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전쟁없는세상 주:

그동안 전쟁없는세상 사무국으로, 무기감시팀 코디네이터로 (각종 평화집회 행진 차량 선동가로!) 맹활약을 해온 뭉치가 사무국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으로 평화운동을 계속 이어갈 뭉치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하고, 앞으로 새로운 역할과 포지션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응원을 보내주세요.

 

 

2018년 5월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서 전쟁없는세상을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대체복무 도입 캠페인을 함께 하는 연대 단체 중 하나에 속한 1년차 활동가였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이 지나고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제공하지 않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8년 싸움의 결과였다. 기자회견과 축하파티를 함께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변화를 위해 18년을 싸운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이제 겨우 1년차인데, 이 일이 매일 매일 너무 어렵고 자신이 없는데. 18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까마득해 보였다. 그 시간을 만들어 온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이 궁금했다. 평화캠프를 계기로 비폭력트레이너네트워크 망치에 합류했고,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도 꼬박 나갔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다.

내가 인권활동을 시작했던 2018년에는 예멘에서 온 난민 500여 명이 제주에 도착했다. 불 번지듯 빠르게 번지는 혐오에 치를 떨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난민 반대 집회에 맞서서 난민반대반대집회를 조직했다. 경찰이 ‘난민 찬성 집회’라고 명명한 그 집회에서 나는 난민혐오집회를 마주한 채 행진로 보호대열을 지켰다. 이렇게 자비도 없고, 염치도 없고, 심지어 기억력까지 나쁜 이 사회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력감을 느꼈다. 예멘전쟁에서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다음 해였다. 전쟁없는세상과 평화단체들이 함께 꾸린 아덱스저항행동을 통해서였다. 세열 수류탄, 대전차미사일. 예멘전쟁에서 쓰이고 있는 낯선 이름의 무기들을 보며 나는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민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겪었다는 전쟁이라는 사건을 더 이상 낯설게 볼 수 없었다. 난민 혐오에 맞서고, 정부에 난민협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일에 더해,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이들이 겪은 전쟁에서 우리의 책임을 발견하고, 그 책임의 무게를 지는 것. 무기감시 활동이라는 걸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이다.

그리고 무기감시팀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지난 3년 동안 매일을 헤맸다. 국가 안보, 기업 기밀이라는 핑계를 방패 삼아 한국이 만든 무기가 어떤 경로로, 어떤 절차를 거쳐, 어디에 수출되고 있는지는 철저히 비밀로 지켜졌다. 이미 팔린 무기들이 태국에서, 웨스트파푸아에서, 미얀마에서 사람들을 겨눌 때는 발을 동동 굴렀다. 무기박람회가 일 년에도 몇 번씩 열리지만, 그들의 규모와 힘에 비해 우리는 너무도 작고 작아서 맥이 빠질 때도 있었다. 거대한 무기산업이 꿈쩍이나 할까 하는 자조가 들다가도, 우리의 목소리가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은 분명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 소박한 ‘깡’ 하나로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쳤다.

상근자가 세 명인 작은 단체에서 무기감시 담당은 나 하나 뿐이라 종종 외롭고 막막했을 법도 한데, 나는 정말이지 그 어느 때보다도 동료가 많다고 느꼈다. 무기팀원으로 함께하는 쭈야, 재욱, 승호, 날맹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없는세상 내부 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이웃 단체 활동가들이 늘 곁에 있었다. ‘무슨 자료를 들여다봐야 하지, 어떤 언론에 연락해야 하지, 경찰조사에서 어떻게 답을 해야하지, 액션에서 쓸 장구는 어디서 구하지.’ 관문 앞에 멈춰 설 때 마다 내 손을 잡고 그 관문들을 함께 턱턱 넘어 주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활동가들이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쓰이고 있는 한국산 무기들을 제보해 주었고, 함께 연대 액션에 나서주었다. 그들이 캠페인을 하며 시도했던 일들 중에서 효과적이었던 방식, 잘 먹히지 않았던 방식을 말해주었다. 무엇보다, 무기상인들과 전범국가의 무기구매 담당관들이 전 세계의 무기 박람회를 돌아다닐 때 ‘우리’가 언제나 거기 있을 거라는 사실이 정말 든든했다.

 

2021 아덱스 저항행동 때 사진

2021 아덱스 저항행동 때 사진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전쟁없는세상이 대체복무 도입까지 싸웠던 18년의 시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뛰어난 몇 명에 의해, 획기적인 사건 몇 개가 쌓여 만들어진 18년은 분명 아니었다. 전쟁이 한 명의 나쁜 지도자에 의해,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촉발되는 게 아니듯, ‘전쟁없는세상’으로 나아가는 변화도 한번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시선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고, 회의하고, 말하고, 기록하고, 재미있는 작당을 모의하고.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그 18년을 만든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도 전쟁없는세상과 함께할 앞으로의 18년, 20년, 30년을 기대하게 됐다. 처음엔 그저 까마득하고 막막했었는데 말이다. 분명 멋진 일들을 많이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한다.

사무국에 합류한 초기,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팀은 운영위원들과 무기팀을 거쳐간 올드멤버 활동가들을 초대해 로드맵 워크숍을 열었다. 막 합류한 활동가로서 보탤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선명히 마음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누군가가 “뭉치가 부르면 무조건 올게요”라고 약속했던 것. 전없세 사무국 활동을 하는 내내 나는 그 말을 용케도 실현해냈다.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모르는 걸 물어보고, 직접행동에 초대하고, 전없세 행사에 패널로 섭외했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은근 소심한 나라서, 그 말이 없었다면 혼자 끙끙 앓으며 지샌 밤이 훨씬 더 많았을 거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코디네이터 쥬에게 약속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앞에서, 엄숙하게. “쥬가 부르면 무조건 올게요.” 쥬라는 사람의 새로운 색깔을 더하게 될 전없세 무기감시활동이 기대된다. 그가 무기팀 활동을 하며 조금 힘들고 아주 많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바램을 가진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함께해주시라. 쥬의 행복을 위해, ‘전쟁없는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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