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사무국장, ILGA ASIA 공동의장)
전쟁없는세상 주:
전쟁은 모두에게 비극이지만, 모두에게 같은 형태의 비극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재난이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것처럼 전쟁 또한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옵니다. 우크라이나 성소수자들에게 이번 전쟁이 어떤 위협인지, 지난 3월 4일 촛불집회 때 캔디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요, 그 발언 내용을 글로 정리해 주셔서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싣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가까워져 가고 있다. 전 세계의 언론이, 전문가들이, 호사가들이 수많은 판단과 주장과 요청을 내놓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현재 전쟁을 끝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의 피해는 비극적이고 자극적으로 드러나거나, 아니면 아예 묻혀서 사라진다. 이런 목소리가, 피해가 사라지지 않고 드러나기 위해서는 아마도 모두가 이 피해가 나와 가까운 것 혹은 나의 것으로 느낄 때뿐이지 않을까 싶다.
우크라이나의 성소수자들에게도 당연히, 그리고 다른 국민보다 더 잔혹한 목소리로 전쟁이 찾아왔다. 러시아의 성소수자 정책을 혹시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2013년, 러시아는 ‘비전통적 성관계(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러시아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때 이미 우크라이나 성소수자들을 색출하고 살해한 바가 있다.
2021년, 러시아는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미 색출할 성소수자 활동가들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 왔다. 활동가들이 쉼터를 마련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현지 상황상 그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보호시설은 적고 지원은 한정적인데다가, 현지의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지정성별로 되어 있는 여권 때문에 출국하기 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성소수자 운동이 생기기 시작하여, 최근 10년 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던 나라이다. 프라이드퍼레이드는 2013년에는 50여 명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8,000여 명이 모이는 행사로 발전했으며, 물리적 폭력을 걱정해야 했던 퍼레이드에서 대통령이 보호와 지원을 이야기하는 퍼레이드로 변모했다.
우크라이나 성소수자 인권의 향상은 국가의 민주주의 의식의 향상이었고,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실제로 2007년 설문에서는 우크라이나인의 81.3%가 동성애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지만1), 2017년 여론조사에서는 56%가 평등한 권리에 동의했다.2) 고용차별금지법이 생기는 등 새로운 법안이 생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대통령이 성소수자의 평등을 위해 싸울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사회의 성소수자 인권지수가 높아져 가는 것으로 눈으로, 몸으로 느끼고 있었을 우크라이나 성소수자들에게 이번 전쟁은 특히나 더 두려울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면서 정책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긴장하고 고민하는데, 전쟁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특히나 침략국 러시아는 반동성애 정책을 펼치고 있기에 국가의 안전이 곧 자신들의 생사와 직결할 수 있는 성소수자들은 누구보다 이 전쟁이 끝나길,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고 있다.
어떤 성소수자들은 다행히 다른 나라로 탈출하여 증언하고, 어떤 이들은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며 그 안에서 성소수자를 가시화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곳에 남아 묵묵히 서로를 돕는 일에 헌신한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듯이, 가장 옳은 방법이란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우크라이나 성소수자들이 당할 박해를 이야기하다가, 이들이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돌아본다면, 자국의 안전이 자신의 생사와 직결된 우크라이나 성소수자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입대를 선택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인이 된 성소수자들은 나라의 안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자신들이 군대에 있음으로써 군대 내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리라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속상하긴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어느 한쪽으로만 명확할 수는 없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성소수자들이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러한 복잡하고 미묘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약간은 떨어져 있는 한국에서, 사실 나는 조금은 초연했었다. 아니,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지금 이미 전 세계에는 수많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전쟁’ 중 하나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계기가 나를 한국에서 우크라이나로 하루아침에 끌어가게 되었다. 전쟁이 나기 전 주에 회의가 있어 제네바에 다녀왔다. 함께 회의한 동료 중에는 우크라이나의 레즈비언 활동가가 있었다. 사람들이 우려 섞인 이야기에도, 그녀는 우리는 나라를 지킬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말했던 대로,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다른 성소수자들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침략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떨까. 전쟁은 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안타깝고 불쌍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나의 가까운 사람에게도, 혹은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고, 그 영향이 다양한 각도로 나에게 미치는, 나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일이다. 나는 절대 전쟁과 무관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나도 결국은 전쟁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소수자 활동가인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묻는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싶고, 그걸 드러내고는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나는 늘 ‘자기 자리에서, 자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세요.’라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우려면 왠지 목소리를 함께 높이거나, 싸워서 이기거나, 아니면 엄청난 돈을 후원해야 한다거나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가끔은 너무나 사소한 곳에서 더 중요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린 뭘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무엇이든 하시라. 우린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길 바란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한국에 유학을 와 있는 우크라이나 성소수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다행히 탈출하여 한국으로 떠나온 우크라이나인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들의 손을 잡아주어도 좋고, 말을 한마디 건네도 좋고, 당연히 후원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함께 높여도 좋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 때, 나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내 어깨를 감싸주던 따뜻한 손, 따뜻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였다. 이 세상에 내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우린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
지금의 전쟁이 우리가 하는 전쟁 반대 평화집회 따위로 끝낼 수 없다는 절망감이 혹시 든다면, 내 목소리 하나가 다른 목소리와 합쳐지고, 그것이 점점 더 커지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으면 한다. 그리고 혹시나 우리의 집회가 전쟁을 끝낼 수 없을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힘을 주고 희망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부디 이 전쟁에서 성소수자뿐 아니라, 그곳의 모두가 안전하고 빠르게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각주
- Angus Reid Global Monitor, https://web.archive.org/web/20080513173948/http://www.angus-reid.com/polls/view/ukrainians_decry_shoplifting_drunk_driving/
- ilga riwi global attitudes survey, https://ilga.org/what-we-do/ilga-riwi-global-attitudes-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