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활동가)

 

여성은 어디에나 있다. 쉽게 비가시화되고 무시당하고 누락 당할 뿐. 지금껏 우리가 이루어 낸, 실현해나가고 있는 모든 투쟁 현장에는 여성이 있어왔다. 프랑스 혁명 당시, 베르사유 궁전의 문을 연 것은 여성 시위대였다. 남성들이 권력에 기가 눌려 혹은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고자 아무도 궁전에 쳐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몇날며칠을 무거운 대포를 들고 행진한 이들은 여성들이었다. 칠레 혁명 당시 끝까지 남아 정부와의 협상에서 배제된 이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은 여성들이었다. ‘이제 끝나지 않았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을 때 ‘끝난 것은 없다’며 다른 소수자를 위해 혁명의 끝을 이어나간 이들은 여성들이었다. 현재 제주 월정리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역에 편법으로, 주민 동의 없이 하수 처리장을 건설하는 계획이 들통 났을 때 가장 선두에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은 해녀, 곧 여성들이다. 그리하여 나는 감히, 아니 당당히 ‘혁명은 여성의 것’이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반전/평화 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펴낸 <2022 병역거부운동 여성활동가 인터뷰집>에서도 ‘혁명은 여성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총 9명의 여성활동가들의 인터뷰는 한국 병역거부 운동에서 그들이 밟아온 혁명적인 발걸음과 이룩해낸 성과를 똑똑히 인지시킨다. 흔히 병역거부 운동하면, 남성들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대한민국에서 징집 대상이자 병역의 의무가 있는 대상은 지정 성별 남성뿐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에서 여성들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여성들이 있다 하더라도 여성의 발언권과 행동권은 빼앗기거나 부정당하기 일쑤다. 따라서 작금의 시스템은 “군대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누”고, 그 결과로 군사주의는 물론 가부장제를 강화시킨다. 군사주의와 가부장제는 함께 작동한다.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페미니즘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최정민은 페미니즘적 사고가 있어야 반전운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지하거나 우리가 암묵적으로 묵인했던 이런 제도나 관습들이 전쟁으로 간다는 거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들인 거죠. (…) 그런 시각이었기 때문에 이런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고 (…) 전쟁없는세상이 하는 평화운동, 병역거부운동은 잘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밖에도 병역거부운동에 페미니즘이 꼭 수반되어야 하는 이유는 넘친다. 페미니즘은 수많은 위계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것(장박가람)이다. 그렇기에 ‘가부장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폭력’과 ‘군사화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당화되는 폭력’들은 긴밀히 연결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병역거부운동을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가부장제와 군사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자고 역설한다. 이들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체복무제의 한계나 비판도 눈치 보지 않고 언급하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한다. 대체복무제로 귀결되는 병역거부운동이라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1등 시민’에서 배제된 남성들에게 대체적인 시민권을 부여하는 운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의 평화/반전/병역거부운동은 단순히 병역거부를 하는 남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애인을 도와달라는 요청(김경희)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군사주의로 인해 받는 폐해를 가시화하고 여성 또한 이 군사주의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이며 동시에 이 구조를 비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활동가들은 페미니즘 관점을 견지한 채 질문을 바꾼다. 여자도 군대를 가냐, 마냐는 식상한 질문을 넘어 교차성을 갖춘 질문, 즉 반군사주의, 성평등주의를 갖춘 평화로운 사회로 향하는 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묻는다. 사회적 구조의 총체적 변화를 도모하는 질문. 그 과정에서 여성활동가의 존재와 페미니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강조한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여성병역거부운동’이다. 애초에 여성은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데 웬 거부야, 라고 의아해하는(실상은 비난하는) 이들이 다수다. 나 또한 그랬다. 2022년 세계병역거부의 날 제주 강정에서 여성병역거부 선언문 낭독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여성들이 병역거부 선언문을 읽는 모습이 생소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 선언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고작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것이 전쟁과 군사주의로부터 자유롭다거나 가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이해한 병역거부는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나는 반군사주의적인 행동과 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과 행동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여성도 병역거부선언을 할 수 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지혜) 마음만으로도 병역거부운동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김한민영의 무기거래감시운동의 동기와도 결을 같이 한다. 그는 “가해자의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무기거래감시운동을 한다. 나 또한 무고한 희생자만 양산해내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배만 불리는 전쟁의 가해자 중 한 명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도구화”(김한민영)되어 폭력과 살상과 착취 구조의 한 톱니바퀴로서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기여하고 싶지 않다. 기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을 인용해본다.

