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브라이언 마틴 (울런공 대학교 명예교수)
번역: 쥬 (전쟁없는세상)
전쟁없는세상 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었고, 그만큼 전쟁 피해가 수북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끔찍한 비극에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비폭력 평화 저항을 이어가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이해 이처럼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글에서는 평화연구자 브라이언 마틴이 무기 없이 우크라이나를 지킬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쓴이의 블로그에 게재된 것을 허락을 받아 옮겼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지킬 또 다른 방법을 상상해보자. 비용도 덜 들고, 더 적은 죽음과 파괴를 불러오고, 러시아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좋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리 만무하다. 이미 너무 늦었다.
한 걸음 물러나 군사적 방어에 대해 생각해보자. 군사적 방어는 적병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많은 러시아 병사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없다. 실제로 대다수는 군대에 원해서 입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침공의 목적에 대한 선전에 세뇌되어 전선에 불려간다. 거기에서 마주하는 것은? 그들을 죽이려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이다. 그러니 자연히 맞서 싸운다.
완벽히 논리적이다.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을 증오하게 만들려면, 공격하고 또 공격하라. 이는 전쟁에 개입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적의 잔혹행위에 분개한 병사와 지휘관, 민간인들은 공동의 대의 아래 뭉친다.
이 뒤틀린 과정은 전 세계 군대들의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다. 군대는 공격과 방어 모두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방어는 당신에게 위협이고, 당신의 방어는 나에게 위협이다. 이것이 군비경쟁의 근간이다. 그게 아니면 전쟁 위협이 거의 없는 경우에도 군비 지출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직 안전하지 않아!” – 끝없는 군비경쟁
대안?
러시아 병사들의 전향, 꾀병, 직무 불이행, 장비 사보타주, 태업을 부추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그들의 사기를 꺾고, 의무 수행을 막고, 궁극적으로 러시아 정부에 대한 지지를 약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건 어떤가?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향하는 러시아 병사들에게 매력적인 선물을 주도록 동맹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직업이나 주택, 100만 유로처럼 말이다. 이것은 죽기도 죽이기도 원하지 않는 젊은 징집병들에게 특히 매력적이다. (데이브 그로스먼은 잘 알려진 저서 《살인의 심리학 On Killing》에서 전선의 병사 대부분이 특별한 훈련을 통해 자연적인 살인 기피 성향을 억누르지 않는 한 적에게 총을 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전향한 병사 한 명당 100만 유로? 말도 안 되게 비싸게 들린다. 하지만 만약 10만 명의 병사가 전향한다면, 그때의 비용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용보다 적게 든다.
이 방법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점이 있다. 러시아 병사들을 해치겠다고 위협할 필요가 없다. 이로써 비용이 절약된다. 우크라이나 군대를 없앰으로써 말이다. 그럼 민간인들만 남게 되고, 이들은 러시아 병사들에게 위험을 제기하지 않는다.

데이브 그로스먼의 《살인의 심리학》 표지
군대를 없앤다고?
이것은 국가에 군대를 없앤다는 뜻이다. 공격적인 이웃 국가가 하나라도 있으면 곧바로 점령당하는 길이다. 군사적 방어의 부재는 확정적 패배를 뜻한다. 그렇지 않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미 국가들, 이를테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는 독재정권의 압제와 내전, 범죄 폭력, 심지어는 집단학살에 시달렸고, 이는 대량 이주로 이어졌다. 여기에 하나의 빛나는 예외가 있다. 바로 코스타리카다. 코스타리카는 1948년 군대를 폐지했다. 그 이후로 어떤 전쟁에도 개입되지 않았다. 그 대신 평화와 번영, 그리고 선망을 사는 기대수명을 누리고 있다.
군대를 갖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코스타리카의 번영을 도왔다. 한 가지 사례가 증거가 될 수는 없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군대 없이 더 안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
사회적 방어
군대를 없애는 것은 안보 증진을 위한 첫 단계에 불과하다.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공격을 방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침략군 병사들과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 더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다른 나라 국민들과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런 준비를 하면, 외국 정부는 대중에게 공격을 지지하도록 설득하기 어려워진다.
더 있다. 눈에 띄는 표적이 없도록 산업을 탈중앙화할 수 있다. 대형 발전소는 가동을 멈추면 대규모 정전을 불러온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역 재생에너지원은 표적으로서 가치가 적다. 대다수의 인구가 도보와 자전거로 생활할 수 있다면 공격에 취약한 중공업 시설도 적을 것이다.

