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람(전 녹색연합 활동가, <미세먼지 클리어> 공저자)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을 제주말로 ‘요망지다’고 한다는데 구럼비에 살던 맹꽁이가 딱 그랬다. 제주 해안지대는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지대로만 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귀신같이 알았을까. 똑같이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는데도 구럼비는 습지였다. 지하수가 올라오는 용천도 있었고 돌도 달라 비가 내려도 물이 그대로 흘러가지 않고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알에서 깨어나 올챙이가 성체가 될 때까지 물이 필요한 맹꽁이들에게 구럼비 바위는 좋은 서식지가 되었다. 잘 찾아온 것은 맹꽁이들만은 아니다. 바로 그 앞의 바다는 ‘산호 정원’이 있다. 산호 자체도 귀한데, 산호군락이 좋은 산란지이니 다양한 해양생물이 모여 사는 것은 당연하다.

제주 강정등대 아래에서 해군기지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 촬영한 산호군락의 모습이다. © 녹색연합
육지며 바다며 정말 많은 생물들이 모이는 곳, 그 바위를 깨고, 바다를 매립하여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그나마 맹꽁이는 사정이 나았다. 정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라는 ‘법적 지위’ 덕에 ‘난민’이 되어 제주 조천에 위치한 돌문화공원으로 보내졌다. 법정 보호종이 아닌 야생동물은 공사과정에서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포획해서 옮길 수 없는 산호들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논란이 되자 기지 건설을 주장하는 언론들은 ‘구럼비는 제주에 널리고 널린 지형’이라거나 ‘연산호는 그 정도로 가치가 있지 않다’고 했다. 기지의 필요성은 나중에 얘기하더라도, 이들은 정말 여기가 아깝지도 않은 것일까.
전세계 무력충돌의 80%가 생물다양성의 ‘핫스팟’ 위에서 벌어진다
미국의 보전생물학자인 토르 핸슨(Thor Hanson)이 그의 동료들과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의 무력충돌의 80% 이상이 생물다양성의 ‘핫스팟(hotspot)’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야생동식물이 풍부하게 살고 있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서식지인 곳들이 무력충돌의 직접적인 무대였다.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콩고에 위치한 비룽가 국립공원은 제주 강정의 범섬과 문섬처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아프리카의 산지 중에서도 이곳은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고릴라의 서식지로 유명할 뿐 아니라, 하마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지다. 그런데 지난 1994년, 세계자연유산을 관할하는 유네스코는 이곳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조정했다. 르완다는 콩고와 비룽가 국립공원을 국경으로 맞닿아 있는데, 벨기에가 식민통치 과정에서 심어 놓은 민족 간 갈등이 심각한 내전으로 이어지자, 학살과 전쟁을 피하기 위한 사람들이 피난을 오며 훼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이곳의 석유자원을 채굴하려는 다국적 기업과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의 저항도 더해졌다.
최근 아프리카의 국립공원, 생태계 민감 지역의 훼손과 정치적 갈등은 자동차, 휴대폰,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데 핵심적인 원료가 되는 광물을 둘러싼 분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분쟁 광물(conflict material)’이라 불리기도 하는 금이나 주석의 채굴권을 둘러싼 갈등이 군사적 분쟁으로 이어지고 국립공원과 같은 생태적 민감지역을 훼손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야생동물은 그 자체가 군인들의 식량이 되거나, 상아나 가죽과 같은 부속품을 위해 밀렵의 대상이 된다. 갈등이 다양한 이유로 광범위해지고 길어지자 콩고의 비룽가 국립공원 하마 무리의 95%가 사라졌다고 한다.
