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연(페미니스트 문화연구자)

2021년 10월 1일, 해병대 제1사단 주둔지인 포항 영일만에서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해군 대형수송함 마라도함 선상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공군 F-35A 스텔스기, 해군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탑재된 도산안창호함 등 첨단 무기를 선보인 육‧해‧공군‧해병대 합동상륙작전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시연을 중심으로 하여 “평화를 뒷받침하는 우리 국군의 강한 힘”을 과시했다. “이거 실화?! 국군의 날 행사에서 영화를 찍어버림ㄷㄷ 합동 상륙작전 작전명 ‘피스 메이커’ 풀버전. 우리 국방력에 넋 놓고 보게 되는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KTV국민방송 유튜브 채널의 편집 영상은 10월 28일 현재 14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관련 보도 영상 및 사진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타임라인을 벅차오르는 ‘국뽕’으로 수놓았다.

이 행사의 중계방송을 보며 나는 1965년 10월 12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열린 맹호부대의 베트남전쟁 파병 환송 행사를 떠올렸다.1) 2021년 국군의 날 기념식을 두고 56년이나 지난 일인 파월(派越) 환송식을 연상한 이유는, 한국군의 해외 파병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서사화가 이 행사에서 두드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 초반의 애국가 제창 중, 영일만 상공에서는 UN 가입 30주년을 기념하여 태극기와 19개의 해외 파병부대기를 각기 장착한 육‧해‧공군과 해병대 특수부대 요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고공강하를 실시했다. 진행자는 이에 대해 “과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한 대한민국”, “한반도를 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국군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소개했다. 진행 내내, 그리고 대통령의 기념사 속에서도 거듭 강조되는 해외 파병의 역사는 유엔 가입 2년 후인 1993년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소말리아에 공병 부대를 파병한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레바논의 동명부대, 소말리아 해역의 청해부대, 아랍에미리트의 아크부대와 남수단 한빛부대의 현재로 연결된다(기념사 전문 링크).

해외 파병 부대의 사례는 아니지만, 대통령 기념사에서는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군이 진행한 ‘미라클 작전’이 중요하게 언급되면서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많이 강해졌고, 오늘도 강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느꼈습니다.”라는 공수비행대대 편대장의 말이 인용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험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여 일군의 난민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해 낸 군인들의 공로는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겠으나, 이 공로가 어떤 맥락에서 상찬되고 있는지는 좀 다른 문제다. 한반도의 평화를 넘어서 세계 평화까지 수호하는 강한 한국군의 이미지는 지금 어떤 버전의 서사 속에서 구성되고 있는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격상되었다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시기부터다.2) ‘반공 전쟁’의 외피를 쓰고 ‘발전 전쟁’에의 욕망을 담아 진행된 한국군의 파월. 최종 철군 시점인 1973년으로부터 따져도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과거의 일이지만, 참전 중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실천은 여전히 ‘기억의 전쟁’을 지속하는 중이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은 또한 자국 청년들의 피를 바치고 베트남 인민들의 생명과 베트남의 생태계를 파괴한 값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한화를 비롯한 전쟁수혜기업 재벌들을 성장시킨 발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참전은 무엇보다, 한국군 최초의 대규모 해외 파병으로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현재진행형인 이슈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일견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국군의 역사’를 공들여 서사화하고 스펙터클하게 재현한 이번 행사에서 한국군의 해외 파병을 내세울 때, 그 역사가 유엔 가입 후 소말리아에 비전투부대인 공병대대를 파병한 데에서부터 시작된 것처럼 인식될 만한 스토리를 구성한 것은 의도적인 선택이다. 정치적 언설에서 난감한 이슈를 세심히 골라내고 도움이 되는 화제를 보기 좋게 가공하여 적절히 교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 거의 동일한 스토리를 국가기록원 기록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가기록원의 콘텐츠를 집필하는 주체가 워낙 다양하고 집필 시기도 천차만별이기에 이를 한데 뭉쳐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령 2006년에 작성된 ‘대중동 외교-해외 파병’에 대한 기록이 “한국 해외파병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1991년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한 우리나라는 1993년 소말리아에 건설공병대대를 파견한 이래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여(…)”로 시작한다는 점은 새삼 눈에 띈다(링크). ‘대중동 외교’에 대한 기술이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의 일인 베트남 파병은 건너뛰고 소말리아 파병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실제로 다른 카테고리의 콘텐츠들은 파월의 역사를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해외파병의 역사가 “매우 오래다”라고 하면서, 역시 공병부대였던 비둘기부대의 1964년 파월은 언급하지 않고 UN 가입 이후의 일부터를 셈하는 것을 무심히 보아 넘기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처럼 해외 파병의 역사를 서사화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이라는 사건은 뒤로 밀린 한편, 파월 선전에 쓰이던 발상들은 지금도 거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의 후신이라 할만한 정당과 대립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이번 정부가 이러한 것들을 ‘그들’로부터 의식적으로, 혹은 계승의 의미로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관념과 표현이 이렇게나 겹친다는 것은, 당시의 군사주의와 지금의 군사주의를 뒷받침하는 집단적 심성이 모종의 연결점을 지님을 보여 준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닮은 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지금의 군사주의를 이해할 수는 없다. 이제 ‘지금 인기 있는’ 군사주의가 어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때다.

