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환경운동가,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어떤 돌고래는 수족관에 갇히고, 어떤 돌고래는 바다에서 쫓겨났다

‘동물+전쟁’이란 주제로 기고 요청을 받고서 내가 처음으로 ‘전쟁’과 ‘동물’의 연결성을 인지한 것이 언제인지 상기해보았다. 그것은 2011년 여름 제주도에서 였다.

2011 여름, 나는 20여 년간 불법포획되어 온 남방큰돌고래들의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했다.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위치한 한 돌고래 쇼장에서 난생 처음 ‘돌고래’라는 동물과 마주했다.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녹물 자국이 가득한 콘크리트 수조.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인간에게 먹이를 갈구하는 돌고래들의 모습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주었다.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감금되어 착취 당하는 돌고래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동물-비인간동물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좁은 수조에 감금된 돌고래들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일상에서 만난 비인간동물들은 주로 인간의 건강과 위생을 위한 박멸의 대상으로 여겨지거나 인간의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으로 가공된 동물이었다.)

나는 돌고래들에게 자행되는 인간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돌고래 감금 시설 앞에서 ‘돌고래를 바다로!’를 외쳤다. 돌아온 것은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돌고래 타령이냐”, “수족관에서 돌고래를 안 보면 어디서 보냐”는 항의와 조롱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족관이나 동물원에서 비인간동물을 만나는 것에 익숙했고, 나의 주장에 낯설어하거나 외면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많은 동료시민들이 동물원 우리를 벗어난 퓨마가 사살된 사건이나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모’가 재감금된 것에 슬퍼하고, 산 채로 땅 속에 파묻히는 살처분 행태에 분노한다. 핫핑크돌핀스 활동가들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앞에서 ‘벨루가를 바다로 보내주세요’ 1인시위를 진행하거나, 한화아쿠아플라넷 앞에서 ‘돌고래를 바다로’ 피켓을 들고 있으면 이를 본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수족관에 갇혀있는 돌고래들이 너무 불쌍해요.”, “꼭 바다로 돌아가면 좋겠네요”라며 공감과 지지를 표하기도 한다.

[사진2] 2015.1.22.강정 바다 비인간주민들을 대신해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행동을 펼치는 모습 Ⓒ핫핑크돌핀스

2015.1.22. 강정 바다 비인간주민들을 대신해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행동을 펼치는 모습 Ⓒ핫핑크돌핀스

수족관 말고 내가 다시 ‘돌고래’라는 동물을 만난 것은 같은 해인 2011년 여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에서 였다. 제주 남쪽에 위치한 강정마을 앞바다는 범섬이 내다보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구럼비’라고 불리는 너럭바위와 연안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적색목록으로 분류한 남방큰돌고래와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기수갈고둥 등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 시멘트를 부어 군사기지를 짓는 것은 말그대로 ‘생태학살’이었다.

경제 지배 아래에서 어느덧 ‘안보’와 ‘군사주의’는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군사기지 건설은 마치 대도시의 재개발 사업처럼 토목건설 기업과 부동산 투기꾼들을 배불리는 일이 되었다. 재개발 공사를 진행할때 그곳에 사는 고양이를 비롯한 비인간동물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듯 해군기지 건설 사업 과정에서도 강정 앞바다에 살아가는 비인간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당연히 없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아예 환경영향평가 조사대상에서 누락되거나 실질적 보호대책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해군기지 공사가 남방큰돌고래들에게 미칠 피해에 우려를 표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하자 당시 환경부 모 과장은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더라도 남방큰돌고래는 알아서 피해 갈 것’이라는 무책임하고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한 비인간동물들은 군사기지 건설과정에서도 너무나 쉽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고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받았다. 결국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으로 통과되었고 협의사항에 명시된 오탁수방지막도 공사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설치되었다. 그마저도 부실하게 설치돼 공사과정에서 발생된 오염물질이 강정 바다로 그대로 흘러들었고,  2012년 11월에는 해군이 설치해놓은 오탁수방지막에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두시간 넘게 갇히는 사고도 발생했다.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된 이후 절대보전지역이었던 강정 앞바다에 건축 폐자재와 독성 물질, 산업쓰레기 등이 마구 버려졌다.

