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린(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여자도 군대가라는 징징거림

요사이는 잠깐 사그라들었으나, ‘여자도 군대가라 (정확히는 여자도 병사로 입대하라)’는 말은 한국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굉장히 자주, 그것도 꾸준히 등장하는 주제다. 여자도 군대가라는 말은 한국의 남성성에 어떤 위기가 봉착한 시기에 정치적인 이슈들과 물리면서 마치 한국의 가부장과 남성을 구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수단처럼 등장하곤 했다. 책의 저자가 기술한 것처럼 여성의 사회참여와 대학진학이 늘어난 80년대부터 서서히 얘기되다가 1999년, 2005년을 전후로 한 번씩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왔다. 모두 알다시피, 99년엔 IMF가, 2005년엔 호주제 폐지가 있던 해이다.

그리고 몇 년 사이 페미니즘 리부트가 이뤄지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또 슬금슬금 여자도 군대를 가야한다는 주장이 수면 위로 올라오더니, 최근 2021년 5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청원동의인이 20만을 넘기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보다 앞서서는 2021년 4월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왜 서울시장 자리가 공석이 되어 큰 비용을 지출해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망각했는지, 여당의 참패 이유를 너도나도 ‘20~30대 남성의 지지층 이탈’로 분석하며 선거 후 한국남성 달래기에 여 · 야가 총력을 다했다. 그러면서 다시 여성징병에 대한 얘기가 이번엔 정치권에서 먼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박용진 의원의 ‘남녀평등복무제’를 시작으로 너도나도 여성징병 얘기를 하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청원 20만을 달성하고야 만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여성의 군 복무 문제, 나아가 군대 문제라는 것이 일종의 징징거림에 대한 답변과 반동으로 이뤄지면 안 된다는 것을 책 전반을 통해 우려하고 또 지적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분단사회에서의 군사안보가 가지는 그 절대성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차별과 성평등의 담론만으로 여성의 징병 문제를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해방 후 전쟁과 분단, 군사정권을 거치며 강화된 병역의무와 이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표준 남성의 모델(나는 이걸 ‘진짜사나이’라고 칭하곤 한다)이 어떻게 사회문화적, 정치적으로 구성되어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 또 신자유주의를 만나며 어떤 도전들이 있는지, 여군과 남군을 떠나 대한민국 군대라는 공간은 과연 ‘갈 만한’ 공간으로의 역할을 하고있는 건지에 대하여 살펴보지 않으면 여성징병의 담론은 그저 성차별 문제의 짝패마냥 매번 등장해 구천을 떠도는 원혼처럼 맴도는 얘기만을 생산할 뿐이다.

 

가부장제 속 여군의 역할

식민지 지배 역사를 경험한 국가라면 으레 그렇듯 우리나라도 새 시대 새 국가를 마련할 탄탄한 준비 과정 없이 어느 날 광복을, 신탁통치를, 전쟁을 경험했다. 서구와 달리 국민개병제에 대한 어떤 역사적 연원이나 숙고의 과정 없이 당장의 필요에 의해 징병제 국가 된 것이다. 한국 여군의 역사는 최초 남군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다.

징병제는 전후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용함과 동시에 가부장 사회에서의 남성이 권력과 기회 – 특히 경제권 – 를 독점할 수 있도록 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반면 전후 더이상 전투에 동원될 필요가 없어진 여성에게는 군대 내에서도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부장 사회의 여성이 수행하는 일을 하도록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강제하였다. 80년대 말 여군 병과가 해체하고 각 병과로 편입되는 과정 전까지 여성이 군에서 부여받은 임무라는 것은 비서, 행정 등 직장 내에서 일종의 돌봄 노동과 같은 포지션의 업무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후 여군들의 업무 영역이 전 병과로 확장되고 사관학교마저 문호를 개방하게 된 과정도 군대 내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로 검토되었다기보다는 결국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인재확보라는 국가의 필요로 함에 따라 진행된 양상이 컸다. 2010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여군들에게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을 갖추고, ‘감성 리더십’, ‘여성주의 리더십’ 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주기를 바랐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과정에서의 ‘청순한 화장’을 갖추는 것은 덤이다. 이런 방식의 쓰임의 폐해는 여군이 자그마치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제껏 한번 제대로 된 전투부대 지휘관, 야전부대 사단장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 우리나라 군의 핵심참모 기능에 여군들이 제대로 배치되지 못한 점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군대는 여자도 남자도 ‘갈 만한’ 곳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정책적 개선을 통해 여군의 진출률과 성장은 사관학교 문호 개방을 기점으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성과를 거뒀다 (물론 사관학교 출신이라는 메리트가 작용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군을 호명하는 방식은 여전히 조직 내 남군이 우선되고 그 다음 공백을 채우기 위한 것에서 한 발짝도 못 나서고 있다. 결국 여성징병제를 주장하는 목소리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논리가 인구절벽에 따른 징집 인원 감소라는 점에서 그렇고, 여성징병제가 결국 2030 남성 세대에 대한 정치권의 답신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안타까운 점은 여성징병제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군대가 과연 갈만한 공간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여성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우고 싶어하는 그 이면에는 너도 나의 고통을 분담했으면 한다는 감정적인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징징거림’이라고 과격하게 표현하기는 했으나 결국 징징거리게 된 가장 근본적인 문제, 우리나라 군대라는 공간이 현대 안보 문제에 적합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안전한 공간인지, 장병들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보장은 이루어지고 있는지, 과연 ‘살 만한’ 공간인지에 대한 얘기는 여성징병제 카드를 꺼낸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지 않다.

지난 반세기 간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치는 과정에서 징병제를 통해 굳건히 자리잡은 국방과 안보 이슈는 여전히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국제 관계 속에서, 많은 젊은 세대의 인적 희생에 기대며 이 위태로운 절대성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여자도 군대가라’는 요구를 이상한 말이라고 취급한다고 한들 그 사실이 부인되는 것이라 믿지도 않는다. 다만 남성, 여성을 떠나 우리는 왜 모두 군대로 가야 하는지, 여전한 병영부조리와 가혹행위, 여군을 비롯한 성소수자 문제,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댓가와 휴식의 제공 문제, 성별과 출신에 따른 차별과 같은 21세기의 우리가 군대 안에서 직면한 도전적인 과제들에 대한 의문은 뒤로한 채 왜 이 무간지옥에 너도 기꺼이 동참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주목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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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