영웅들이 꿈꾸던 평화와 번영의 나라?

문학평론가 오혜진의 글 「누가 민주주의를 노래하는가」3)의 도입부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출범 직후인 6월항쟁 30주년 대통령 기념사에서부터 “근현대사 서사화의 지배적인 구성 원리”를 만드는 데에 세심한 공을 들였음을 분석한다. “‘6월항쟁-촛불혁명-한국 민주주의’라는 일련의 사건들을 민주화의 ‘정통적’ 계보로 정향되도록 신중하면서도 선언적으로 배치한” 이 작업은 그 서사의 주역들을 가부장적인 언어로 성별화하면서 지배적 서사를 구축하는 한편, “‘6월항쟁의 재현’만큼은(…) ‘시민’의 자격을 체계적으로 계층화해왔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한 것이기도 했다.4)

여기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바로 2017년에 출범한 새 정부가 과거 민주항쟁의 적통으로 선언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정부 혹은 체제가 출범하면, 그 정통성과 정치적 지향점을 과거의 역사로부터 찾는 상상력도 함께 발동하게 마련이다. 가령 영화연구자 박유희는 한국영화에 나타난 민주주의의 표상들 속에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의 흐름은 민주주의의 전개에서 일관된 역사적 의미를 구성”하고 있으며, 2017년의 새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혁명 직후 〈택시운전사〉와 〈1987〉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5)라고 지적했다. 이는 2010년대 “촛불혁명기”의 ‘내셔널 시네마’로서 역사영화들을 묶어낸 손희정의 글에서 분석된 바, 과거의 민족주의와 상통하면서도 새롭게 구별되는 ‘대한민국주의’와 접속하고 있기도 하다.6)

이는 비단 ‘촛불혁명’과 ‘장미 대선’ 직후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으며,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말잔치나 문화적 재현의 차원 정도에서 그치는 일도 아니었다. 국내에서 이미 통용되는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최근 내놓은 한국 ‘진보정권’의 국방력 강화 드라이브에 대한 분석(번역‧요약 기사 링크)이 역사관의 문제를 포착한 것을 이러한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식민지 및 신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약자로서의 자의식이 강력한 자주국방에 대한 염원을 추동하고, 이것이 소위 진보정권의 국방력 강화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서사화의 연장선에서,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의 연출은 그간 문재인 정부가 일구어 온 군사력 강화의 혁혁한 성과를 다음과 같이 의미화한다. 애국가 제창 동안에 송출된 중계방송 영상(링크)의 내용을 보자. 1절 후렴구부터 3절 전반부까지, 예의 19개 해외 파병 부대기가 태극기와 함께 창공을 가르는 모습과, 각 부대가 현지에서 수행하는 대민 사업 및 군사 활동을 담은 클립들이 반복적으로 교차된다. 그리고 바로 뒤이은 3절 후렴구의 극적인 컬러→흑백 전환.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3‧1운동 당시 군중의 사진, 김좌진 장군의 사진과 독립군 부대의 사진, 윤봉길 의사의 사진과 체포 당시의 사진,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독립군의 모습이 담긴 영상 클립이 순서대로 나타난 후, 현재 국군의 최신 항공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투사상’과 국립묘지를 넓게 담은 화면으로 해당 시퀀스가 마무리된다. 이윽고 애국가 제창에 이어지는 대통령 기념사의 후반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국군장병 여러분, 지난 8월, 대한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귀향이 이뤄졌습니다. 지난주에는 장진호 전투 영웅, 故 김석주 일병과 故 정환조 일병을 포함한 예순 여덟 분의 용사를 고향 땅에 모셨습니다. 영웅들이 꿈꾸던 나라는 평화와 번영으로 넘실대는 나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세계와 손잡고 영웅들이 꿈꾸던 나라를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유엔에 가입한 지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우리는 유엔과 함께 자유와 평화를 지켰고, 이제는 유엔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UN 가입 2년 만인 1993년, UN평화유지군으로 처음 소말리아에 공병대대를 파병했습니다.