“군사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는 계속 타자이자 도구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 역할을 거부하려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일과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일이 함께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지혜의 인터뷰에서는 비건, 퀴어(비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여성병역거부운동을 더 알아갈 수 있었다. 나는 비건/동물권 활동가로서의 병역거부운동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군대에서 전쟁 연습을 할 때, 무기를 제작하고 실험할 때, 실제 전쟁이 일어날 때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비인간 동물 착취/학대당하고 살해되고 처참한 환경 파괴가 일어난다. 비인간 동물과 환경을 위해서, 다시 말해 직접 선언할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하여 나는 한 명의 ‘동물’로서 병역거부운동선언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이 책은 반전/평화/병역거부 운동에서 그간 얼마나 많은 여성활동가가 종횡무진해왔는지, 얼마나 큰 힘을 쏟아왔는지 알려준다. 동시에 이 운동이 페미니즘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더 나아가 여성활동가들이 지금껏 키워온 단단하고도 따스한 힘을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강정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면서도 (당연히) 가부장제의 힘이 완고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고 그로 인해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분명 여기에 수많은 여성활동가가 있는데 왜 항상 남성활동가가 더 부각될까? 여성의 목소리는 더 쉽게 간과되고 그 존재가 배제될까? (퀴어/장애인/비인간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뚝 서서 구호를 외치는 여성활동가들로부터 힘을 얻을 때가 많았다. 거기다 이 인터뷰집까지 읽으니, 앞으로 투쟁을 이어나갈 나의 힘을 충전해 줄 든든한 존재들이 나의 곁을 지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여옥 활동가의 말처럼 길이 보일 때까지, 도와줄 사람이 모일 때까지 일단 잘 버텨나가보고자 한다. 물론 그 버티는 시간 동안 나는 여성, 퀴어, 동물권 활동가로서 나의 온 몸을 던져 평화를 위해 힘 쓸 것이다. 다시 한 번 외쳐본다. “혁명은 여성의 것”이라고!

 

​인터뷰집 속 문장들: 밑줄과 강조는 저자(토란)가 표시한 것입니다

한국 병역거부운동의 시작 최정민

“어떤 군사적인 해법이라고 하는 게 힘이 강한 남성이 힘이 약한 여성을 보호해 준다, 이 구도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이 구도가 확립이 되려면 내가 보호해 준 대상자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이 구도가 확립이 되는 거지 이 보호해 준 대상이 갑자기 어느 날 내가 보호받는 이 시스템은 별로인 것 같아, 이렇게 얘기를 하는 순간 그 구도가 깨지니까 아마 그랬던 것같아요. 이게 바로 군사주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군대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누는 거잖아요.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을 막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그런 게 군사주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페미니스트니까, 군사주의라고 하는 게 우리가 하는 반전 운동이라고 하는 게, 그런 일상의 군사주의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것도 반드시 언젠가는 무너뜨려야 될 군사주의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던 것 같고.”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운동, 무기거래감시운동 말고도 비폭력 트레이닝을 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 데요, 비폭력 트레이닝을 개발하고 트레이너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비폭력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로 활동 하고 계신데, 비폭력 프로그램은 언제 어떻게 시작한 것인가요?

“(영국 유학 갔을 때) 거기 데모를 많이 쫓아다녔어요. 그리고 제가 갔던 그 도시가 ‘코드네임 코벤 트리’라는 그런 얘기 있을 정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완전히 폭격으로 초토화된 그런 도시예요. 히로시마, 나가사키 이런 곳처럼 ‘전쟁’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그런 도시들하고 뭔가 맺은 것도 되게 많고. 시의회 자체에서 가을이면은 그런 평화 무슨 페스티벌 같은 거를 몇 주 동안 해요. 되게 다양한사람들을 불러서 세미나도 하고 뭐도 하고뭐도 하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고 그래서 그런 것들도 되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라별로도 많이 돌아다니면서 데모하는 것도 많이 가봤고. 그리고 특히 하고 싶었던 대규모 직접행동 이런 것들도 참여해봤어요. 저는 비자 문제 때문에 잡혀가는 액션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런 것들도 보고, 되게 다양한 거를 많이 봤어요. 학교 공부도 그런 쪽으로 했고요. (비폭력) 시민운동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나 그런 것들요.”

“그리고 이 여성 리더십이라는 게 전쟁없는세상이든 병역거부운동이든 운동적인 성향에 잘 맞는 리더십이었다고 저는 또 생각을 해요. 이 운동이 굉장히 어떤 개인주의적이고 그러면서도 되게 창의적이고 과거에는 없었던 그런 운동의 형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걸 계속 만들어나가는 그런 식의 운동 이어서 저는 이거에 굉장히 어떤 여성적인 감수성이나 여성적인 리더십, 과거에 물론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남성적인 리더십이 뭔가 카리스마를 가지고 끌고 가고 길을 제시하고 이런 리더십이었다면 되게 이제 여성적인 리더십은 이것도 물론 여성적인 리더십이 꼭 여성이 하는 리더십을 얘기하는 건 아닌데, 그런 여성적인 리더십이 협동하고 협의하고 협력하고 없던 길을 만들 때 모두가 동의하면 그거는 우리 모두가 길인 걸 인정하고, 이런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했고, 그렇지 않으면 이 운동이 살아남을 수 없었고, 그런 면에서 여성 리더십이 잘 맞았던, 그래서 아마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 여성 리더십이 끌고 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되네요.”

“전쟁없는세상은 반전운동을 하는 단체잖아요. 그런데 그 반전운동이 굉장히 독특한 거예요. 흔히 반전운동이라고 하면 이라크 전쟁 반대운동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운동을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가 하는 반전운동은 그런 운동이 아니니까요. 페미니즘적인 사고가 없었으면 이런 반전운동을 생각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전쟁을 일으키는 일상의 원인 중 징병제도와 무기거래를 꼽아 거기서 전쟁이 시작된다고 하는 운동.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를 생각하고 그걸 없애는 반전운동을 하는 건 페미니즘적 사고가 있어야 가능해요. 그러니까 전쟁을 시작하는 사람이나 시스템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내가 물론 전쟁 버튼을 누르는 거 아니지만, 우리가 지지하거나 우리가 암묵적으로 묵인했던 이런 제도나 관습들이 전쟁으로 간다는 거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들인 거죠. 그러니까 이게 남녀의 구분이 아니고 페미니스트야 성별이 어쨌든 간에 가부장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런 시각이었기 때문에 이런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고 물론 여성 병역거부운동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전쟁없는세상이 하는 평화운동, 병역거부운동은 잘하 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아마 잘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특히 반군사주의운동 판에서 여성활동가로 사는 게 힘들고, 힘든 게 너무 당연하고, 그러면 쉬어가도 되고… 꼭 그런 그룹들이나 여성활동가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여성활동가들을 많이 만나라. 그런 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쟁없는세상과 병역거부운동의 조직가 여옥

