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경(드라마 덕후, 〈드라마의 말들〉저자)
전쟁을 다룬 드라마에 관한 글을 연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순간부터 첫 글은 〈여명의 눈동자〉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문화방송(MBC) 창사 30주년 기념 특집극으로 기획되어 1991년 10월부터 1992년 2월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TV 드라마의 신기원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화제성과 작품성, 사회적 의미를 두루 갖춘 명작으로 꼽힌다. 나 역시 방영 당시 ‘본방 사수’ 한 것은 물론이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윤여옥을 비롯한 무고한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당하는 장면, 최대치와 윤여옥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애틋하게 키스하는 장면, 최대치가 살기 위해 살아있는 뱀을 먹는 장면, 지리산 정상 눈밭에서 세 주인공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 등을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여명의 눈동자〉가 숙취해소제인지 뭔지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과 가장 어울리는 한국 드라마를 꼽으라고 한다면 〈여명의 눈동자〉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이 두 작품은 닮았다. 《파친코》와 마찬가지로 〈여명의 눈동자〉도 윤여옥(채시라), 장하림(박상원), 최대치(최재성)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인 1943년부터 해방기를 거쳐 한국 전쟁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근대사에 닥친 비극적 상황을 충실하게 재현함과 동시에 급변하는 국가의 운명에 휩쓸리는 개인사에도 초점을 맞춰 전개한다.

그 유명한 윤여옥과 최대치의 철조망 키스신. 이 장면도 충격적이었지만 이 드라마가 건드린 금기들은 오히려 사회정치적인 것이었다. MBC 화면 캡처.
우리를 망친 역사를 살아가는 개인들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과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40년대. 윤여옥은 위안부로 차출되어 중국 난징으로 끌려가고, 중국에서 유학하던 최대치와 일본에서 유학하던 장하림도 각각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난징으로 떠나며 세 주인공의 복잡하고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위안부 생활에 고통을 당하던 윤여옥은 위안소에서 우연히 만난 최대치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러나 최대치가 작전에 투입되는 바람에 이별하게 되고, 윤여옥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탈출을 감행했다가 최대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이판으로 갈 위안부 모집 소식을 듣고 자원한다. 그러나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없애려는 일본군이 ‘위안부 대학살’을 감행하고 그곳에서 미군에 의해 구출된 윤여옥은 장하림과 함께 미국 정보원이 되어 항일 운동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옥중에서 해방을 맞는다. 해방 후 인민군 장교가 되어 돌아온 최대치를 만나고, 최대치가 사망한 줄 알고 장하림과 사랑을 키워가던 윤여옥은 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아이의 아빠인 최대치를 따라 제주도로 도망하여 최대치와 함께 좌익 첩자 활동하던 중 4.3 항쟁의 혼란에 휩쓸리게 된다.
한편 최대치는 일본군이 무리하게 감행한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고, 중국군에 구조되어 팔로군 장교가 된다. 팔로군에서 쫓겨난 후 뜻하지 않게 마적단에 합류하여 지내던 중 마적단에도 배신당해 (또)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국 소련군에 의해 구출되어 인민군 장교가 되어 남파 공작원으로서 ‘철도파업’을 주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시 윤여옥과 운명적으로 재회한다. 윤여옥과 아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잠시 살다가 4.3 항쟁을 계기로 북한으로 탈출하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장교로 참전했다가 훗날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한다.
장하림의 운명도 복잡하고 기구하긴 마찬가지다. 동경대 의대 재학 중 의무병으로 징집되어 난징에 갔다가 731 부대로 발령을 받는다. 그곳에서 일본군이 생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탈영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그 역시)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미군에 의해 도움을 받고 항복한 후 윤여옥과 함께 미군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공작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북한으로 간다. 그곳에서 (또) 죽을 위기 처하고 그곳에서 만난 이중 스파이 김명지(고현정)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미군에 협력하게 된다.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전투경찰대 지휘관으로서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 투입된다.
짧은 글에 다 담을 수 없는 길고 복잡한 이들의 운명을 복기하다 보니, 이런 질문이 생긴다. 세 사람에게 국가란, 이데올로기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 어느 때보다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에 달하던 시절, 이들의 삶은 국가의 운명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무력하게 위안부와 일본군으로 끌려갔다가 냉전 체제에 휩쓸리기도 하고, 사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념을 바꾸며 좌와 우를 넘나들기도 한다. 이런 이들의 선택은 ‘역사’라는 단어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공적이고 복잡했다. 한편으로 지극히 사적이고 단순한 면도 있다. 어떤 선택은 대단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감행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역사극’이기도 하지만, 그 역사만큼 치열한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한 연애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세 주인공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자신들의 삶을 망친 역사와 일생을 바꾼 사랑 앞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낸 것이다.
