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해(국제회의 참가자)

 

 

그동안 군사 무기와 무기 거래에 막연한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었다. 무기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어디에 남아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까? 전쟁없는세상에서 주최한 국제회의 ⟨무기거래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는 복잡하게 얽힌 무기 거래 문제에 대한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해 주었다.

조금 지난 일을 떠올린다.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사격 훈련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사격장에는 총성, 반동, 화약내와 온기가 남은 탄피로 가득했다. 훈련소에서 처음 총성을 듣고 온몸이 경직되었다. 영화 속 총성은 우리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절제된 것임을 알았다. 사격 훈련 내내 하늘을 울리는 총성은 무서웠고 신경이 곤두섰다.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그 훈련장이 어디에 있었고 훈련장 주변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훈련장은 농촌 한가운데에 있었고 주변에는 축사와 밭, 집들이 있었다. 화약 냄새만큼이나 소똥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곳이었다. 그 소들이 놀라진 않았을까? 사람들은 총성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격장 주변의 동물들은 어땠을까? 여기서 사격 훈련을 했던 세월 동안 땅에 떨어진 총알과 화약의 잔해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1부에선 한국의 무기 수출 문제를 다루었다. 한국에서 무기 수출은 2018~2021년 기준으로 세계 9위이며, 최근 수출 증가율로 따지면 세계 1위에 이른다고 한다. 무기 장사는 정부에도 기업에도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루탄, 물대포, 소총, 수류탄, 군용 트럭 등 다양한 무기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쓰이는가? 태국과 미얀마, 스리랑카, 웨스트 파푸아 등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시민들을 진압하고 해산시키기 위해 쓰인다. 특히 에스더가 들려준 웨스트 파푸아의 상황은 심각했다. 여전히 식민주의는 지속되고 있고 여기에 채굴과 개발을 위해 외국 자본(한국 기업 포함)이 들어오는 신식민주의까지 가세했다. 정부는 자본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시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한다. 한국 기업과 한국산 장비도 다량 포함되어 있다. 무기는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민주화’ 전후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다양한 장비가 쓰인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그랬다. 이 거대한 전쟁 경제에서 한국은 ‘전쟁 중인’ 나라로서 무기를 사들이는 한편 전쟁 중인 나라에 무기를 팔며 이익을 추구한다. 무기 사슬에서 한국이 중요한 고리라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다른 지역의 평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현대-tile

웨스트파푸아의 인권활동가 에스더의 발표 PPT 중 일부. 한국의 방산기업들이 만든 살상무기와 시위진압장비가 인도네시아에 수출되어 웨스트파푸아 주민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2부에선 무기 거래와 교차성에 관해 다루었다. ‘무기’는 사람에게만 쓰이지 않는다. 무기가 국가를 가리지 않듯 ‘존재’ 역시 가리지 않으며, 존재 자체를 볼모 삼아 무기로 만들기도 한다. 러시아에선 HIV 감염인 죄수들에게 치료 약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감옥에서 천천히 죽든지’, ‘참전해서 치료받을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당한다고 한다. 군견은 처음부터 존재가 아니라 ‘군수품’으로 동원되고 거래된다. 작전 지역에서 급히 철수할 때 군견은 ‘불필요한 군 장비’이기 때문에 전장에 그대로 버려질 수도 있다. 난민이었던 이들은 또 다른 난민을 발생시키는 국가폭력에 가담하는 형태로만 시민권을 부여받기도 한다.

전쟁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도 파괴한다. 즉각적으로 불태우고 폐허로 만들기도 하지만 땅과 바다에 축적된 오염은 긴 세월에 걸쳐 악영향을 끼친다. ‘전쟁’을 하나의 국가로 취급하면 전 세계에서 네 번째 탄소 배출국에 해당한다고 한다. 군사 훈련도 다르지 않다. 더 많은 군대와 군사 장비를 추구할 수록 더 많은 기지와 훈련지가 필요하다. 기지를 만들고 무기를 사용하면서 축적되는 ‘느린 폭력’*과 비용들은 국가와 기업의 장부에서 책정되지 않는다. ESG 경영을 독려해도 ‘환경을 덜 파괴하는 무기’를 만들 뿐 무기 사슬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는 짚지 않는다. 오히려 무기 사슬을 친환경으로 덮어버린다. 미래를 불태우고 남은 곳에는 돈다발만 가득해질 뿐이다.

전쟁은 언제 일어나서 언제 그칠까? 우리는 언젠가 핵전쟁으로 절멸하고 말 것인가? 이런 질문이 한계를 지니게 된 지는 오래되었다. 세계 각국은 더 발전된 기술과 생산력으로 더 많은 무기를 만든다. 그 무기들은 위정자들의 권력이나 기업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민간인들에게 쓰인다. 강제 이주나 탄압으로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고 사회적 ‘역량’이 계속해서 무너진다.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존재의 무기화’에 더 취약해진다. 무기 경쟁은 더 첨단화된 무기를 더 많이 만들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불안해지는 안보 상황에 대응해 더 많은 군사 훈련을 벌인다. 군사 훈련은 땅과 바다에 더 많은 화약 물질들을 쏟아 넣는다. 땅과 바다는 서서히 망가지며 기후 위기를 부추긴다. 기후 위기는 인류, 특히 대응 능력이 부족한 나라와 지역을 타격한다. 그것은 다시 안보 위기를 불러온다… 말하자면 무기 생산과 사용의 전 과정이 ‘전쟁’이다. 좀 더 ‘느리고 세련되게’ 진행될 뿐이다. 무기 거래와 군사 훈련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활동이자 공동체, 자연, 생물, ‘존재’를 향해, 공멸을 향해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이기도 한 것이다.

 

2부 발표자들, 왼쪽부터 차례로 젤다(페미니즘), 뭉치(그린워싱), 아정(난민), 배보람(기후위기)가 각각의 주제와 무기거래의 연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오리가 '우리는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2부 발표자들, 왼쪽부터 차례로 젤다(페미니즘), 뭉치(그린워싱), 아정(난민), 배보람(기후위기)가 각각의 주제와 무기거래의 연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오리가 ‘우리는 왜 연결되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렇듯 무기 거래를 지탱하는 사슬, 무기를 매개로 한 폭력,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다양한 담론과 이념들이 서로 얽혀 있다. 오리님은 발표 마지막에 ‘교차성’을 사유하자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한국의 역사와 사회적 감각도 함께 교차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시야가 국한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미군은 한반도를 DDT(살충제)의 실험장으로 이용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도 고엽제 피해를 입었으며, 주한미군이 반환한 용산 기지의 토양 오염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평택과 제주의 기지 문제도 그렇다. 질문되지 않은 징병제가 군사주의와 국가폭력을 지탱하고, 그것이 다시 시민들에게 폭력으로 되돌아오는 점도 그렇다. 국제적인 무기 사슬의 한 고리인 한국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 복잡한 연결을 복잡하게 보여주면서, ‘전쟁’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사소한’ 회의와 토론과 공부가 도움이 되긴 할까? 세상이 바뀌긴 할까? 그럼에도, 복잡하다고 외면하지 않고 조금씩 언어를 만들고 다듬어가다보면 분명 언어가 필요한 순간에 조금이라도 덜 헤맬 수 있다고 믿는다.

전쟁없는세상 20주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