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동물권 활동가)

 

나는 평화가 어렵다. 이 세계에서 평화가 아닌 폭력을 선택하는 건 중력처럼 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평화를 굳이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마음들이 있다.

나는 동물권 활동을 하면서 전쟁을 보았다. 도살장 앞에서 그리고 우리의 식탁 위에서 전쟁 당사자들의 몸과 잔해를 보았다. 나는 이것이 전쟁이고 학살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평화는 말하지 못했다. 어떤 풍경이 우리의 상상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우리가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사람들이 물어올 때, 난감했다. 평화의 얼굴은 어떤 것인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 상상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만나, 응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 싶었다. 평화의 얼굴을 엿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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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보았던 얼굴은, 주용성 사진전 <우리가 없는 이튿날에> 였다. 기지촌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얼굴이 대형 사진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기시감을 느꼈는데, 일전에 나는 <당신의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도살장 앞에서 만난 동물들의 얼굴을 전시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은 강하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얼굴, 입을 꾹 다문 얼굴, 이부자리 위에 쭈그리고 앉은 얼굴, 그 방과 꼭 닮은 얼굴, 그런 얼굴들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지 깨닫는다. ‘기지촌 여성’, ‘양공주’, ‘창녀’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말 한마디 얹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얼굴이라고, 이렇게 살아있는 얼굴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도살장을 가기 위해 동두천, 포천을 자주 방문했다. 나중에 그곳이 모두 기지촌 형성 지역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 도살장과 공장식 축산 시설이 세워진 이유 또한 주둔 미군에게 고기를 공급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무엇을 먹으려고 하는지에 따라 그곳은 도살장이 될 수도, 기지촌이 될 수도, 그들이 먹고 버린 것을 처리하기 위한 쓰레기 소각장도 될 수 있음을(도살장 옆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 공간과 그곳의 존재들이 무너져내릴 수 있음을 알았다. 그들이 옆에 두고 먹기를 택한 여성, 동물들.

점령지란 그런 것이다. 한 명의 신체를, 하나의 공간을 자신의 연료로서 인식하는 것. 그렇게 살아있는 이들을 살아있지 않게 하는 것, 폭력의 연료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 기어코 살아있는 것. 나는 잠시 당신의 집을 방문했다.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_일곱집매> 일곱 집이 자매처럼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다정한 이름, 그 이름이 그토록 아픈 이름이 될 때 당신들은 어떤 방에 앉아 어떤 소식을 듣고 살았는지 잠시 엿보았다. 그 방에 잠시 앉아도 보았다.

지금은 경로당 자리가 된 예전 성병관리보건소 부지를 보며, 이곳에 당신들이 남겨놓고 간 기억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인터뷰 속 기지촌 여성들이 말한다. 낙검하면(성병 검진에서 떨어지면) 감옥에 간다. 그들이 감옥에 가는 이유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고, 여성이기 때문이고, 감히 살아있고자 하는 생존 의지 때문이다. 낙검한 이들은 국가에 의해 강제 수용되었고 국가는 그들의 몸을 재단하고 정체성을 삭제했다. 그들의 몸이 그들의 것이 아니라 한국정부와 미군 당국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 수입이 당시 한국의 총생산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며 국가는 그들에게 ‘더 더’를 외쳤고, 국가 안보를 위해 힘써달라고 정부 기관 인사가 그들에게 당부한 국가 기록이 버젓이 남아있는데도, 그들의 몸에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마치 그들이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국가는 침묵한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살아 남아서 밥을 먹고, 시위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방은 여전히 차갑고 창백하다.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건, 그들의 말이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닌 인간의 언어일 때, 난잡한 여자의 미친 소리가 아니라 생존자의 서사로 이름 붙여질 때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울부짖음과 미친 소리 또한 듣고 싶다. 온기 없는 그들의 방에 들어설 때 찌걱찌걱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들이 언어를 획득하기 이전, 서사를 부여받기 이전 형용할 수 없었던 감정과 상처들은 그 모양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더라도 책자의 형태를 갖추지 않더라도 나는 그들의 얼굴을 만나고 싶다. 왜 그들의 목소리를 지금껏 듣지 못했는지, 왜 그들이 한동안 노래하지 못했는지 모두가 질문해야 한다. 몇 년 전 서울, 그들의 공간, 시간과는 다르지만 나 또한 나의 성을 상품화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종의 연결감을 느낀다. 그들의 이야기와 만날 때에야 나의 이야기도 완성될 수 있음을 안다.

 

이튿날에는 ‘군사주의x가부장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커다란 강당에는 두 개의 축이 생겼다. 하나의 축은 군사주의였고, 다른 하나의 축은 가부장제였다. x자의 한가운데 우리는 모였다. 진행자의 질문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몸을 왼쪽이나 오른쪽, 위나 아래로 움직여 위치시켰다.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군대를 다녀왔다” “나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빠르게 피난갈 수 있다” “나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성폭력을 당할 위험이 없다” 질문에 나의 몸으로 응답할 때마다 나는 점점 구석으로, 구석으로 밀려났다. 나중에 50대 보수 국회의원 역할로 자신의 몸을 위치시켰던 한 참가자가, ‘너무 앞으로만 가다 보니까 뒤를 돌아볼 틈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구석으로 밀려났지만 시선은 앞을 향했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누가 군사주의의 축에서 우위를 점하고 누가 가부장제의 축에서 밀려났는지. 그러나 나조차도 앞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뒤에, 나의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피지 못했다. 여러분의 곁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세요, 라고 진행자가 말했을 때에야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의 곁에는 여성, 퀴어, 장애인, 이주민, 빈민, 청년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남아 있었다.

