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오카야마 공습의 생존자, 다카하타 이사오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은 우리가 어린 시절, TV를 통해 즐겨보았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간머리 앤> 등을 감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가 그의 나이 79세였던 2015년 6월 29일, 오카야마 시 주최로 개최된 전몰자 추도식·평화 강연회 강연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더불어 지브리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반딧불이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 숱한 걸작을 남겼지만, 그의 삶에 관해서는 국내에 자세히 소개된 바가 거의 없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카하타 이사오가 젊은 시절, 일본 공산당을 지지하여 활동한 전력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935년 10월, 일본 미에현에서 태어난 다카하타 이사오는 교육자였던 부친을 따라 1943년 오카야마 시로 이주했다가 열 살이던 1945년 6월 29일 새벽, 미군의 오카야먀 공습을 직접 경험했다. 공습 당시 미 공군 폭격기는 약 9만 5천 발의 소이탄을 투하했고, 전체 시가지의 약 60%가 불탔다. 이날 공습으로 숨진 희생자 수는 공식 기록만으로도 1만 7천3백7명에 이른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에서 오카야마 공습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

강변으로 나와 달리는 사이에 새벽이 됐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 비라는 것이 이른바 ‘검은 비’입니다. 원폭뿐만 아니라 공습 후에는 상승기류가 일어나서 비가 내리는데, 그을음이나 무언가를 잔뜩 머금고 있기 때문에 검은 빛깔의 더러운 비가 되는 것이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미군은 주간 정밀 폭격을 고집했지만, 태평양 전선에서의 폭격 양상은 많이 달랐다. 1945년 1월, 태평양 지역 사령관으로 부임한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이전까지의 ‘고고도 정밀폭격’ 대신 이른바 적의 둥지까지 불태우는 ‘무차별 융단폭격’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르메이의 논리는 아주 간단했다.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적국의 전쟁수행능력에 도움이 되는 이들이므로 이들을 죽인다면 더 이상 적군을 위해 공급할 식량과 병사가 없어질 테니 아군에게는 이 또한 유리한 일이란 것이다. 이때부터 미군은 일본의 대도시들을 닥치는 대로 폭격했고, 6월이 되자 일본 열도에는 더 이상 폭격할 만한 대도시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이후부터 르메이 장군은 대도시를 대신해 중소도시로 폭격 목표를 전환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발생한 것이 오카야마 공습이었다.

 

 표지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표지

 

가해자로서의 일본에 대한 냉정한 성찰

단둘이 피난 나온 누이는 엉덩이에 폭탄 파편을 맞았고,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 비를 맞아 온몸이 젖은 오누이는 추위에 떨며 시체로 뒤덮인 불탄 거리를 걸어 도망쳤다. 공습과 화재를 피해 도랑으로 뛰어든 사람들조차 화재와 폭격의 열기로 도랑물이 끓어올라 타죽고 말았다. 살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 도망쳤기 때문에 며칠 동안 가족을 찾아 헤맸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의 체험은 훗날 그가 <반딧불이의 묘(Grave of the Fireflies, 火垂るの墓, 1988)>를 연출하는 데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 <반딧불이의 묘>는 2005년 한국에서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급작스럽게 취소된 적이 있었다. 때마침 그 무렵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소동이 있었기 때문에 전범 국가 일본이 반성도 없이 몰염치하게 자신들만 피해자인 척 한다는 반발이 강하게 일었기 때문이었다.

“소화 28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라는 충격적인 서두로 시작하는 <반딧불이의 묘>는 일본에서 나오키 문학상을 받은 노사카 아키유키의 실제 전쟁 체험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 작품이 일본 전쟁 체험에 대한 내용이란 것을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로서 일본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없으면서도 그 피해와 희생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불쾌하게 여겼지만, 막상 애니메이션을 직접 본 사람들은 이 작품이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전후 냉담한 세상에서 결국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두 오누이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거리 둔 채 냉정하게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게 된다. 이 책에서 다카하타 이사오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반전영화’로 분류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태평양전쟁의 결과로 미국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한 일을 당했던 것에 대해서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 마치 천재지변처럼 받아들입니다. 히로시마의 위령비에도 ‘과오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주어가 매우 애매합니다. 그런 심리가 거꾸로 자신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했고 그 결과로 초래한 재앙이나 그 나라 사람들의 고통과 원한에 대해 둔감해지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우리는 가해자로서의 일본에 대해서는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주인공인 세이타와 세츠코는 일본 제국 해군 대위의 가족이고, 세이타는 죽을 때까지도 전쟁이 끝났는지 일본이 승리했는지, 패전했는지 알지 못했다. 세이타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당시의 일본 국민들 대개가 그랬다. 몰랐으므로 그들에겐 죄가 없는 것이었을까? 다카하다 이사오는 관객들에게 그것을 묻고 있다. 다카하다 이사오는 관객들이 세이타의 입장에 자신을 동화시켜 가해자로서, 관찰자로서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막는다. 다카하다 이사오는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겪어야 했던 비참한 체험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대신에 “어떻게 했으면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됐을지,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뒤 정치가와 국민은 대체 어떻게 행동했는지, 이런 것들을 더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요.”라고 되묻는다.

 

애니메이션 포스터. 남매를 둘러싼 불빛에는 반딧불이와 확산탄(clustor bomb)이 섞여있다.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 포스터. 자세히 보면 배경에 전투기가 보이고 남매를 둘러싼 불빛은 반딧불이와 소이탄이나 확산탄 같은 폭탄이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약속

그는 오카마야 공습과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예로 들면서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도 올바른 정보를 알리지 않는 정부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전쟁 기간 동안 일본 정부가 소이탄 공격에 대비해 내린 유일한 명령은 소이탄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해도 도망가지 말고 불길을 소화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이탄 공습이라는 것은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씨를 하늘에서 뿌려 나무와 종이로 지어진 일본의 도시를 모두 태워버리는 것이므로 이에 맞설 방법이 없는 데도 피하지 말고 화재를 진압하라고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오카야마 공습을 검색해보면, 지금도 가장 먼저 뜨는 기사들은 “미군의 공습, 과연 일본은 피해국인가?”, “‘전범국 민낯’ 싹 지운 일본의 어느 추도식” 같은 것들이 먼저 검색된다. 이런 논리라면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국가였기 때문에 그 나라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대량폭격도 가능하다는 커티스 르메이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르메이의 이와 같은 무차별 대량폭격은 일본에서만 자행된 일이 결코 아니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고, 르메이는 “우리는 한반도 인구의 20%를 죽였다.”, “우리는 한국의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모든 도시를 불태웠으며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을 죽이고 수백 만 이상을 집에서 내쫒았다.”고 말했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플레베르의 시를 인용해 “춤추자, 모든 나라의 젊은이여. 춤추자, 평화와 함께. 평화는 정말로 아름답고, 너무나 연약하다. 놈들은 그녀(평화)를. 등 뒤에서 쏘겠지. 그래도 평화의 허리는 꼿꼿할 것이니, 너희가 그녀를 팔에 감싸 안아 준다면. (……) 만약 그대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복원하라, 평화를……”라고 말한다. 또한 평화를 위해서라면 정부나 국가의 높은 분들 이야기에 무조건 동의하고 끌려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설령 어느 누군가 나타나 ‘지금 높은 분들은 옛날 사람들처럼 어리석지 않아.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라며 지혜로운 얼굴로 말해 준다고 해도 그건 아무런 보증이 없습니다.”라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금 일본에게 평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약속은 ‘헌법 9조’뿐이라고 말한다. 전쟁하지 않는 나라로 남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