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현(노동활동가, 전쟁없는세상 회원)

 

 

지난 1년간 잠시 독일에 공부차 머물렀다. 독일 생활에 적응될 즈음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동유럽 국가 출신의 동기들은 전쟁 반대 시위를 조직했다. 그들은 자신의 친지와 지인 중에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있다고 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벨라루스 루카셴코 정권 탓에 벨라루스 출신 동기들은 본국으로 쉽사리 돌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인 내 동기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독일에 정착하기 위해 결혼을 했다. 결혼식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동기들이 대신 부부로서의 앞날을 축하하며 파티를 열었다. 여러 이유가 겹쳐져 한 선택이겠지만, 학기 중에 갑작스레 결혼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나에게 ‘전쟁 이후 독신의 젊은 여성이 비자 신청과 출입국이 원활하지 못할 수 있는 영향도 있다’ 말했다.

사실 이전까진 나에게 전쟁이나 군사주의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문제였다. 한국전쟁도 역사책에서 보는 과거의 먼 이야기이고, 이라크파병 문제도 어렸을 때라 기억에 없다. 휴전 상태를 평화로 여기며 살아왔다. 오히려 ‘방어를 위해서도 군대와 군비, 무력은 필요하지 않나?’, ‘응급하거나 위급한 상황 등 군사주의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 않나?’, ‘동등해지기 위해 여성들도 군대에 갈 필요성도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전쟁없는세상의 <2022 병역거부운동 여성활동가 인터뷰집>은 나에게 당연했던 편견들을 페미니즘이라는 다른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내 일상과 연결짓게 하는 인터뷰집이다. 여성활동가들의 실천을 보며 ‘군사주의’에 대해 고민을 해보게 됐다. 여성활동가들이 실천과정에서 고민하고 부딪힌 흔적을 통해 전쟁이 내 동기의 일상을 바꿨던 일화를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보호하는 남성, 보호받는 여성’이라는 틀을 깨는 여성들

인터뷰 참여자들은 “힘이 강한 남성이 힘이 약한 여성을 보호해 준다”라는 구도를 계속해서 지적한다.

(군사무기)박람회장에 들어가면 여자들은 미니스커트 입고 사람들을 안내하고 남자들은 양복 입고 자기들끼리 악수하고 다녀요. 군사주의 사회 안에서 ‘지키는 역할이’ 누구고 ‘지킴 받는 역할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뭉치).

뭉치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주의는 ‘보호하는 남성과 보호받는 여성’이라는 틀 위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군대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여성도 분명히 그 영향을 받는데 그에 대한 어떤 언급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장박가람)”이 존재한다. ‘여성은 보호를 받는 대상이지 나를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논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징병제도 개선 토론회에 나설 수 없었다’는 최정민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틀을 깨는 여성활동가들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의 경험도 떠올랐다.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경찰과 충돌이 있는 시위에도 자연스레 참여했었다. 경찰과 가까운 앞쪽에서는 으레 “여성들은 뒤로 빠지세요”라는 말을 하는 젊은 남성들이 종종 있었다. ‘여성’이 또는 ‘청년’이 시위에 나서야 하는 사회를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그런 말을 맞닥뜨릴 때면, ‘이 사람은 선의일 텐데, 이걸 내가 불쾌해해도 되나?’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시위의 본 목적이 있으니 이러한 문제는 사소한 문제 취급을 당하며, 대의를 위해 참여한 시위자에게 문제를 지적하기 어렵기도 하다.

“여성들은 뒤로 빠지세요”라는 말에 당시의 나는 “저도 할 수 있어요”라고 소리쳤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박이라 생각했다. 인터뷰집을 읽으며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남성처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운동 내 군사주의와 가부장제를 극복하고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운동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 시위에서 여성이니까 남성의 보호를 받거나, 여성이 남성과 같은 위치에서 앞장서서 경찰과 충돌하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의 역할을 고민하고, 분투하고, 동료와 상의하고, ‘나’의 운동을 하는 여성들

사회운동을 하면서 ‘발언자 중에 여성이 없어서 발언을 요청’받거나 타 기관에서 ‘참여자 성비를 맞추기 위해 여성 참여자를 우선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다. 여성이니까 ‘여성’으로서의 이야기를 하길 기대하는 무언의 요구가 있다. 주체로서 보다는 구색맞추기나 조력자로 여겨진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이렇게라도 내 의제를 알릴 기회가 주어지는 게 어디야’라는 감사한 마음과 ‘내 의제보다는 여성이기에 호명되는 것’에 대한 불쾌함을 동시에 느꼈다.

인터뷰집의 여성활동가들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한 여성활동가들이 계속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있어 보였다.

조력자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자신의 운동을 만들어나갔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평화운동에 동참하라는 메시지인데, 그냥 내 애인 좀 도와줘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 꽉 깨물고 하는 거죠(김경희).

여성에게 부과되는 감정노동의 요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성을 동등한 활동가로 보지 않고 ‘여성’ 또는 잠재적 연애대상으로 여기는 문제에 대해 동료와 조직적으로 함께 이야기하고 개선책을 찾았다. 지지자를 넘어서 주체로서 운동을 했다

저희가 “여성으로서 전쟁을 거부하고, 병역거부를 지지한다”고 한 것은 ’단순한 병역 거부를 하는 남성들을 지지한다’는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우리가 이 군사주의 체계 안에서 받는 영향들을 가시화하고, 좀 더 적극적이고 급진적으로 평화 체계를 구축하자’라는 선언이자 제안이었어요(장박가람)

여성의 참여를 넘어선 고민을 나눈다.

여성의 참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 라는 것 말고 새로운 담론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하나의 분야가 되어버리는 느낌도 있고요. 예컨대 국방부 장관이 누가 되느냐, 여성? 저는 여성이 꼭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황수영)

이들이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었고, ‘나의 운동’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없는세상’처럼 함께하는 동료가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당사자 혹은 활동가로서 운동한 역사를 알고 있으니까”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여성 롤모델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모인 회의에 참석하면 중장년 남성이 대부분이다. 여성노동 의제는 부문 의제로 머물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위원회나 성평등위원회에 참여하길 요청받기도 한다.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한정적인 느낌, 롤모델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성 평화활동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최정민은 “여성활동가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여성활동가들을 많이 만나라”라고, 여옥은 “내가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버티다 보면 믿고 의지할 동지들이 생길 거라고 말했다.

계속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들의 기록이 우리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활동가를 지지해줄 수 있는 여성활동가’를 만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이 인터뷰집이다. ‘만약 병역거부운동 코디네이터를 맡았어도 조력자가 아니라 “내 운동”이라고 느꼈을 것 같다’며 그 이유를 “(다른 여성활동가들이) 조력자가 아니라 당사자 혹은 활동가로서 운동한 역사를 알고 있으니까”라고 대답한 뭉치의 말에 이 인터뷰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집 표지_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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