과정에서 신념의 내용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괴로운 나날을 보냈거든요. 누구나 설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에 집착했어요. 저에게는 병역거부를 마주하는 엄격한 태도가 실천을 망설이게 하는 벽이 되었어요. 시간은 촉박했고 신념을 소명해야 할 의무감 때문에 쓴 진술서는 즐겁지 않았어요. 과정은 험난했지만 긍정으로 승화하고 싶었어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정리하면서 자연스레 이전 진술서에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었던 부분도 보완할 수 있게 됐어요. 후에 다시 정리한 글을 보니 고치거나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더라고요. 그러나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얘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일은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삶은 부정과 깨달음의 연속인 것이잖아요. 병역거부도 마찬가지예요. 현재에 집중하고 고민을 이어나가면 어느새 생각은 저절로 확장되어 있을 거라 믿어요.

지금까지 심사 과정이나 대체역 제도와 관련해서 문제에 대해서 잘 지적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대체역 심사에 통과한 병역거부자로서 어떤 얘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해봤는데요. 모두가 준비 과정에서 자책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켜가며 병역거부를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과 통과 이후에 제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일상을 공유하는 게 이 글의 요지가 될 것 같아요.

병역거부는 제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어요. 생존하고 싶어서 병역거부를 했어요. 군대에 종속되어 총을 들고 복종하는 저를 상상하면 존재가치가 무너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에겐 감옥보다 군대가 더 두려웠어요. 기이한(?) 현상은 군복무 대신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됐는데, 과거보다 평화를 더 갈망하고 전쟁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됐다는 점이에요. 일화로 전쟁이라는 참혹한 참상에 직시하고 싶어 전쟁 영화를 보게 된다든가, 전쟁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무기산업에 대해 다루는 <어둠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다든가 말이죠. 전쟁없는세상에 정기 후원도 시작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액션에도 참여해보려고 합니다.

무기 산업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는 책 표지

무기 산업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는 책 <어둠의 세계> 표지

몇 달 전부터는 친구이자 동료이며 병역거부자인 진광, 권우와 모임을 꾸렸어요. 진광은 풀무질에서 처음 보게 되었고, 권우는 동물권 활동하면서 알게 된 사이예요. 모임을 통해서 다양한 견해를 공유하고 서로의 진행 상황을 알리고 있어요. 진광과 권우는 대체복무를 신청하고 나서 대체역 심사위의 사실조사를 기다리고 있고요. 진광 같은 경우에는 병역거부로 재판도 받고 있는데 1심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아 항소심을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혼자로 남지 않고 저희 다 무사히 통과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예요. 저희 셋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병역거부자이면서 채식주의자인데요. 법무부에 민원을 넣어 대체역 복무자도 채식 식단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어요.

저는 대체역 복무를 기다리면서 대전의 ‘비건바닐라’라는 비건 베이커리 겸 카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손님으로 방문했을 때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근에 JTBC 뉴스를 통해 비건 중에서 병역거부자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라는 얘기를 듣곤 그게 저라고 밝혔는데요. 병역거부를 지지해주고 마음도 잘 맞아 제안을 주셨고 감사히 수락했습니다. 사업장에서 제가 병역거부자라는 걸 밝히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밝혀도 안전한 공간에서 일을 하니 이토록 좋을 수가 없습니다. 마침 대체역 심사위원회도 대전에 있는데요. 방문할 일이 있다면 비건 카페로 놀러 와서 커피와 건강한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빵을 먹으며 저와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병역거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