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린(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전쟁없는세상 주: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님은 해병대 출신입니다. 3년 전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왜 군인은 ‘침묵’ 하는가 – 군대와 미투(#MeToo) 운동>이라는 글을 쓰셨습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최근에 공군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로 다시금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내 여군에 대한 성폭력의 문제를 짚어보는 글을 전쟁없는세상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왜 군대에서 성폭력이 반복되는지를 묵직하고 생생한 목소리로 전합니다.

 

내가 9년을 몸담았던 군(軍)에서 나와 인권활동가로 삶을 시작한 2017년, 해군에서 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 여군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지 2개월 남짓 지났을 시점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빈소를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가해자인 대령은 당시 1심 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 17년을,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는 15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4월의 일이다.

2018년은 사회적으로도 미투(#Metoo) 운동이 한창이던 해다. 당시 각계로 퍼져나가던 미투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폐쇄적이고도 남성적인 조직인 군 내부로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모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는 ‘성범죄 특별대책 TF’까지 만들어 성폭력과 관련하여 집중 신고를 받았고, 송영무 당시 국방부장관까지 나서 “권력 관계에 의한 성폭력 근절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임을 모두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까지 했음에도 또 그때 뿐인 일로 끝났다. 당시 ‘여군 미투’로 당사자가 나서서서야 기사화됐던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은 2018년 11월, 1심에서 각각 10년,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두 가해자 모두가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황당하고도 허망한 일이 발생했고, 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리고 2021년이 되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군대에서 성폭력이 발생하였고, 또 피해 여군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차마 알려지지 않은 피해는 더욱 많을 것이다. 나라 여론 전체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라며 소리를 치고, 국회까지 나서서 긴급회의를 진행하는 마당이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또 그때 뿐인 일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 공군 성폭력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가해자를 포함해 2차 가해자로 지목된 주변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는다고 한들 정말로 바뀔까, 정말로 우리는 앞으로 피해 상황에서 내 목소리를 내고,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마침내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연일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단독 보도가 빗발치던 얼마 전 어느 날 밤, 군대 동기가 카카오톡으로 “다들 뭐가 진짜 문제인지 모른다. 이게 왜 반복되는지 이해를 못 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여군 역사 70년 동안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여군들은 어느덧 가능성과 희망 대신 무력감과 절망을 학습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얼굴을 드러내놓고 여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밖에 안 남게 되어 여기저기 불려나가 증언 아닌 증언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여군이라 해도 각자가 위치한 곳, 출신, 체격과 체력조건, 과거의 경험, 결혼 유무에 따라 각자의 경험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고 아무리 소수 집단이라 하더라도 같은 카테고리에 한 번에 묶기란 어렵다. 그런 점에서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모두의 경험이 모두 균질할 수 없듯, 내가 경험한 군 생활도 결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비교적 스타트가 ‘잘나고 수월한’ 여군에 속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했고, 해병대 수석으로 임관을 했고, 키가 컸고, 체력도 남군 기준으로 특급이었다. 기대를 받으며 자대에 배치받았고 운이 좋게 좋은 지휘관을 만나 당시 해병대 여군으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기회들을 많이 얻었다. 다시 말해 나는 운이 지나치게 좋았다. 이런 나는 과연 보편의 여군을 경험한 것인가? 내 경험이 현재 복무 중인 2만여 명의 여군의 평균적인 삶을 대표할 수 있는 내용인가, 혹은 뒤집어서 다른 이들은 다 나 정도로 복무하는데 사건 사고에 걸려있는 여군들만 특이하고 별난 것인가?