식민지 시기의 독립군과 한국전쟁 중 전사한 국군 장병들. 이 연설은 이들을 ‘영웅’으로 호명하면서, 해외로 뻗어 나가는 군사력을 갖춘 지금의 한국이 바로 그들이 꿈꾸던 나라라고 말한다. 1980년 5월과 1987년 6월을 끌어와 새 정권 초기의 정체성을 구성했던 6월항쟁 30주년 기념사처럼,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은 잘 알려진 독립투사들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한국군의 뿌리를 독립군에 댄다. 이것이 해외 파병과 대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세계로 뻗어 나가는 강군’의 위상을 선전하는데,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국방’의 역사로써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순. 많은 것들을 성큼성큼 건너뛰며 구성된 이 비약은, ‘우리 대한민국의 성장’이라는 접착제가 있어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이는 “6월항쟁에는 계층도 없었고, 변방도 없었다”는 수사로 반독재 투쟁의 균열점들을 은폐하듯이7) 식민지 시기의 반제국주의 투쟁이 지닌 다양한 결을 ‘대한민국주의’의 자장 속으로 묶어버린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음험한 지점이 또 남아 있다.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8)

국군의 날과 같은 달, 19일~23일에 열린 2021 서울 아덱스(ADEX,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개막식의 대통령 기념사는 국군의 날 기념사의 ‘국방력 강화’ 부분을 확대‧강화한 버전이라 할만하다(전문 링크). 최근 격화일로를 걷는 남북한 군비 경쟁의 허구성과 층층이 쌓인 문제점이 전문가들에게 지적되고 있지만(창비주간논평 링크), 문재인 정부의 수사 속에서 군비 증강은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내겠다는 우리 군의 헌신”이자 자랑거리일 뿐이다. 한국 대통령 최초로 국산 전투기(FA-50)에 탑승하여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현충원, 용산 전쟁기념관 상공을 비행하여 아덱스 개막식장인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한 벅찬 감동을 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는 한국이 “1960년대 후반 “우리 군이 쓸 무기를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정신으로 방위산업을 출발시켰”다고 말하며 이후 진행된 혁혁한 ‘발전’의 내력을 읊는다. 이 발언은, 비판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상당하지만, 어쨌든 ‘평화를 지키는 자주국방’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이해해볼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국방산업을 내수형에서 수출형 산업으로 발전”시켜 현재 한국이 “세계 6위의 방산 수출국으로 도약”했다는 것, 이것이 “4년 전보다 네 계단이나 올라선 순위”라는 것, “방산업계의 세계화를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방위산업’(Defence Industry)이라는 표현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기 위한 산업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국의 방위산업 기업들은 1991년 동티모르 독립운동 유혈 진압에 쓰인 최루탄에서부터 바레인, 웨스트파푸아, 터키, 시리아, 예멘, 이라크 등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 투입된 무기들을 공급해 왔다. 한국이 “세계 6위의 방산 수출국으로 도약”했다는 자랑에는 이런 그림자가 숨어 있는 것이다. 마치 한국군이 해외 파병을 통해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말 뒤에, 예멘 내전에 개입하는 아랍에미리트 특수전 부대의 교육 훈련을 아크부대가 담당했다는 사실이 숨어 있는 것처럼.9)