“그런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저희 재단(인권재단사람) 구성원 중에 장례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있어 내부 갈등이 심했거든요. 그때 내가 왜 이리 힘든 건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무엇이, 과거 나의 어떤 경험이 지금의 나를 건드렸을까 계속 찾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병역거부자들과의 관계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박원순 전 시장이)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에게는 추앙받는 사람인데,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인 거잖아요. 병역거부자라고 하면 외부에서는 강한 신념을 가진 대단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는데, 함께 활동하는 나를 동등한 활동가로 보지 않고 그냥 여성으로 여긴다거나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봤던 순간들이. 당시에는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정말 괜찮은 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던 것 같아요.”

“평가를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고 실제로 시행되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병역거부운동이 무슨 영향을 미쳤으며, 무슨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거기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가. 제 결론은, 없는 거 같아요. (병역거부)운동에서 지금 이런 단계를 잘 상상하지 못했고, 그리고 준비하지 못했고, 지금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제도가 엉망으로 도입돼서 기간도, 영역도, 형태도, 심사도 다 문제인 건 맞는데, 우리는 이 많은 문제점 중에 어떤 부분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걸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을 생각해봤는지… 대체역법이 시행되고 심사위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여기에 대해 이야기 나눠본 적이 없어요.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제출서류처럼 디테일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하나하나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인가, 꼭 입장이 있어야 하나, 그럼 대체복무제도는 병역거부운동에서 중요한 게 아닌건가 등등 혼란스러운 점은 여전히 있는 거 같아요.”

병역거부운동 뿐만 아니라 여러 평화운동 이슈에서 활동하셨습니다. 평화운동에서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 혹은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는 분들도 있잖아요. 여성평화활동가로서 이런 구호나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쟁터에 보냈다가 자식들이 먼저 떠난 어머니들이 전쟁을 막기 위한 반전운동를 하는 거는 굉장 히 중요하고 너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거니까. 그분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거랑 별개로 그게 운동의 중심이 되게 만드는 건, 진짜 너무 큰 짐을 (그분들께) 지우는 거고 사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입장에 서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거는 너무너무 중요한데, 그중에 어떤 걸 특정하게 되게 강조를 한다거나 그런 순간에 또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서. 모성을 강조하는 건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라는 어떤 일종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왜 여성이 더 평화로운 존재야. 그럼 남성은 원래 더 전체적으로 호전적인 존재인가? 그럼 이제 막 성선설, 성악설까지 (이야기가) 가야 되고. 너무 이상하잖아요.”

오래 평화활동을 해온 활동가로서, 여성평화활동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일단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힘들겠지만, 버티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일 때가 있거든요. 처음에는 불편한 것이 대부분이라 다 문제제기하고 다 싸우면서 바꾸려 하다 보면 본인 스스로 너무 힘든데, 또 그렇게 하는 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조금 버티다 보면 길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디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하고 뭘 했을 때 변화가 가능한지. 이게 세상의 변화라기보다는 그냥 같이 활동하며 바꿔나갈 수 있는 지점들이죠.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아도 된다, 버티다 보면 도와줄 사람도 생긴다는 것. 그렇게 믿고 의지할 동지들이 생기면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봐도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떠나라. 사실 해 줄 이야기가 뭐가 있겠어 요. 이미 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신 분들인데, 이제는 고인물인 제가 배워야겠지요.”

페미니스트, 평화활동가, 평화교육 연구자 장박가람

“그래서 병역거부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가람의 병역거부운동은 ‘페미니즘 관점을 가진 병역거부운동’이었다. 페미니즘의 관점을 갖고 병역거부운동을 할 때 폭력적 시스템과 안보 담론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가람은 고민이 시작되던 초기부터 군사주의 문화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결합돼서 여성을 배제하고 혐오하는지 그 문제에 집중하면서 병역거부운동을 바라봤겠네요.

“그렇죠. 군대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여성도 분명히 그 영향을 받는데, 그에 대한 어떤 언급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처음 깨달은 거예요. 그전까지는 제가 살면서 그런 걸 경험하거 나 목격할 기회가 전혀 없다가 그때 굉장히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래서 가부장제와 결탁한 군사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1등 시민’인 군필 남성 이외의 존재들이 받는 차별과 폭력을 찾아내고 거기에 저항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병역거부운동만을 내 운동으로 한정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실천을 할 수 있는 여러 운동 중 하나가 병역거부운동이라고 판단한 거죠. 그렇게 해서 마침내 ‘내가 왜 병역거부운동을 하는가’라는 답을 좀 찾았어요.”

“그런데 ‘당시에 우리가 형식적으로 성평등을 고민하는 데 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여성 발제자를 한 명 더 세우고 병역거부자후원회장을 여성이 아닌 사람에게 맡기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죠. 당시에는 특히 당면한 과제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페미니즘을 병역거부운동의 지향점 혹은 가치로 녹여내는 작업을 하기에는 우리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요즘에 많이 해요.”

