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 (전쟁없는세상)
전쟁없는세상 주:
‘사회운동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자 비폭력 트레이닝 트레이너인 오리가 3회차에 걸쳐 활동가학습플랫폼 판에 연재를 합니다. 이 글은 연재의 마지막 글로 판에 실린 글을 수정해서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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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칼럼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사회운동가들에게는 어떤 다양한 행동의 선택지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뉴스에 나올 만큼 창의적이면서 내가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회부정의에 효과적으로 작동할 행동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적절한 행동을 고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난 칼럼들에서 얘기했듯이 이 효과성은 물론 다층적이고 입체적이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신이 아닌 이상 사지선다형 답안지처럼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다양한 선택지를 알고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그것을 실행했을 때 효과적인지를 경험하거나 트레이닝을 통해 습득한다면 우리 운동의 효과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첫 칼럼에서 얘기했던 사회운동의 전략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이 행동들은 캠페인 혹은 사회운동의 전략을 수행할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사회운동 전략은 내 캠페인/운동의 승리를 위한 계획(청사진)을 짜는 것을 말한다. 언제, 어떻게 시작해 어떤 흐름을 가지며 우리가 가진 자원(인적, 물적)을 언제, 어떻게 배치할지, 우리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고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무엇인지,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우리의 대응 계획을 짜는 것,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대의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 우리에 대한 대중의 공감을 증가시키고 상대의 지지를 약화시키는 방법, 특히 중립이나 소극적 반대파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오는 방법 등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구체적 행동(전술)은 한정된 시간, 장소, 범위로 제한되기 때문에 그 특정 시기와 장소에 동원할 수 있는 활동가들의 기량과 자원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그 구체적 행동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가 행동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물론 전략과 구체적 행동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지금부터 설명할 행동의 방법들은 1970년대 일찌거니 진 샤프(Gene Sharp)라는 양반이 정리해놓은 리스트이다. 198가지나 되는데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목록을 만들 수 있다. 인터넷이 없을 시절에 만들어진 목록이고 특히 코로나 시기 개발된 비대면/온라인 액션들은 아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리스트의 원 제목은 비폭력 행동의 198가지 방법(198 methods of nonviolent action)이다. 비폭력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현재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폭력적인 운동(일시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닌 준비되거나 운동의 전략으로 채택된 폭력을 지칭)은 없기 때문에 전체 사회운동에서 사용할 수 있는 행동들이다. 오히려 세대의 차이나 문화의 차이로 인해 고개가 갸웃해지는 행동들이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샤프는 198가지 행동의 방법들을 그냥 쭉 나열하기보다는 3가지 범주로 분류해서 정리하였다.
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말이나 행동과 관련한 상징적이고 일반적 행동 (비폭력 항의와 설득)
② 집단적으로 힘을 합쳐 돕지 않는 행위 (비협조)
③ 어떤 상황에 개입하거나 끼어들거나 가로막는 행위 (비폭력 개입)
이 칼럼에서는 198가지 전체 목록을 쭉 소개하는 대신 샤프가 정리한 범주들을 중심으로 설명 하려고 한다. 전체 목록이 궁금한 분들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비폭력 항의와 설득

무기박람회를 반대하는 시위
샤프의 첫 번째 범주는 우리가 흔히 데모하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상징적 행동들을 말한다. 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 의견, 정책, 법률 또는 정치적 결정에 반대하거나 변경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상징적 말 혹은 행동들로 뒤에 설명할 비협조나 비폭력 개입까지 가지 않는, 일반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라 할 수 있다. 목표로 하는 대상이나 행동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가 뒤에 두 범주보다 훨씬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시위(배너나 플랭카드를 들고 집회를 열거나 행진을 열면서 불만을 표현하는 행위,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촛불처럼 엄청난 사람들이 모이면 그 자체로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탄원서(요즘엔 온라인 탄원서 사이트도 엄청 많다)를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피케팅, 각종 선전물, 로비, 예배, (철야) 농성, 연극, 음악, 순례, 장례식, 항의를 목적으로 한 토론회(teach-in 등) 등 다양하다. 총 54개의 행동 리스트가 이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비협조

군복무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병역거부 선언
비협조란 노동이나 정상적인 행동, 혹은 법이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철회함으로써 부당한 제도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샤프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비협조로 나눠 이를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비협조란 예를 들어 퇴거 위협을 받는 난민을 위한 피난처를 설치하거나 특정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거나 스포츠를 보이콧하거나 하는 행동들을 말한다. 경제적 비협조에는 특정 제품 불매운동과 파업 등이 포함된다. 정치적 비협조는 선거를 보이콧하거나 임명된 공무원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외에도 섹스파업, 대학생들의 동맹휴업, 쿠팡 탈퇴, 지문날인거부,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 거부, 부당한 법을 (일부러) 지키지 않는 행위 등을 비협조 카테고리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목록에는 103개의 행동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앞선 비폭력 항의와 설득, 뒤에 등장할 비폭력 개입보다 거의 2배 이상 많다. 비폭력 행동은 권력이 대중과 사회조직의 굴복과 복종, 협조에 의존하기 때문에 만약 그 협조가 철회된다면 권력의 원천이 줄어들고 때로는 완전히 차단된다는 권력론에 근거한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운동에서 비협조가 비폭력 행동의 유용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비폭력 개입