군사적으로 가치가 적은 표적. 반면 대규모 발전소는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타격 대상이 된다.
방어자들이 서로 간에, 공격자와,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도와 공격에 대한 저항을 공고히 하도록 통신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시민들은 선전과 거짓정보, 가짜 영상 같은 기만 수단들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자신이 보내는 메시지의 진위를 증명할 방법을 연습할 수 있다. 잠재적인 위협과 기회를 감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개 첩보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방어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사회적 방어, 비폭력 방어, 민간주도 방어, 시민저항에 의한 방어 등으로 부른다.

사회적 방어
체코슬로바키아의 사례
1968년 당시 소련은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을 좌지우지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공산주의 정부가 혹독한 억압을 완화하고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개혁을 도입했다. 이런 개화기의 도래를 위협으로 여긴 소련은 8월에 바르샤바 조약기구군 50만 명을 이끌고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격을 방어할 준비만 했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대의 지휘관들은 무장저항이 소용없다고 판단하고 대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장하지 않은 민중의 저항이 저발적으로 생겨났다.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은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웠다. 그들은 자본주의자들의 전복을 멈추러 간다고 들은 침략군 병사에게 말을 걸어 “우리도 사회주의자에요”라고 말했다. 이런 친해지기 방법은 침략군 병사 다수의 ‘충성심을 흔들고’ 물러나게 만들었다. 한편 사람들은 거리 표지판과 집 번지수를 제거해 침략군들이 저항세력 지도자들을 추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구축된 무전망은 사기를 고취하고, 적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폭력 사용을 자제하라고 설파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소련군이 전파 방해장치를 가져오자 무전기는 경보를 울려 기차를 대피선에서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들이 현명치 못하게 승복하는 바람에 적극적인 저항은 일주일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소련은 여덟 달 동안 괴뢰 정부를 세울 수 없었다. 한편 그동안 서방 국가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저항자들을 거의 돕지 않았다.

소련 병사들과 ‘친해지기’를 시도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인들
준비
군인과 관련 인사들은 전선에서 전투, 감시, 첩보, 무기 개발 및 기타 군대가 기능하는 데 필요한 직무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다. 민간인들이 무기 없이 공격을 방어하고 억제하기 위한 기술과 조직을 갖추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훈련을 필요로 한다.
군사 훈련과 계획, 산업기반의 부재하에서 군사적 방어의 잠재력을 평가하겠는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사례만을 보고 비무장 민간 방어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진정한 평가는 사회가 비무장 방어를 위해 완전히 준비되고 훈련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비폭력적으로 저항하고 러시아 병사들의 전향을 부추길 방법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노력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저항으로 잠식되었다.

비폭력 저항도 연습이 필요하다. <비폭력 캠페인을 위한 안내서> 표지. 비폭력 저항을 위한 트레이닝 가이드북
시도되지 않은 대안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비폭력 방어 수단을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는가? 장점은 명백하다. 군비 지출 감소, 국민의 권한강화(임파워먼트), 내·외부적 위협에 대해 회복력 있는 기술적 시스템 등이다.
왜 국가들이 비무장 방어 체제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아직 수행되지 않았다. 한 가지 그럴듯한 설명은 대중이 공격에 저항할 기술을 갖춰 권한강화 되는 것을 국가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술은 국가 및 경제적 기득권층을 상대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공격자가 공장을 장악하고자 한다면, 노동자들은 조업 중단으로 저항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저명한 평화 연구자 요한 갈퉁은 공장의 핵심적인 장비가 비상시에 무력화될 수 있고 이를 위한 대체품이 오직 다른 나라에서 입수 가능한 공장 설계를 제안한 바 있다. 노동자를 강압적으로 대하면 공장은 동작을 멈출 것이다. 이러한 공장 설계는 노동자들의 손에 엄청난 권력을 쥐어 준다. 경영자와 국가가 군사적 방어를 선호하는 것도 당연하다.
비폭력 방어 체제의 모든 측면은 농업, 교통, 보건, 교육 등에서 일반 시민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는 것을 요한다. 이것이 코소보와 팔레스타인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비무장 투쟁의 교훈이다. 이것은 아마도 시민이 저항할 역량을 쌓는 것을 국가가 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에 시민들은 전문가, 즉 국가와 군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들처럼 대해진다.
비폭력 연구의 선도자 진 샤프는 민간주도 방어를 오랫동안 주창했다. 그는 이런 형태의 방어가 더 효과적이라고 미국 군대와 정부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비록 긍정적으로 평가받았지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각국, 특히 미국 정부는 이런 종류의 대안에 순전히 무관심하다. 그것을 연구하거나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모든 주요 국가들처럼 군사적 방어에 의존하고 있다. 비무장 민간 저항에 기반한 다른 형태의 방어 체제가 침공을 억제하고 그에 저항하는 데 더 효과적인지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군사적 방어가 표준 모형이고, 그것이 문제의 일부라는 것뿐이다.

진 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