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주(병역거부자)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용석 씨가 병역거부 수감자들에게 공개 편지를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회사 생활에만 몰두하게 되면서 저의 머릿속에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생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저의 관심사는 거의 노후나 돈 생각으로 쪼그라들어 있던 터라 편지를 쓰겠다는 대답을 바로 하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수감자들의 편지들을 몇 편 읽으면서 저의 수감생활도 조금 기억이 나고, 저 역시 수감생활을 하면서 편지로 힘을 얻었으니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저의 편지가 수감자들에게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전쟁없는세상을 통해 알 수 있는 병역거부 수감자는 두 분이 계신데, 두 분 다 수감 기간이 비슷하게 6개월이 지났고, 이제 그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하고 지루한 감도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두 분 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다른 수감자들의 혐오 발언들이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감옥 안에서 혐오 발언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밖에서 그런 발언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강도의 차이도 있고, 밖에서는 그런 경험을 피하거나 대처할 가능성도 커서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저의 경험을 나눠볼까 합니다.
회사에서 4명 정도 점심을 같이하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식사하면서 가끔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한 분이 “밥 먹는데, 이제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는 그만하죠~”라고 말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그런 경우를 두 세 번 겪으면서 저는 속으로만 답답해했죠. 어느 날은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더럽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느냐”고 따진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수는 있는데,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겠다면 앞으로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는 정도로 지내자고 말했지요. 다행히 그분이 미안하다며 조심하겠다고 했는데요. 이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을 것 같습니다
대학 동기들의 카카오톡 채팅방이 있습니다. 제가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에 동참해달라는 글을 올렸어요. 그 글에 대해서 정말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는 저만의 느낌인지 몰라도 제가 하는 말에는 아무도 응답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에는 그 친구들이 올리는 글을 읽기만 하고 저의 이야기는 올리기 어려워졌습니다.
11월 8일부터 인권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연내제정 쟁취를 위한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유력 대권 주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반대의 입장에 있는데, 제가 느끼는 고립감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 그저 지치지 않고, 변화의 실낱을 잘 잡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11월 13일)는 김경묵 감독의 개인전 <QUARANTINE: 독방의 시간>을 보고 왔습니다. 김경묵 감독은 평화주의의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해 2015년 1월 14일 수형 생활을 시작했고, 수형자 면담 과정에서 커밍아웃해 출소하기까지 1년 3개월간 독방생활을 했습니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었고, 감옥 안에서도 독방에 있게 되면서 더욱 고립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혼자 있다가 보니 명상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스로 만든 가상공간에서 신체를 구속하는 물리 공간을 일시적으로나마 넘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소 이후에 뉴미디어를 공부하고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요. 이번 개인전에서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자신이 느꼈던 격리의 감각을 VR을 통해 관객과 나누었습니다.
김경묵 작가는 트라우마적인 경험으로 대한민국을 떠나 2년간 공부를 했고,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기억을 헤집어 봐야 했습니다. 아티스트 토크 시간에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지겨울 정도로 주고받았던 서신도 다시 보고 기억을 떠올렸는데, 이제 6년간 독방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라고 말했어요. 자신만의 방법으로 수감자의 기억을 사회와 나누고 자기 자신도 치유했다고나 할까요? 부러운 마음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평화수감자의 날은 2년 만의 “대면” 행사를 하게 됩니다. 서로 직접 얼굴 보고 인사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네요. 내년에 홍정훈, 오경택 님도 함께 만날 시간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기간에 감옥 안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추가적인 불편함도 없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