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만화평론가)
전쟁물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품 속에서 지휘관들이 설계하는 촘촘한 전략이나 적진을 휘감는 대담한 작전술, 변화무쌍한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등을 보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은 생사가 오가는 상황 속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판단력을 거울삼아 자신이 처한 현실 속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마치 <삼국지>를 읽으며 경영 전략을 세우는 CEO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같은 전쟁물 장르라도 어떤 작품들은 병법이나 전략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어떤 캐릭터들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부하 병사들을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려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다루면서 전투나 전술, 병법, 정치 같은 것에 집중하기보다 전쟁터에서 살아돌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더러 있다. 보드게임 <병사들의 귀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시골의 같은 마을에서 징집된 고향 친구들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인 협력 게임이다.
웹소설 원작 웹툰 <진홍의 카르마>(원작 레몬개구리, 만화 쌀숲・야샌・라다, 카카오페이지 연재)의 제2황자 ‘타셀’의 이야기다.
<진홍의 카르마>의 주인공은 ‘카시야’다. 그는 전쟁 난민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로 떠돌아다니다 밥을 주겠다는 말에 홀려 암살단에 들어간다. 암살단 안에서 소년병으로 키워진 카시야는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며 다른 이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그는 적을 왜 죽여야 하는 지 단 한 번도 묻지 않는다. 다른 이를 죽여야만 카시야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시야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실력 있는 암살자였다. 그렇지만 정작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적이 아닌 아군의 상사에게 죽임당한다. 그런 카시야에게 두 번째 생이 주어진다. 얄궂게도 다시 눈 뜬 곳 역시 전쟁터다.
카시야의 리더는 제국의 제2황자 타셀이다. 그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보다 부하의 안위를 우선한다. 카시야는 두 번의 생을 통틀어 난생 처음으로 ‘살아 돌아오라’고 명령받는다. 임무가 아니라 생명에 대해 카시야가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다.
임무 도중 카시야는 우연히 적군의 가장 큰 전력인 대마법사 에르논을 마주친다. 우여곡절 끝에 에르논의 일행이 된 카시야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된다. 어마어마한 마법을 구사하여 적군을 수없이 말살시키는 에르논조차 실은 탐욕스러운 공작에게 강제로 복속된 노예라는 사실 말이다. 어린 시절 공작의 꼬드김에 넘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읊었던 마법 주문이 알고 보니 에르논 자신을 공작에게 구속하는 마법이었던 것이다.
<진홍의 카르마>에서 타셀, 카시야, 에르논은 모두 어린 시절부터 끔찍한 학대에 노출된다. 이들을 옭아맨 폭력의 사슬은 장성한 이후에도 줄곧 그들을 괴롭힌다. 타셀은 볼모로 잡힌 어머니 때문에, 에르논은 몸에 새겨진 구속의 주문 때문에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카시야는 전쟁 난민이었던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 암살단에 들어갔지만, 끝끝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사실 카시야가 이전 생에서 겪은 소년병의 경험은 실제로 지구 어딘가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수년 전 남수단에서는 어린이를 납치하여 총을 쥐여주고 가족을 살해하라고 명령하는 무장단의 사례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수단의 소년병들. 유엔아동기기금(UNICEF)에 따르면 1990년대에는 전 세계에 약 30만명 정도의 소년병이 있었고 21세기 들어 숫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10만명 정도의 소년병이 있다고 추청된다. 사진출처: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 플리커
전쟁은 언제나 어린이에게 가장 가혹하다. 어린이에게서 가족을 빼앗고, 일상을 파괴하고, 생명마저 앗아간다. 정작 어린 죽음들 뒤에서 권력자들은 안전하게 탐욕을 채운다.
카시야가 다시 생을 이어 나가는 두 번째 생조차 그렇다. 전쟁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이들은 정작 전쟁터에 얼굴 한 번 들이밀지 않는 이들에게 종속되어 있다. 군대를 지휘하고 전쟁터에서 마법을 휘두르는 건 타셀과 에르논이지만, 정작 그들에겐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권력을 쥔 이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선 것뿐이다. 카시야를 통해 서로의 억압을 알아보게 된 타셀과 에르논은 공동의 해방을 위해 손잡기로 한다. 한쪽이 전쟁에서 승리한들 또 다른 억압과 지배가 있을 뿐이니까. 타셀은 칼끝을 왕에게로 돌리고, 에르논은 카시야의 도움을 받아 공작이 걸어놓은 구속 마법을 해체한다. 이윽고 이들은 억압받은 이들의 해방을 위해 전쟁을 종식하려 한다.
전쟁을 다룬 작품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사람을 일개 말처럼 다루는 병법이 아니라 그 잔혹한 시공간을 전복하는 ‘반전’의 외침에서가 아닐까. 카시야는 다행히 다음 생에서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지금 폭력 앞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안식을 기대할 곳이 ‘다음 생’이어서는 안 된다.

웹툰 <진홍의 카르마> 표지 이미지 (c) 엠스토리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