극단적인 폭력의 상황에서는 등급을 매겨 누가 우선인지 고른다. 그것이 또다른 폭력을 양산하여 차별과 배제를 만든다. 그 등급의 기준이 군사주의와 가부장제라면, 우리의 몸은 주목받을 수도 멸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더이상 그들이 나를 구원하게 두지 않기로 했다. 그들 기준에 따라 나의 몸을 더 높은 곳에 위치시켜 더 빨리 구원 받기를 욕망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폭력의 상황에서도 더이상 앞만을 보지 않겠다, 곁을 살펴 서로를 돌보겠다, 누구도 뒤에 남겨두고 가지 않겠다는 마음들을 그곳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x는 군사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이 아닌, 더이상 이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부의 선언, 우리의 위치에 대한 기록(x)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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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병역 거부를 선언한 8명의 여성이 있다. 그 중 무려 4명이 평화캠프에 함께했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퀴어로서, 페미니스트로서, 강정의 주민이자 활동가로서 병역을 거부했다. 처음 여성병역거부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 ‘멸치’가 말했던 것처럼 나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알 것 같고, 어떤 면에서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페미니즘은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이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마주했던 증인으로서, 매개자 그리고 동료로서 그들을 잊지 않는 일이다. 나는 전후세대이지만 여전히 어떤 전쟁들을 목격한다. 70년 동안 전쟁을 준비 중인 병역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비정상 신체로 살아가는 것 또한 신체에 대한 하나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범주에서 밀려난 이들, ‘정상 신체’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만드는 병역거부선언이 더욱 반가웠다. 군대 생활을 모른다는 것이 군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군대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군대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퀴어는 퀴어로서의 전쟁을 수행하며 동물은 동물으로서의 전쟁을 수행한다. 우리는 각자의 군복을 벗을 수 있다. 동물을 먹지 않겠다는 것은 인간성이라는 군복을 벗는 병역거부선언이고, 공동체 내 성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은 젠더 권력이라는 군복을 벗는 병역거부선언이다. 세번째 날 함께 적은 비협조 선언문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 나는 여성병역거부를 하고싶다.

 

<모든 전쟁에 대한 비협조 선언문>

어떤 전쟁은, 그들 부족이 ‘바퀴벌레’ 같다는 상대 부족의 비하 때문에 혐오범죄로서 발발했다고 한다. 어떤 존재의 이름은 전쟁이 일어날 만큼 혐오스럽다. 혐오는 그 존재의 몸 위에서 얼마나 많은 총칼의 형태로 지나갔을까.

나는 인간 피난민과 인간 자본의 파괴만이 전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의 몸은 휴전 없는 전쟁터다. 전쟁에서 사용하는 총칼과 동물 도살에 사용하는 총칼은 얼마나 다른가?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숙소와 배터리 케이지는 얼마나 다른가? 우리가 동물의 집을 침입하여 휩쓸어놓고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만을 가져가는 행위는 전쟁시 민간인 주거 지역 침탈 및 강도와 얼마나 다른가?

이 모든 것은 이미 전쟁이다. 누구의 전쟁은 전쟁이고 누구의 전쟁은 전쟁이 아닌가? 그 기준은 누가 만들었고 우리는 언제부터 그것을 수용했는가? 나와 당신에게 질문하고 싶다. 동물의 몸은 언제부터 폭력의 놀이터가 되었나? 우리는 종(species)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은 적이 있는가? 인간성이라는 군복을 벗은 적이 있는가?

나는 한 명의 동물이자 여성, 퀴어, 정신 질환인, 성노동 경험자, 동물권 활동가, 내전을 겪은 난민 신청자의 조력자, 내 몸을 관통해 온 수 많은 영혼들과 생명들의 동료이자 매개자로서 말한다. 나는 모든 형태로 벌어지는 전쟁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언제든 내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마주하고 저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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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어떤 특별하고 희귀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 명 한 명 우리의 얼굴이 평화였다. 그곳에 우리가 모였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서로 살리고자 한다는 것이 평화였다. 살아남은 얼굴들과 살아나갈 우리들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평화였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목숨 걸고 싸우는 약자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위로다.”

우리의 평화는 불편하고, 모순적이고, 시끄럽고, 흔들린다. 우리의 평화는 탱크를 짓밟고 시위하고, 밤 늦게까지 마이크 볼륨을 낮추지 않는다. 우리의 평화는 박탈당한 신체들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외면당한 마음들을 돌본다. 우리의 평화는 섣부른 대답보다 기꺼이 기다리는 질문이다. 우리의 평화는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그들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우리의 평화는 노래하고 춤춘다. 우리의 평화는 밤늦도록 듣는다. 우리의 평화는 변화하고 배운다. 우리의 평화는 관계 맺기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평화는 만난다. 그것이 우리의 평화다. 우리는 그렇게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