“당시 사료들을 보니까 그때도 지적들이 없지 않았더라고요. 예를 들면 강인화 선생님 석사논문 「한국사회의 병역거부 운동을 통해 본 남성성 연구」가 나왔을 때, 같이 그 자료를 읽고 선생님을 모셔서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그 논문에 병역거부운동이 가진 한계 지점이 지적돼요. 대체복무제로 귀결 되는 병역거부운동이라면, 결과적으로 ‘1등 시민’에서 배제된 남성들에게 대체적인 시민권을 부여하는 운동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당시에 그런 고민을 좀 더 명료하게 우리의 언어로 풀어내거나 캠페인에 적용할 역량은, 일단 저한테는 없었어요. 저는 그때 그런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당시에는 저에게 좀 어려웠 던 것 같아요. 전쟁없는세상 차원에서도 그렇게 이해가 높았던 것 같지는 않고요.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죠. 하지만 그때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했으면 운동의 다른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았을 까. 그런 생각들이 들어요.”

초창기 고민 부족에 대해 아쉬움이 있겠지만 오히려 그 아쉬움 덕분에 그 이후로 고민이 심화되었을 거 같 아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운동’ 그리고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병역거부운동’이 서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고 보세요?

“이 질문 하나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웃음). 사회의 여러 요인들과 ‘젠더’라는 요인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위계, 그리고 그 위계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게 제가 이해하고 실천하는 ‘페미니즘’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가부장 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폭력’과 ‘군사화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당화되는 폭력’들은 사실 굉장히 깊게 연결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병역거부운동,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전쟁없는세상의 병역거부운동은 페미니즘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상상의 영역이지만 만약 ‘페미니즘 관점이 부재한 병역거부운동’이 있다면, 그 운동은 지금의 군사주의 시스템을 인정하고 ‘여기에서 배제된 남성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라’라는 운동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할 거예요.

페미니즘 관점으로 병역거부운동을 바라보면 국가가 운영하는 폭력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군대·국가·국경에 의해 지켜지는 평화가 1순위’라고 하는 안보 담론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지금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듣는 작업들이 가능하고요.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안보가 무엇이고 평화가 무엇인지 재정의하는 논의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페미니즘 관점의 병역거부운동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한국 병역거부운동이 위치한 지점이 되게 중요하고 어느 쪽으로 갈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둘 다 중요하죠. 대체복무제를 조금 더 인권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일은 페미니즘 관점을 가진 병역거부운동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일단 군대를 성평등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군대 안에 수많은 소수자들이 있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폭력적이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 목적이 ‘여성을 그래서 군대에 더 많이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냐’라고 하면,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첫 번째로 저는 군대라는 조직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고요. 군대라는 조직, 징병 제라는 제도, 그리고 ‘무기로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그 개념 자체에 문제제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평화를 실천하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보자’는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군대는 ‘지배적 남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그 이외의 모든 존재’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 안에서 다른 존재들의 위치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은 모순이에요. ‘군대 내에도 더 많은 여성이 들어가야 되고, 비전투가 아닌 전투 역할을 맡아야 하고,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죠. 하지만 그거는 군대가 기본적으로 성별이분법적이고 가부장적인 체제 위에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군대라는 공간, 현재의 ‘군사 안보’라는 영역 자체가 여성의 자리를 만들 수가 없어요. 그게 본질이기 때문에.”

페미니즘 안에서도 군사주의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있잖아요. 제국주의 국가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참 정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전쟁에 찬성하고 국가에 협조하기도 했고요. 또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그러니까 ‘중동 여성의 인권을 지킨다’는 식으로 전쟁을 합리화하기도 했어요. 이런 페미니즘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단은 ‘여성 인권’을 침략의 핑계로 사용하는, 일종의 ‘페미니즘 워싱’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될까요? 그런 것은 저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이고요.

전쟁에 찬성 또는 협조한 페미니스트들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페미니즘에는 굉장히 다양한 결 이 있고 지금 언급된 사례들은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존재에 대한 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페미니즘은 존재할 수 없다고 저는 보거든요. 폭력이라는 것 자 체가 사회 구조로서의 젠더와 다른 요인들이 결합하면서 만들어지는 위계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물론 제국주의 국가의 페미니스트들이 쟁취하려 했던 여성참정권은 ‘여성의 시민권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죠. 당시 그 사회에서는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문제였을 것이고요. 태어나 면서부터 참정권을 가진 제가 지금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그들의 입장과 선택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현재 제가 선 자리에서, 저의 고민을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진 페미니즘을 더 앞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 서구 사회에서 먼저 발전됐는데, 그때의 페미니즘의 어떤 지점이 지금은 비판의 대상인 거잖아요. 여러 가지 비판 받는 지점이 있지만 대표적인 문제가 소위 말하는 ‘백인 페미니즘’이었다는 점이고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만약에 전쟁에 찬성하는 페미니스트가 있다면 저는 비판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2000년대에 제가 아까 말한 사이버테러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테러에서 약간 촉발제가 된 것이 저희 총학생회 기자회견이었어요. 그때 슬로건이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에 반대한다”였어요. 그런데 저희가 얘기했던 건 이런 거예요. “여성을 침묵시키는, 그렇게 함으로써 안보와 군대 영역 에서 여성을 배제하거나 혹은 수동적 역할로 한정 짓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저희가 “여성으로서 전쟁을 거부하고, 병역 거부를 지지한다”고 한 것은 단순한 ‘병역 거부를 하는 남성들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우리가 이 군사주의 체계 안에서 받는 영향들을 가시화하고, 좀 더 적극적이고 급진적으로 평화 체계를 구축하자’라는 선언이자 제안이었어요.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이, 물론 여러 가지 맥락들이 있겠죠. 누군가는 ‘본질적으로 여성은 조금 더 평화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고. 저는 그런 본질 환원주의를 좀 경계하는 입장이긴 해요. ‘성별 이분법적인 사고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고. 저도 그런 우려를 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제 생각에는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만약 그런 걱정이 있다면, 더 다양한 다른 이야기들을 더 많이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든 “전쟁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많이 나오면 좋은 거 같아요.”

