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전쟁은 인간에게 살상을 강요한다. 당초 러시아와의 예상과는 반대로 전쟁이 길어지는 동안 러시아의 병사들은 점점 취약한 계층부터 징집되고 있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징집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자국을 떠나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이른바 병역거부를 사유로 한 난민이 된 것이다.
이들은 살상을 거부하고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국제 정치의 각축장일 뿐이고, 살인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한 이들은 전쟁터를 떠나 난민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법무부는 이를 두고 “심사를 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일축하며 이들을 사실상 공항 면세구역에 방치하고 있다.
공항에서 몇 달째 빵과 주스로 연명하고 있는 러시아 병역거부자 난민들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들의 건강 상태는 상당히 악화된 상태이며 한국 정부는 이들이 말 없이 러시아로 돌려보내지기를 암묵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로 돌아가면 수감되거나 강제 징집될 가능성이 높고, 그중 일부는 이미 러시아에서 반정부 집회에 참여한 바 국가 폭력을 당할 위험에 처한 사람도 있다.
자국에서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피해 난민을 신청한 이들은 국제법상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이들은 푸틴의 전쟁에 동참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정치적 난민이다. 아울러 한국은 이미 30여년전에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이며 스스로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발달된 민주주의 국가를 자부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국가다. 물론 병역거부권이 명시된 법률의 대상은 내국인이다. 하지만 병역거부권이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으로 도입된 과정은 양심의 자유라는 개인의 권리 보호와 함께 부당한 무력 사용에 저항하는 것이 세계 시민의 공동 의무라는 인식이 확산된 까닭이었다. 이들이 난민이 된 이유는 인류가 반복적으로 저질러온 전쟁 범죄에 맞서 세계 시민의 의무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제도적으로 이중, 삼중의 장애물을 만들어 실질적으로는 난민 인정이 매우 어려운 국가로 전락한 현실이다. 금번 러시아 병역거부자들은 난민 심사를 받기도 전에 1차적으로 난민 자격을 판정하는 한국 정부의 부조리한 시스템으로 인해 공항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설령 출국 대기상태인 이들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위생과 영양 공급이 되지 않는 상황에 이들을 방치한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다.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병역 거부로 인해 차별, 투옥, 폭력을 당하고 있다. 현재 공항에 체류 중인 러시아 병역거부자들은 이러한 박해를 피해 피난한 사람들이며, 어떠한 사람도 양심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박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심각한 박해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여야 한다. 또한,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와 일치하며 국제사회에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시스템을 믿고 찾아온 이들이 충분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한국 정부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2022. 12. 23 전쟁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