이런 선택을 요즘 관점으로 보면 ‘지긋지긋한 삼각관계’ ‘전쟁 상황에서도 이성애 연애 못 잃어’ 정도의 해석과 비판이 따라올 정도로 뻔하고 낡은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또한 그땐 몰랐지만 지금 다시 보니 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설정과 대사들도 거슬린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 갈등이 여전하던 1990년대 초반 당시 이 드라마의 선택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허무적 태도, 이념 자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 등을 불러일으켰다는 진보 진영의 비판”과 “좌익의 영웅화에 앞장섰다”는 우익의 비판을 동시에 받을 정도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김환표,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인물과사상사, 2012). 이런 양측의 비판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의 복잡한 사회상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지리산에서 최후를 맞는 여옥과 최대치,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장하림
〈여명의 눈동자〉가 드러낸 전쟁과 국가 폭력
드라마의 이런 선택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1998년 이후 민주화 이행기로 접어들며 냉전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약화된 형태의 드라마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자본과 자원이 투입되어 완성도를 높인 대기획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다소 무거운 주제에 휴머니즘 서사를 덧붙이고, 사전 제작과 해외 로케이션 촬영 등 선진 시스템을 도입하여 미적 완성도를 높인 〈여명의 눈동자〉가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 역사는 〈여명의 눈동자〉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가 방영되기 2개월 전인 8월 14일에는 김학순 선생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을 한 점도 드라마의 대중적 수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김학순’ 이후 위안부 서사는 영화와 TV드라마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여명의 눈동자〉는 제주 4.3 항쟁을 담아낸 최초의 TV 드라마로, 위안부의 실상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대중 드라마로서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드라마가 단순한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동시대적인 사회적 담론을 대중과 연결시키기에 좋은 매체라는 걸 이 드라마가 보여준 게 아닐까?
단지 근현대사를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드라마가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다. 드라마는 세 인물의 선택을 중심으로 전쟁의 비극을 드러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 부대에서 제정신 가지고 살아남고 싶으면 절대 생각해선 안 될 게 세 가지가 있어. 첫째, 인간이란 무엇인가? 둘째, 인간이 이럴 수 있을까? 셋째, 나도 인간일까?” 731 부대에서 세균전을 준비하며 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진 장하림에게 한 일본 관리인의 말이다. 전쟁이란 눈에 보이는 건물과 인간만 파괴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 자체도 파괴하는 것임을 명징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또한 그런 전쟁과 비극을 야기한 국가를 향한 질문도 날카롭게 한다. 해방 후 우연히 경찰서에서 친일파 형사였던 스즈키가 여전히 경찰임을 알게 된 장하림이 절규하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스즈키! 해방이 됐어! 네가 왜 여기 있어!” 이 장면에는 느닷없이 해방을 맞이한 후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었던 신생 국가의 비극적 현실이 압축되어 있다. “우리는 정신대는 몸을 팔았지만, 당신들은 나라를 팔고도 살아 있잖아요”라던 윤여옥의 일갈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가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며 엄중하게 묻는다.
거대 서사에 촘촘하고 날카롭게 박아 놓은 이런 관점 덕분에 우리는 〈여명의 눈동자〉를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역사적 사실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은 변하고, 그걸 적용하는 이들도 변한다. 그렇다면 《파친코》가 널리 읽히고 드라마로도 제작되듯 〈여명의 눈동자〉가 2023년에 방영된다면 어떨까? ‘드라마 덕후’로서 잠시 설렜다가 위안부 생존자들이 여전히 살아있는데 ‘21세기 새로운 동반자 구축’을 위해 “위안부 배상 책임을 더 이상 일본에게 묻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4.3 희생자 추념식’을 ‘대구 서문 시장 100주년 기념식’보다도 중요하지 않게 여기며 ‘국가보안법’이 무기처럼 활용하는 정권 아래서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 이내 시무룩해졌다.
역사는 발전하지만 항상 발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퇴행을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일부러 퇴행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려스러운 일이 많아졌다. 〈여명의 눈동자〉를 다시 보며 이 드라마가 다시 방영될 경우 논란을 예측해 보다가 그런 우려가 한층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