국방부는 2012년 제주에서 열린 WCC 행사장에서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제주해군기지가 ‘친환경공법으로 지어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불법, 편법, 탈법으로 생태계를 무참히 학살해놓고 ‘친환경’ 라벨이 붙은 건축자재와 시공법을 이용했다고 ‘친환경 건축’으로 둔갑되다니. ‘친환경 해군기지’는 ‘녹색 성장’만큼이나 기괴하고 모순된 말이 아닌가! 군사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생태학살은 기지 공사가 완공된 후에도 전쟁훈련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 해군이 자주 합동해상군사훈련을 벌이는 제주 남방해역은 밍크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등의 회유성 대형 고래류와 큰돌고래 등 대양성 소형 돌고래류의 주요 이동경로다. 지난 5월 18일에는 공식 기록상 처음으로 제주도 서귀포 남쪽 문섬 앞바다에서 어린 혹등고래 새끼가 홀로 헤엄치는 모습이 발견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래들에게는 쿠로시오 해류와 대만 난류를 타고 계절에 따라 먼 곳을 오갈 수 있는 중요한 이동통로인 제주 남쪽 바다가 최근 들어 해군의 합동해상군사훈련장으로 더욱 자주 쓰이고 있어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노골적으로 벌이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 때문에 제주 바다는 빠르게 군사화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해양포유류보호법에 따른 공식보고서에서 수중폭발, 소나탐지, 선박충돌 등 미해군이 태평양 일대에서 벌이는 해상군사훈련으로 인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매년 25만번씩 해양포유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했다. 해상군사훈련으로 인해 태평양 일대의 대왕고래, 부리고래, 혹등고래, 참돌고래, 큰머리돌고래, 밍크고래, 코끼리물범, 하와이몽크물범 등이 사망하거나 청각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해양동물 보호를 명분으로 하와이 인근 고래류 서식지에서 진행하던 해군 훈련을 점차 줄이고 있다. 대조적으로 제주 해역에서 자행되는 한미 해상군사훈련은 증가하고 있으며 한반도 해역에서 해상군사훈련에 따른 해양동물 피해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 정부에 의해 조사되거나 발표된 적이 없다.

2023.5.25.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를 지나는 군함과 돌고래들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2023.5.25.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를 지나는 군함과 돌고래들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지난 5월 25일에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의 주요서식처이자 핫핑크돌핀스 사무실이 위치한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한국 해군 소속의 유도탄고속함이 관찰되었다. 그 군함 인근에서는 약 50~70명 가량의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심화되고 있는 바다의 군사화가 초래할 돌고래들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찔한’ 장면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는 전쟁터다. 잠수함의 강한 음파탐지기와 군함의 소음 그리고 미사일과 전투기의 해상폭격, 핵무기 실험 등으로 인해 바다 생물들에게 가해지는 보이지않는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죽은 해양동물들은 대부분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그 피해를 가시화하거나 정확한 피해 수치를 추산하기 어렵다. 전쟁과 군사훈련은 모든 생명을 죽음으로 내몬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흑해에서 러시아 전함이 쏘아대는 강력한 음파탐지기로 인해 5만 명의 흑해 돌고래가 죽었다고 한다.

 

무엇이 돌고래들을 가두고 쫓아내나?

핫핑크돌핀스가 돌고래해방운동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인간이 먼저지, 돌고래가 먼저냐?”이다. 우리는 이 말이 비인간존재를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며 그들을 함부로 가두고 쫓아내고 생사여탈권을 거머쥐는 인간중심주의의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한다. 인간중심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군사주의는 강제로 계급을 나누어 위계질서를 강화하고 생명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작동한다. 존재의 고유성이나 존재간 차이는 고려하지 않은 채 명령과 복종의 상하관계를 형성시키는 군사주의는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 인간종의 모든 사회 관계망을 억누른다. 더불어 자국민중심, 비장애인중심, 남성중심, 이성애자중심 사회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사회구성원들간 차별을 공고히 한다. 핫핑크돌핀스의 돌고래해방운동은 반군사주의운동이자 장애인, 어린이, 여성, 소수자, 나아가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한 운동이다.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으로, 그리고 돌고래 해방이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외친다.

“돌고래 해방은 모두의 해방!”
“전함 말고 돌고래가 뛰어노는 바다를 원한다!”

 

[사진4] 전함 말고 돌고래가 뛰어노는 바다를 원한다 Ⓒ핫핑크돌핀스

전함 말고 돌고래가 뛰어노는 바다를 원한다 Ⓒ핫핑크돌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