도살장에서 구출한 동물을 위한 생추어리 건설
마지막은 비폭력 개입인데 샤프는 불의나 폭력이 가장 직접적이거나 만연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을 예방하거나 중단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 범주의 행동들은 다시 어떤 상황에 개입하기 위해 대안적인 무언가를 창조하는 긍정적 행동과 반대할만한 무언가에 대한 방해, 파괴 등 부정적인 행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봉쇄(예를 들어, 벌목꾼이나 광부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의 공동체가 도로와 차량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행위), 보호를 위한 존재 및 동반(인간방패, 분쟁지역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이나 그룹을 보호하기 위한 비무장 경호 등), 무장해제운동(트라이던트 플라우쉐어처럼 공개적으로 무기를 무장 해제하고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 등을 들 수 있고 이 외에도 단식, 필리버스터, 대안언론, 협동조합, 매점매석, 망명정부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첫 번째, 두 번째 범주의 행동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올 수 있는데 만약 성공적이라면 다른 두 범주의 행동보다 목표를 더 빨리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 유형의 행동이 주는 지장은 일정 기간 동안 용인하거나 견디기가 앞의 두 유형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41개의 행동이 이 목록에 있다.
샤프는 이러한 분류가 갖는 유용성에 대해 (비폭력) 기술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와 단계를 드러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단순히 방법들을 그냥 쭉 나열한 것이 아니라 행동 방법에 사용된 특정 기술을 중심으로 그 기술을 사용하는 많은 수의 다양한 행동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특정 상황에서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나라별로 시기별로 상황별로 어떤 범주에 속한 어떤 특정 행동은 다른 범주에 들어가는 더 적당할 정도로 변주될 수도 있으므로 이 범주들을 경직되게 사고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어떤 행동 같은 경우는 특정한 상황에서 발전되어 완전히 다른 방법의 행동으로 변화하기도 하므로 연구목적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전쟁없는세상에서는 몇 차례 이 리스트를 가지고 트레이닝을 진행한 적이 있다. 누구든, 어떤 조직에서든 가능하다고 본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현재 시점에서 덧붙일 수 있는 행동들의 목록을 만들어보기도 했었고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행동, 할 수 없는 행동, 도움이 있으면 할 수 있는 행동 등으로 나눠보고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트레이닝도 재미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보지 않은 행동들을 모아서 왜 사용해보지 못했는지, 앞으로는 사용해볼 수 있겠는지 뭐 이런 질문도 해볼 수 있고 아니면 거꾸로 우리가 해봤던 행동들을 모아놓고 효과성을 분석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정 행동을 놓고 어떤 이슈에서 언제, 어떻게 사용하면 가장 효과적일지 토론해보는 것도 유용하다. 어떤 구체적 행동에 자신이 아는 사례들을 적용해 사례분석을 해보는 것도 좋은 기획이다.
이 목록을 활동가들이나 사회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자주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운동의 전략 차원에서 보자면 어떤 목적의 캠페인이건 한 범주의 행동들을 사용하기 보다는 범주를 넘나드는 행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운동의 주류 방식은 샤프의 분류법 중 첫 번째 범주에 들어갈 유형이 많을텐데 그렇다면 두 번째, 세 번째 분류의 활동은 어떻게 개발하고 실행할 것인가를 더 연구해야 한다. 특히 첫 번째 범주에 들어가는 행동의 유형 중 리플렛을 나눠주거나 탄원서를 받는 등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는 너무나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행동들이라서 큰 효과가 없어 보이는 행동들도 있다. 당시 샤프의 연구 초점은 한국처럼 어느 정도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가 아니라 독재 혹은 특정 인종에 대한 억압이 극심한 나라들이었다. (연구가 진행된 60, 70년대는 한국도 그런 나라였긴 했다.) 물론 아직도 리플렛팅이나 탄원서가 당국의 탄압을 받는 나라들이 있고 그런 나라들에서 이것은 훌륭한 비폭력행동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 이상 사회 부정의에, 제도에 부담을 주는 행동들이라 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감옥에 가는 과격한 행동만이 훌륭한 비폭력행동이라는 것도 오해이다. 비폭력행동 중 감옥에 가는 행동도 있을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감옥에 가지 않고도 훌륭히 그 목적을 해내는 행동들이 많다. 시민불복종(법을 일부러 어기고 감옥에 가는 행위)은 비폭력행동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샤프도 지적했듯이 그래서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이 중요하다. 198가지 비폭력행동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작동하지 않는다.
누구도 198가지(지금은 훨씬 더 많을 리스트) 모두를 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자주 들여다보자. 혹시 아나. 어떤 상황에서 198가지 중 어떤 방법이 딱 들어 맞겠다 하는 우영우의 돌고래와 같은 청명한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지. 현명한 전략, 비폭력투쟁의 역학에 대한 주의, 그리고 데모방법들의 신중한 선택은 그룹의 성공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