전쟁없는세상과 만나 무기거래감시운동을 시작한 김한민영 (뭉치)

“그는 또한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외치는 인권단체에서 “군사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자”는 평화단체로 운동 기반을 옮긴 이력을 갖고 있다. 덕분에 이 두 가지 관점의 운동을 직접 경험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전쟁없는세상을 “평화운동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곳, 너무 신나는 곳”이라고 말한 다. “쬐깐한 내 책상에서 매일매일을 보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내 세계가 넓다고 느꼈다”고. 그 세계는 지금도 넓어지고 있고, 전쟁없는세상을 통해서 어떤 세상을 만날지 뭉치는 지금도 기대하고 있다.”

“2018년 하반기 전쟁없는세상이 『병역거부 ― 변화를 위한 안내서』(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지음, 경계, 2018) 세미나를 하면서 저랑 동료 활동가를 초대해주셨어요. 그런데 그 책이 ‘여성으로서 혹은 성소수자로서 혹은 평화활동가로서 병역거부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이런 고민이 담긴 책이잖아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병역거부는 평화운동의 방법인 거예요. 그래서 운동 과정에서 감옥에 갈 수 도 있고, 오히려 감옥에 가는 것이 운동 차원에서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저에게는 갑자기 또 새로운 세계가 확장된 거예요.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전까지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갇히는 불쌍한 피해자’로 봤다면, 전쟁없는세상을 만나면서는 되게 능동적이고 강력한 행위자로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앰네스티에서는 병역거부자들이 지금까지 수감된 시간이 누적 몇 시간인지, 이게 얼마나 큰 인권 침해인지를 많이 얘기하죠. 그런데 전쟁없는세상에 와서는 눈물 나는 얘기가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이 군사주의와 싸우는 이야기가 나와요. 저에게는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병역거부운동’이 많 이 새롭고 재미있었어요. 그전까지는 좀 답답했거든요. 공교롭게도 제가 앰네스티에서 맡았던 제일 굵직한 캠페인 중에 하나가 ‘양심적 병역거부’고, 또 하나는 군인의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 폐지였어요. 당연하게도 군사주의의 모순이나 악영향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국제인권법에서는 반군사주의 문제에 대한 내용은 없잖아요? ‘군사주의가 인권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데 그 얘기는 왜 못할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결정을 한 이유로는 서울ADEX(국제항공우주및방위산업전시회)가 제일 큰 것 같아요. 제안을 받기 전에 제가 처음 ADEX 저항행동에 참여하면서 무기박람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거든요. 너무 충격적이었던 거는 예멘 전쟁에서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더 절박한 마음으로 무기박람회에 저항하는 직접행동을 했고 그래서 용감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무기거래감시 팀에서 일한다는) 결정도 한 것 같아요.”

일단 병역거부는 ‘전쟁에 협조하지 않겠다’라는 강력한 행동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무기거래감시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해요. 웨스트파푸아나 예멘이나 미얀마에서 한국산 무기가 쓰이고 있을 때, 저는 진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거예요. 난 여기서 너무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여기에서 한국 시민들이 역할을 잘 하지 못해서 그 무기들이 팔리게 되었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에게 무기거래감시운동은 ‘가해자의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해요. 사실 우리의 행동이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잖아요. 제도를 바꾸기 위한 싸움도 아니었고 직접행동을 위주로 활동했는데, 그래서 저는 ‘무기거래감시운동은 아직 선언적 의미가 더 크지 않나’ 생각했어요. 나도 무기거래와 관련한 성명을 쓰거나 직접행동을 할 때 마치 선언을 하는 느낌이었고요.”

“그때 제가 기분 나빴던 장면들이 뭐였을까. 일단 박람회장에 들어가면 여자들은 미니스커트 입고 사람들을 안내하고, 남자들은 양복 입고 자기들끼리 악수하고 다녀요. 저는 그 모습이 너무 불쾌했어요. 무기박람회에 가면, 군사주의 사회 안에서 ‘지키는 역할’이 누구고 ‘지킴 받는 역할’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저는 20대 여성이니까… 사람들이 너무 잘해줘요. 제가 체험을 하려 고 어디 앉으면 괜히 군복 갖고 와서 무릎 위를 덮어주고. ‘아, 여기서 내가 이 살인 무기들로 인해서 지킴 받는 사람이구나. 무기산업이라는 것이 가부장제의 정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보호해 주는’ 무기를 판다고 세일즈를 하는 와중에 여성들은 너무나도 대상화되고. 그래서 여자들이 여기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저는 늘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지들이 뭘 보호를 해? 이게 무슨 보호의 도구야?’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병역거부운동이 페미니즘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모르겠어요. 이건 느낌으로 아 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때 해방된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도구화되지 않는 세상은 전쟁이 없는 세상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병역거부든 무기감시든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도 병역거부운동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게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한 게 전혀 아니에요. 그냥 평화활동도 좋고 전쟁없는세상 사람들도 좋아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책도 읽으 면서, 군사주의가 여성의 위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히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군대 안 갔다 오고 혹은 군대 갈 의무가 없는 사람들을 이 사회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그런 생각을 계속 했어요. 군사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는 계속 타자이자 도구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 역할을 거부하려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일과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일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 어요. 어려워요. 어렵긴 해요.”