아덱스 개막식에서 대통령이 반갑게 맞이한 28개국 440개 방산기업들은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는 전쟁수혜자(War Profiteer)들이다. 아덱스저항행동이 최근 진행한 국제 웹세미나에서 지적된 바를 이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하다(관련 기고문 링크). 가령 산업연구원이 2020년에 한국의 방산수출 유망국을 선정하는 연구보고서(링크)를 발간하면서 그 선정 기준에 해당 국가의 분쟁 가능성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은, 주요 방산기업들의 주가가 전쟁의 가능성이나 군사적 긴장의 정도에 따라 오르내린다는 일반적인 원리10)를 상기시키는 한 단면이다. 방위산업에서의 “국제협력”을 통해 “안전한 삶과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 세계와 연대하고 협력”하겠다는 아덱스 개최국 대한민국.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책연구기관은 이처럼 분쟁 가능성이 큰 국가일수록 방산 수출의 매력적인 대상이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넌 어른들 말하는 데 끼어들지 마. 네가 대체 뭘 안다고 떠드는 거냐!” 아빠가 한국어로 소리쳤다. 모두들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봤다. 투이네 식구들 앞에서 아빠에게 그런 식으로 야단맞은 것이 부끄럽고 억울해서 귀가 먹먹해지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서 독일어로 말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우린 아무에게도 잘못한 게 없다고. 우린 당하기만 했다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는데……”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투이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식탁의 분위기를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이 엄마 가족 모두를 다 죽였다고 했어. 할머니도, 아기였던 이모까지도 그냥 다 죽였다고 했어. 엄마 고향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대.”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는 말투였지만 나는 그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위 인용은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문제를 다룬 최은영의 소설 「씬짜오, 씬짜오」11)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남을 침략한 적이 없다, 우리는 늘 외세에 당하기만 했다’라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과 파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실이 충돌하는 순간의 충격을 소설적으로 생생하게 재현한 장면이다. 이것이 흘러간 ‘과거사’에 대한 일이기만 할까. 이는 민간인 학살 피해생존자들이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현재의 문제이지만, 병력과 무기산업의 해외 진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독립군의 표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오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강한 국방력’을 내세우는 것이 지금의 군사주의 선전 전략이라는 점에서도 현재의 문제이다.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안보를 위해서는 군사력 강화와 방위산업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이는 안보라는 말 앞에서 군사 안보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인간 안보를 중심에 놓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협력을 선도해 나가겠다”라고 선언했다. 인간 안보. 국가 단위의 전통적인 군사안보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중시하는 안보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는 이 개념이 유엔개발계획(UNDP)의 보고서에서 처음 제안된 것도 벌써 1994년의 일이라, 그 이념적‧현실적 한계 역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터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군사 안보 너머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기는커녕 (가령 확산탄금지협약 가입을 보류하는 핑계가 되기도 했던) “특수한 안보 상황”을 이유로 한 군사력 증강과 진출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19년 9월 유엔 인권이사회(UNHCR) 산하 ‘예멘에 대한 국제 전문가 그룹’은 「2014년 9월 이래 예멘의 인권 상황」 보고서를 통해 예멘 내전의 전쟁범죄 책임 소재를 논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 무기 판매와 군사 지원을 하는 영국‧미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 역시 전쟁범죄의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과 2021 서울 아덱스 개막식에서 자랑스럽게 선전된 한국군의 병력과 한국 방위산업의 세계 진출, “4만5천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총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를 ‘평화’라고 선전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가려지고 있다. 이제 ‘피스 메이커’라는 왜곡된 서사에서 눈을 돌려, 전쟁수혜자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발전’ 너머의 일들을 직시할 때다.

각주

1) 주최측 추산 20여만 명의 관중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이 행사는 당시 각종 매체에서의 보도를 통해 널리 유통되었고, 그 기록 영상 또한 참전 시기 영화들에 자주 삽입되면서 박정희 정부의 군사주의 선전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

2) 가령 앞서 언급한 맹호부대 파월 환송식에서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과거 남의 도움만 받아 왔던 우리 역사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새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습니다”라고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베트남 ‘현지’ 방문 이후의 연설에서는 “우리가 이미 안정과 번영을 이룩한 가운데 과거의 인종과 굴욕의 역사에서 탈피, 어엿한 주권성년국가로서 발전”하였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3) 오혜진, 「누가 민주주의를 노래하는가 :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한국 장편 남성서사의 문법과 정치적 임계」,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편, <그런 남자는 없다>, 오월의봄, 2018.

4) 같은 글, 263~264쪽.

5) 박유희,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책과함께, 2019, 233쪽

6) 손희정, 「촛불혁명의 브로맨스 : 2010년대 한국 역사영화의 젠더와 정치적 상상력」, 오혜진 외, <원본 없는 판타지>, 후마니타스, 2020. 이 글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방북 기념 연설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한다.

7) 오혜진, 앞의 글, 264쪽.

8) 이 문구는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 캠페인팀 활동가 쭈야의 글,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의 제목이다. 이 글은 2018년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발언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연구자‧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의 책, <난민, 난민화되는 삶>(갈무리, 2020)에 실려 있다.

9) 쭈야, 앞의 글, 402~404쪽.

10) 이용석, <평화는 처음이라>, 빨간소금, 2021, 97~99쪽.

11) 최은영, 「씬짜오, 씬짜오」,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