전쟁은 그 자체로 사람을 죽이고 지역을 파괴하지만 사회를 운영해온 제도도 무력하게 만든다. 보호구역을 관할하는 환경법이나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을 거래하지 않아야 한다는 국제적 규약도 의미 없다. 야생동물과 그 서식처가 철저하게 군사적 혹은 경제적 기능과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따지게 되므로 구럼비는 제주의 흔하디 흔한 지형의 하나가 될 수 있고, 코끼리는 상아의 값으로 셈해지고, 울창한 숲은 군사캠프로서 기능하게 된다. 숲은 주민들이나 야생동물의 삶의 기반이 아니라, 적군의 기지로 간주한다. 그래서 베트남 해안에서 고엽제 때문에 사라진 50%의 맹그로브 숲은 생태적 파괴가 아니라 적군의 요충지를 제거한 기록으로 남게 된다. 전쟁은 생동하는 생명을 끊임없이 가치 절하해야 지속할 수 있다. 폭력의 전제는 존재의 가치를 강등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생동물은 전리품이 된다
1917년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라는 사업자가 ‘일본 남아의 담력’을 보여주기 위한 호랑이 사냥 원정대를 꾸려 조선으로 향했다. 이 원정의 기록이 <정호기>라는 제목으로 남겨졌고, 몇 년 전에 국내의 생태연구자들이 이를 번역했다. 일제는 조선의 호랑이나, 늑대, 곰과 같은 대형 포유류를 해로운 짐승이라 부르며 없앤다는 의미로 ‘해수구제’ 정책을 시행했는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냥대회까지 연 것이다. 이 행사는 고급 호텔에 ‘귀빈’을 모셔 호랑이 고기 함께 시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식민지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를 사냥하고 시식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를 선전하는 정치적 행사였다. 호랑이 사냥은 일본 남성 군인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고, 용맹함으로 얻은 호랑이 가죽은 전리품이 되어 일본 천황가에 바쳐지기도 했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사냥 원정으로 전리품을 얻었다면, 현대의 제국주의는 밀거래 시장에서 멸종위기종인 눈표범의 가죽을 기념품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야생동물보전협회(Wildlife Conservation Society)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견되었던 군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40% 이상이 직접 야생동물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거나 자신들의 동료가 구매하는 보았다고 한다. 야생동물보전협회가 아프가니스탄의 불법 야생동물 거리 시장을 조사하고 사냥꾼을 인터뷰하여 발간한 보고서에는 과거 사냥꾼들이 팀을 이뤄 삼사일에 한 마리씩 잡았던 알파인 아이맥스가 2주를 넘게 헤매도 만나기 어렵다는 증언이 담겨있다.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농경지와 산림이 황폐해지자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밀렵에 뛰어드는 상황도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야생동물보전협회(WCS)가 아프가니스탄의 밀렵문제를 조사해 발간한 보고서의 표지이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생물종이 풍부하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도 많다. 눈표범, 회색늑대, 엄청난 뿔을 가진 마이크 폴로 양과 같은 포유류를 비롯해 멸종위기 철새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 WCS
전리품의 극단적인 사례는 바로 전시 강간이다. 여성은 승리자의 전리품이거나, 군인의 사기진작을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은 무수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반복되어 증명된다. 여성들의 신체는 수탈되는 식민지의 자연에 비유되고, 남성은 수탈당한 자연에 좌절하거나 전리품을 얻어내는 자로 묘사된다. 남성 군대가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은 적으로부터의 오염인 ‘강간’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염으로 보호받기 위해 여성은 복장과 행동, 활동의 범위를 통제 받는다.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부르카를 덧 입히는 것은 이러한 통제의 극단적 형태일 것이다. 그 반대로 서구의 제국주의들이 점령지 여성들의 부르카를 벗겼다면, 전리품으로서의 여성이 전시되는 다른 방식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두고 ‘해방’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면 전리품을 취득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전리품은 주인이 바뀔 뿐이지 해방될 수 없다.
다양성 사라지는 곳이 바로 전쟁터
호랑이가 가죽으로 남겨지고, 코끼리가 상아가 되어 버리고, 국립공원을 적국의 은신처로만 보는 것은 생태계의 다양성을 소거하고 물건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물건으로 강등된 존재들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흔한 것들 중의 하나가 된다. 그래서 강정 해군기지는 구럼비 바위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전쟁은 생태적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의 자원을 착취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가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느냐” 절규하게 되는 것은 전쟁을 통해 필연적으로 존재가 단순화되는 참혹한 폭력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이야기한다면, 단일하게 축소되는 다양한 존재들 곁에 서게 될 것이다. 여성들의 복장과 행동 양식이 검열받지 않는 것이 평화가 되고, 농민이 땅을 잃고 밀렵꾼이 되지 않는 것이 평화이고,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갈 수 있는 것, 그리고 제주 구럼비 바위를 대신할 수 있는 맹꽁이 서식지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 평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