징병제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강인화

“강인화가 병역거부운동과 관계를 맺은 것은 2000년대 초반 비여호와의증인 병역거부자 오태양의 병역거부 이후이다. 당시 그가 관여했던 학생운동 단체에서 집단적인 예비병역거부 선언을 준비하는 활동을 같이 했다. 이 시기에 전쟁과 군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여성학 연구를 시작한다. 당시 여 성주의 연구자들의 연구물을 독해하며 자신의 평화운동의 경험과 고민을 연결하는 연구의 한 결과로 석사논문 「한국사회의 병역거부 운동을 통해 본 남성성 연구」(2007)를 완성한다. 이 논문은 한국 사회에서 군대와 징병제 관한 논의 지형이 당시 병역거부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어떤 한계 지점을 만들기도 했는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해당 논문의 주요 인터뷰 대상은 당시의 병역거부운동 활동가와 병역거부자로 논문은 병역거부운동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도 하다. 2000년대 중반의 병역거부자이자 현재 전쟁없는세상 사무국 활동가인 이용석은 이 논문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잘 설득하기 위한 노력은 종종 기성의 질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가령, “우리는 군대에 가는 양심도 존중합니다. 예비역들의 양심이 존중받는 것처 럼 병역거부자의 양심도 보호받아야 합니다”라는 초창기 병역거부운동의 말은 뼈아픈 비판을 받기도 한다. 징병제 연구자인 강인화는 비국민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기보다 예비역 남성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썼다는 점에서 초창기 한국 병역거부운동이 취한 전략의 남성성에 대해 비판했다.”(이용석, 『병역거부의 질문들』, 오월의봄, 2021, 115쪽) 이후 한국의 징병제와 남성성 연구를 지속하여 박사논문 「한국 징병제와 병역의무의 보편화: 1960-1999」(2019)를 완성한다. 강인화는 냉전과 분단이 한국 사회에 남긴 흔적을 탐색하는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병역거부운동 연구 및 한국 징병제 연구를 지속하며 성과를 꾸준히 쌓아온 학자이다. 그런 만큼 병역 거부운동의 내부 역학에 대한 이해와 한국 사회에서의 병역거부운동이 쌓아온 의미와 역할을 두루 살필수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병역거부로 주제를 옮겨가게 됐어요. 징병제로 논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석사과정에 들어간 후 2002년에 ‘병역거부 선언을 지지한다’ 라고 밝힌 이화여대 총학생회의 선언에 대한 사이버 테러가 있었어요. 군가산점 폐지, 부산대 월장 사태에 이어 도대체 이 군대가 뭐길래 이렇게 뜨거운 반응인지, 특히 여성의 행위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너무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이와 관련된 걸 써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 병역거부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 혹은 반응을 쓰게 되었죠. 이 지점을 논문에서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병역기피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니 끊임없이 ‘기피가 아니라 거부다’라고 설득을 해야 했죠. 거부라고 하는 것을 설득하면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군대를 가는 대신에 내가 딴 걸 한 다, 뭐 감옥에 간다라고 얘기해야 했죠. 그리고 이 운동이 감옥 가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또 다른 한 중요한 축으로 대체복무를 요구를 하게 됐죠. 그러면서 이제 운동의 결이 석사논문에서 제가 남성연대라고 쓰게 되는 방향으로 가게 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러니까 운동 비판이라기보 다는 병역거부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특정하게 위치될 수밖에 없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거든요.”

“병역거부운동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대체 복무를 도입하도록 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대사회적 설득을 위해 보였던 태도와 생산했던 담론이 가진 한계를 국가와의 (남성)연대와 사회운동의 남성성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봤었어요. 그런 문제의식이 아마 석사논문에 반영되었던 것 같아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평화운동에 관한 책에서 발견한 내용이에요. 평화활동을 하던 여성들이 스스로를 병역거부자로 정체화하고 있었어요. 병역거부 활동이, 한 사람이 선언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동 동료들이나 케어링 하는 사람들, 혹은 징집영장을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군사 활동이라든가 전쟁 관련된 활동에 동참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활동이 병역거부라면 그것이 여성들의 전쟁반대 활동, 반군사주의 활동을 포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페미니즘 안에서도 남성과 같은 위치로 가려고 하는 조류가 있고, 세팅 자체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는 조류가 있는데요. 여성이 병역을 거부한다 라고 하는 것이 어떤 흐름인지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군대 갔다 온 사람들과 똑같은 시민권까지도 포기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를 함 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이 세팅 자체를,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도모하게 될 것인지. 그런 질문을 할 수있을것같아요.”

“어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그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국의 사회운동은 굉장히 특이하게도, 이제 문화가 바뀌고 그 축적된 것 이 제도 변화로 이어지기보다는, 먼저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고 그것이 문화 변화를 가져오기를 추동하는 역할을 해요. 많은 경우에 제도만 만들고 혹은 법을 만들고 문화가 변화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 궁극적인 목적이 전혀 맞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운동의 과정에서 어떠한 담론과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라고 하는 차원에서, 백래시에 대항하는 운동이 어떤 설득의 논리를 펼칠 것인가라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아마 이때 당시에 너무 여유가 없었죠. 너무 내몰리고 있었고, 빨리 대체복무제를 만들어야 했죠.”