하나 분명한 것은 내가 무난한 군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 했던 각종 노력들, 이를테면 남군 기준으로 특급인 체력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선배들이 권하는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 머리를 짧게 하고 남자같이 구는 것, 일부러 남군들과 전혀 거리낌 없는 척 음담패설에 함께하고 격 없는 것 마냥 굴었던 것, 이런 행위 모두가 사실은 성별을 떠나 우리는 하나 된 군인이 되는 과정이 아닌, 남성의 세계로 수월하게 편입하기 위해 남성성을 과도히 수행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남성성을 열심히 수행할수록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 나는 참군인으로 인정받는다. 어느 순간부터 선배들은 나에게 회식 자리에 상석 옆에 앉으라고 지정하거나, 왜 살갑게 웃지 않는지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여군들과는 다른 운 좋은 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기준과 자격은 어디서 오는가? 왜 다른 남자 동기들에게는 절대 요구되지 않은 시험을 여군인 나에게만 요구하는 것인가? 여군을 둘러싼 성폭력과 성차별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어떤 집단의 보편성을 정하는 ‘정상성’이라는 것은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집단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에 위험하다. 주체가 되지 못한 자들은 당연히 주체에 의해 객체가 된다. 주체는 객체를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한 각종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주체 – 객체 간의 권력 관계가 생기게 된다. 주체는 객체에게 끊임없이 그들의 정상성을 따르도록 훈육하고 또 강요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굉장히 추상적인 것처럼 보이겠으나, 군대라는 조직은 일찌감치 이런 방식을 통해서 자신들의 시스템을 오랜 시간에 걸쳐 공고히 해왔다. 군가 ‘진짜사나이’부터 최근에 나온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까지, 군대가 바라는 정상성 – 가부장에 기꺼이 복무하고, 건강하고 강인한 신체를 가진 남성 –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이에 속하지 못하는 타자, 여군이나 성소수자 군인 등을 통제 또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유지해 온 것이다.

새로 입대하는 여군들은 입대하자마자 정상성의 군대로부터 끊임없는 시험과 증명을 강요받는다. 훈육과정에서 흔히 듣는 “너는 군인이다. 너는 여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곱씹어보면 웃긴 말이다. 남군들은 평생 지내면서 너는 남자가 아니고 군인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굉장히 강력한 훈육 시스템 속에서 여군들이 입대하자마자 이 말의 모순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시당초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군인이라는 모습이 우리가 퍼뜩 떠올릴 수 있는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어느덧 여군들은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진짜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성정체성이라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 것 중 아주 큰 부분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될 수 없고, 포기한다고 해서 나의 성별이 변하는 것도 아니기에 여군들은 복무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경험한다. 일종의 디스포리아나 자기부정의 형태를 보이다, 원활한 군 생활을 위해 자기와의 타협을 시도한다. 그나마 고위직으로 진출한 몇 되지 않는 여군들이 명예남성화 되고, 여군에게 훨씬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내가 여성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남성사회에 기꺼이 편입하겠다고 선택한다 한들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여군으로 명명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체의 시각에서 나는 그저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객체일 뿐이고, 그들이 인정은 시혜적인 것이다. 그들이 원한다면 여성인 나를 얼마든지 파괴하고, 조종하고, 범하고, 멋대로 취급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주체 – 객체 권력 관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여군들이 먼저 여자같이 굴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다닌다, 특정 남군들에게 꼬리 쳤다, 꽃뱀이다와 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성폭력 발생의 이유가 될 순 없는 것이다.

군대 내 성폭력은 일종의 사회적 참사다. 단순히 피·가해자 사이의 일이 아닌, 이 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구성원 모두가, 조직 자체가 아주 깊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 가해자와 주변 가해자 일부가 처벌받는다 해서 결코 이 문제가 개선되거나 해결되기란 요원하다. 여군들이 자기 보신을 위해 침묵하기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이 여전히 여군이 통제 하의 객체로 머물러 있길 바라고 침묵을 강요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한 번의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집중 기간 같은 것을 운영한다 하여 어떤 붐이 일어 문제가 낱낱이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기란 어렵다.

이미 사건 자체는 이제 어느 정도 여론이 정리되는 쪽이고, 이제는 사후대책을 두고 심의위원회를 설치하니, 민간이 합류한 형태로 대책위원회를 꾸리느니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정조사나 특검이 이루어진다면 이 사건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은 부차적인 것일 뿐, 결국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 자체에 대한 지적과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들 뭐가 진짜 문제인지 모른다. 이게 왜 반복되는지 이해를 못 한다.”는 한밤중의 토로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이 질서는 언제 깨질 수 있을지 정작 주체는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군들은 또 절망을 마주하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이 굴레 속에서 남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