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총을 들지 않겠다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선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종교적 이유에서든,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이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만큼 어떤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토록 크게 형벌을 받는 사람이 또 있을까?
김환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이 극장에 걸린다. 감독은 2001년부터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기를 결심한 사람들을 영상에 담아냈다. (점차 나이 들어가는) 젊은 남성들과 병역거부 운동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이 주인공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의 머리 스타일, 안경, 말투가 달라지는 모습을 하나하나 보다보면 친근함이 절로 생긴다. 저렇게 밝게 웃고, 병역거부로 토론하고, 자신들의 농성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눈물 짓는 사람들을 감독이 참 오랜 시간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집총을 거부하고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뒤 1년 6개월 형을 받아 감옥에 갇힌다. 광복 이후 최근까지 입영 및 집총 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2만 명에 이른다. 99%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최근 대체복무제 시행 전까지 해마다 500명 안팎씩 형사처벌을 받았다. 영화는 병역거부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 외에 정치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고 병역거부를 운동으로 만들어낸 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2000년대 초반의 그들은 탑골공원 앞에서 가판대를 깔고 병역거부 안내 자료를 배포하며 할아버지들에게 “빨갱이 새끼들, 북으로 가버”리란 막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던 이들이 또 어느 시기부터는 무기거래 반대 운동을 하며 무기전시회에서 전시장을 누비며 “무기수출 반대”를 외친다. 그야말로 종횡무진.
무슨 말이 하고 싶어 감옥까지?
영화는 병역거부를 결심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왜 병역거부를 결심했는지 말하며, 또 감옥에 가서 보내게 될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말을 하며 자신의 다짐을 굳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하나같이 감옥에 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병역거부자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상황에서 병역거부를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평화운동, 반전운동이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거부를 결정한 계기였다. 2001년 불교신자이자 평화주의자인 오태양의 선언 이후 많은 이들이 병역거부 선언을 한다. 2006년에 병역거부 선언을 한 효웅은 자신이 겁이 많아 군대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앞서 평화주의자들 역시 차마 총을 들 수 없다며 병역을 거부했다. 그들과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효웅은 강인함·남성성 등이 극대화되는 곳인 군대를 자신의 유약함을 드러내며 거부한 것이다. 2009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는 이길준 당시 전경이 시민들을 향한 진압을 거부하며 병역거부를 하기도 한다. 할 수 없다는 것은 용기가 없다는 말일텐데, 군생활을 할 수 없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렇게 겁이 많아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들은 결국 평화를 향한 파장을 일으켜 사회를 당황시킨다.
영화는 오랫동안 병역거부 운동을 해온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최정민과 병역거부자이자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용석, 그리고 병역거부자이자 변호사인 임재성을 주요하게 인터뷰한다. 이를 통해 양심은 무엇인지, 평화와 평화운동은 무엇인지를 듣는다. 2000년대 중반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방청객은 ‘평화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 자리에 방청객으로 출연한 임재성은 ‘평화는 권력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심이란 무엇일까?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나온다.(헌법 제 19조) 그런데 총을 들 수 없다는 이들의 양심이 정말 보장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입영 거부는 바로 징역형으로 이어졌던 시기가 바로 2년 전이다. 몇 몇 재판에서 판사들이 병역거부를 무죄 판정하며 가능할 것 같던 순간도 있었지만 대체복무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그들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
병역거부운동의 길, 평화운동의 길
병역거부자들과 후원자들이 모여 2003년 설립한 전쟁없는 세상이 바로 병역거부운동의 모든 곳에 있는 단체다. 전쟁없는 세상의 활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되기도 한다. 전쟁없는 세상의 활동가 및 회원은 병역거부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수차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다투었지만 될 듯 될 듯 도입되지 않았던 대체복무제. 아직 우리 사회는 병역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복무하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던 터였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준비하면서도 전쟁없는 세상은 다른 방향으로 활동을 확장해간다. 바로 무기거래 반대 운동이다. 한국 기업들이 전쟁 발생으로 이윤을 얻는 체제를 바꾸기 위해 전쟁 무기거래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방위산업전시회가 열릴 때 저항 행동을 벌이기도 한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04년과 2011년,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가 대체복무제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병역법 규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더 이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함으로써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다.
다른 물음을 가진 자들이 던진 수많은 돌멩이
대체복무제는 최근에 와서 시행되었지만 논의와 시도는 생각보다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여러 명의 감옥행이 결정되었다. 카메라 속 많은 이들이 웃고 있지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라 머뭇거리던 그때.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때 던진 돌을 그 후로 얼마나 더 던져야 수면 위로 올라올지. 조금 더 돌을 던지면 될 수 있을 것 같은 시기도 있었지만,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대체복무제가 시행되게 되었다는 것을 그때 그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18년 간 군대, 전쟁에 질문을 던지며 묵묵히, 또 요란하게 활동해 온 병역거부자들과 활동가들. 앞으로 이들이 어떤 길로 향해갈지 궁금해진다.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진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그들을 만나러 극장에 가보시길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