“전쟁없는세상 소개에 보면 ‘전쟁이 일상적인 차별과 착취의 결과물’이란 내용이 있는데요,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100% 동의하지는 않아요. 일상에서의 평등과 평화도 너무 중요하지만, 구조가 일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반성, 내부 성찰을 지속하 되 조금 더 구조에 대한 급진적인 그런 비판이나 분석이 필요할 것 같아요. 구조적인 접근, 급진적인 목소리가 좀 사양된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질문인데,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한데요. 명망가가 없는 사회 운동이 가능할까요. 한국의 운동 방식에서 명망가 필요했을 텐데요. 명망가 중심이 되면 병역거부 후원회처럼 지지하거나 보조하는 역할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어쨌든 당사자가 아니잖아요. 당사자가 주목되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 당연하죠. 당사자가 가지는 그런 발언권, 사람들에게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누가 말하는가도 굉장히 중요하죠. 이런 부분을 고려하면서도 ‘명망가 없는 사회운동이 가능한가?’ 그런 질문이 들어요.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질문하셨는데, 저는 ‘피해자가 주체가 될 수 있는가’ 그거에 대한 질문을 어떻게 해결할 건가라고 하는 물음을 가지고 있어요. 병역거부자도 한편에서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재현이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폭력에 대한 혹은 그 구조에 대한 저항자로서의 재현이 있고요. 양면처럼 한쪽을 비추면 다른 쪽이 비춰지지 않는 그런 재현 이죠. 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어떻게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제가 하는 페미니즘의 질문인 것 같아요.”

여성(비남성) 병역거부자 지혜(숲이아/윤슬)

“퀴어, 비건, 페미니스트,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는 윤슬은 “평화와 반차별, 생태, 동물권의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더 많은 병역거부자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저에게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게 전쟁에 저항하는 것과도 다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병역거부자로서 저항하는 전쟁 체제와 우리 사회의 가부장 시스템, 이 두 가지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2022 세계병역거부의날 행사를 강정에서 모여 했을 때 모여서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도 보았어요. 그런데 그것마저도 너무 소중한 거 같아요. 사람들의 의견이 다 똑같을 수가 없잖아 요. 의견이 충돌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말들이 생성되고, 또 이렇게 다양한 병역거부의 말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큰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고요. 병역거부 선언 과정은 서로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되고 받아들여지는 시간이었어요. 물론 누군가는 자신의 다른 의견을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병역거부운동이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병역거부 선언이 계속 나오는 한 가부장제가 계속 균열될 거고요. 한국에서는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에 대해서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운동이니까, 병역거부운동의 역할이 확실히 있다고 보지요. (그런데) 이제 언어와 행동을 조금 더 벼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차별주의와 군사주의가 여러 가지로 얽혀 있잖아요. 이 구조들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밝히는 연구가 한국에 많이 소개되면 좋겠고, 그 런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많아지면 좋겠고요. 할 게 진짜 많네요.”

“여성 군인 분이 병역거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는 이제 할 일이 좀 없어질 것 같아요. 좀 욕도 덜 먹고. 그 분한테 묻어가야지(웃음). 여성병역거부 관련된 기록이 만들어지면 좋겠고. 페미니즘 운동하는 활동가와 말을 걸면서 접점을 만들어나가면 좋지 않을까요? 병역거부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퀴어 이슈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 계속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운동 지평을 넓히고. 또 군대 관련 논쟁을 한번 진짜 제대로 붙어보는 거? 그런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남자들 말고 여자들이 모여가지고 군대 문제를 논의하는 테이블도 마련되면 좋겠고요. 너무 할 게 많네요. 진짜 재밌을 것 같아요.”

병역거부자 유정민석과 병역거부 지지자 최현숙

“정희진, 권인숙, 권혁범, 박노자 등의 작업이나 『남성 페미니스트』(또하나의문화, 2004) 같은 책도 있었고요. 그런 책들 중에 꼭 한 장을 보면 군사주의를 비판하는 시도도 있었고요.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나 남성성이 전쟁이나 평화뿐만 아니라 젠더나 페미니즘, 섹슈얼리티와 연결돼 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정민석의 병역거부를 처음 마주한 당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도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유정민석은 자신의 나약함이나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그걸 근거로 병역거부를 했는데요, 이전 병역거부자와 다르니 어떻게 해석할지가 고민이었던 거죠. 당시에는 유정민석의 병역거부를 이해할 언어나 능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정민석의 병역거부는 주요한 지점이었다고 여기기도 해요.

“유정민석: 그랬을 것 같아요. 당시 저도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으니 주변에서도 그랬을 것 같아 요. 다른 병역거부 선언을 보면서 (그 선언들이) 중요한 걸 알면서도 제 언어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 어요. 저는 무신론자이다 보니 종교적 이유를 공감하긴 어려웠고요, 평화주의는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아무래도 제 언어 같진 않았죠. 세계관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병역거부 선언을 보 면서) 내가 병역거부를 왜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병역거부 하는 이유가 페미니즘이었던 것 같다고 느꼈어요. 구체적으로 페미니즘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언어화할 능력은 좀 안되었지만 이런 것들이 기존 병역거부자와 제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최현숙: 저는 국가주의는 가부장체제와 정말 등 붙은 쌍생아라고 생각해요. 그 국가주의를 강화하자는 게 바로 전쟁이잖아요. 전쟁이고, 국경이고, 병력이고요. 전쟁에 정말 제일 힘없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국가주의를 존속시키려고 하는 것이 가부장제가 존속되는거랑 완전히 똑같은 논리인 거죠. 목표도 똑같고, 진행하는 모습도 똑같고. 이런 면에서 페미니즘과 병역거부는 만날 수밖에 없죠.

유정민석: 저는 아직 좀 언어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생물학적인 여성만을 위한 어떤 정체성 운동이라고 하면 페미니즘과 병역거부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답이 잘 안 떠올라요. 인간을 남성, 여성으로만 분리하고 남성성 여성성을 강요하고 그 자체가 폭력이고 존재들을 배제하는 걸 타파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본다면, 퀴어운동이나 병역거부운동이나 페미니즘운동이 당연히 만난다고 생각을 해요. 퀴어운동과 병역거부운동, 페미니즘 운동이 왜 만나야 하는지는 아직 언어로는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한국 평화운동의 연결고리 황수영

그리고 어쨌든 평화라고 하는 게 약간 어떤 일상적인 거랑 만나서 자기 언어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그러니까 되게 담론처럼 크게만 느껴지는 거죠. 한반도 평화 같은 경우도 그렇고. 근데 그거는 이제 여러 층위에 다 적용되는 거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기거래는 피해자나 이런 게 (한국 사회에 가시적으로는) 많지 않잖아요. 평화운동의 이야기가 일상적인 것과 연결되기 어려운 거죠. 근데 병역거부자들이 계속 나오면서 자기 언어로 평화, 꼭 평화가 아닐 수 있는데 군대 가는 거 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양한 언어로 이미 이야기해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저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니까 다양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군대라는 거에 대해서 안 가겠다고 생각하는지가 너무 다 다른 그 지점들이 있는데, 그거를 이렇게 개인화된 언어로 만날 기회가 별로 많지 않아요. 활동가들도 사실 그냥 이게 맞다고 생각해서 하는 활동이지, 내가 군대를 안 가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류의 언어가 많지 않은데 전쟁없는세상이 계속 병역거부 운동하면서 이런 언어를 계속 사회적으로 퍼 나르고, 그런 경험이 많이 정리가 되어 있는 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어요.”

“평화 과정에서 여성의 참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 라는 것 말고 새로운 담론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하나의 분야가 되어버리는 느낌도 있고 요. 여성 참여 부분에 어떤 진전이 있었냐, 하면 전혀 없죠. 안보나 군사 분야는 특히 남성들이 과대 대 표하고 있고, 그러니 여성 참여에 대한 요구가 계속 유효한 것은 맞아요. 분쟁 상황이 여성에게 미치 는 영향과 같은 그런 요구가 나온 맥락도 있죠. 그런데 그런 의제가 다뤄지는 과정에서 ‘여성이 참여하면 더 평화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이 참여해야 된다’ 라는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고민이 돼요. 예컨대 국방부 장관이 누가 되느냐, 여성? 저는 여성이 꼭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그런 고민들이 있어요.”

병역거부자 후원회 활동가 김경희

“병역거부자가 과대 대표되고 후원활동을 하는 여성활동가들이 비가시화되는 문제는 전쟁없는세상의 오랜 고민 중 하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애인이 후원회장을 맡지 않기를 권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했지만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후원회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과 갈등이 일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집에 후원회 활동을 한 여성활동가 인터뷰를 꼭 담기로 했다. 비교적 가장 최근에 활동을 해서 기억이 생생하고, 활동가로서 병역거부운동의 행위자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경희 님이 가장 적격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더 치고 나가거나 하고 싶어도 약간 애매한 지점도 있었고, 사람들이 그러면서 이제 또, 데이트하는 관계가 되면서 그때부터는 이제 거의 혼란스러워요. 사람들의 반응도 그렇고, 여러 가지 뭘하면은, 나는 이 사람들에게 평화운동에 동참하라는 메시지인데, 그냥 내 애인 좀 도와줘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 꽉 깨물고 하는 거죠. 하긴 하는 건데 이게 너무 저는 좀 서운했고, 이게 상처가 많이 됐고, 인터뷰 때 꼭 이야기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병역거부운동의 당사자는 남성, 이렇게만 바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지 않나. 그래서 사실은 여성병역거부자 인터뷰랑 글 쓰는 활동이 좋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운동의 입장에서도 당사자를 많이 만드는 것도 좋고 그리고 사실 약간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반전反戰의 느낌이 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단 캠페인으로서도 되게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 평화운동에 국한된 얘기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한국 사회가 항상 마이크를 남성이 많이 쥐고 있 고 운동도 보면. 여성들, 여성활동가를 약간 뭐랄까, 스페어처럼 쓴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근데 저는, 네, 근데 이거는 어떤 평화운동에 국한된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인 것 같고. 같은 주장을 해도 그렇고 어떤 같은 활동을 해도 (남성활동가 들이) 후하게 받는 것 같다는 생각들이… 먼저 남성들을 놓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경험한 전쟁없는세상의 평화운동은 여성들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그러니까 보통 그런 남성들이 해야 될 것 같은, 남성 활동가들이 많이 하고, 많이 해야 될 것 같은 그런 일들도 그냥 여성활동가들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냥 해도 사실 무방하고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고. 이런 경험, 그런 간접 경험을 오히려 평화활동 행사나 이런 데서 많이 보기는 했어요. 오히려 더 다른 활동영역에서 그런 차이를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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