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 (청년기후긴급행동)

이제 선을 지우자

5월 17일, 러시아와 태국의 병역거부자/난민과 연대하는 집회에 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누굴 위한 길일까 그 길은 얼마나 많은 삶을 덮쳤을까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이 사라지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숲과 바다의 생명들처럼 너와 나 같이 살자
너와 나 다르지만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이제 선을 지우자. 이제 선을 지우자. 

성미산 학교 <같이 살자> 노래 中 

 

이어폰에서는 성미산 학교 친구들과 집회 때 함께 부를 노래가 흘러나왔고, 내 머릿속에서는 이 가사가 계속 맴돌았다. 

“이제 선을 지우자” 

어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대규모의 미사일과 자폭드론으로 공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미사일로 마을이 폭파되는 모습이 나왔다. 전쟁은 매일 새로운 위협과 폭력으로 현장을 찾아가지만, 뉴스에서 보는 모습은 일 년 전이나, 한 달 전이나, 어제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TV는 탱크와 미사일, 이름 모를 신식무기들을 잔뜩 보여주었지만 실제 전쟁통에서 살아가는 진짜 얼굴, 즉 절망의 얼굴, 죽음을 두려워하는 얼굴, 평화를 갈망하는 얼굴, 투지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얼굴을 알고 있다

한반도는 수많은 침략과 전쟁을 겪어낸 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전쟁을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알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이모는 고향인 황해도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이모는 혼인을 한지 얼마 안 된 남편이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생이별을 해야 했는데 그 이후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홀로 지내며 친척들을 돌봤다.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는 거야. 그때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일 줄 몰랐지.” 

어린 조카 앞에서였을까. 담담하게 말하는 이모를 보며 나는 감히 그녀의 인생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모는 이모부 곁으로 갔다. 

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피난선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영화 <국제시장>과 똑같이 할아버지는 피난길에 동생의 손을 놓쳤고, 평생을 동생과 친척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사셨다. 금방 통일이 될 테니 어서 고향으로 올라가자고, 부산에서의 살림을 정리하고 의정부까지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과 연결시켜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기다렸는데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을 기다리다 잠이 드셨다. 

나는 직접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전쟁으로 인한 기억들은 내 몸에도 흐르고 있다. 그렇게 나에게 전쟁은 상실과 기다림이 되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고, 많은 것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5월 17일, 나는 또 다른 기다림 속에 있는 러시아 난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속하려는 푸틴의 징집 요구에 불응하여 한국으로 피난 온 5명의 러시아 병역거부자들이었다. 푸틴은 작년 9월, 예비군 동원령을 내려 추가로 30만 명을 징집했다. 전쟁에 동원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푸틴의 동원력에 강하게 반발했다. 재한 러시아인들의 반전단체인 보이스인코리아(Voice in Korea)는 동원령이 발표되고 2주 동안 최소 38만 8000여 명의 사람들이 러시아를 떠났다고 한다.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저항했다. 

 

2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200명의 넘는 러시아인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후 난민 신청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난민 신청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고, 그들은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공항에 갇혔다. 법무부는 “단순 병역 기피는 난민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대며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지 않기로 선택한 그들을 막아 세웠다. 법원은 난민 신청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난민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이들의 편을 들어줬지만, 법무부는 법원의 판단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또다시 난민 신청자들은 영종도의 출입국지원센터에 기한 없이 구금하였다. 결국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들은 어디로 갈 수 없었다. 

 

무엇이 그들을 가두었을까?

한국 사회는 난민에게 관대하지 않다. 대학 때 프랑스학을 공부하면서 유럽의 난민정책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보다 난민에 대해 훨씬 우호적인 유럽이지만 그들 역시 EU 내 다른 국가들에게 난민을 떠넘기기 위한 복잡한 행정 절차들로 넘쳐난다. 나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위해 1년 정도 낭트라는 도시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리아와 쿠르드족 난민과 친구가 되었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같이 밥을 먹고 놀면서 그들이 고향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친구는 엄마와 둘만 올 수 있었다고 했고, 다른 한 친구는 가족들과 연락이 끊긴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그 친구들에게 취업 문제, 연애 문제나 상담하는 내가 미안해졌다. 그러자 쿠르드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고작인 문제는 없어. 세상에 크고 작은 문제는 없어.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가장 큰 거지.” 가족과 민족을 잃고 프랑스인이 되기 위해 애써서 살아가고 있는 친구는 나를 위로했다. 세상은 그에게 관대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 세상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난민에게 박한지 알 수 있었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너무나 당연했고, 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에 사회에 큰 혼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소문은 두려움과 공포를 빠르게 확산시켰다. 저마다의 이유로 살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은 이민길에서 또 한 번 자신의 생을 걸고 국경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무엇이 그들을 막는 걸까? 많은 이들이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자국으로 돌려보내진다. 국경을 넘더라도 그들은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 국경뿐 아니라 우리 사회엔 분명히 보이지 않는 선들이 존재한다. 

 

“나라에 힘이 있어야지!” 깨지지 않는 두려움

세계군축행동의 날에 어떤 기사 하나를 읽었다. 한국이 지난해 방산 수출로 사상 최대 금액인 17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올해 방산 수출액을 2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며 K-방산이 ‘힘에 의한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을 믿는다는 말을 했다. 나는 종종 아빠에게 “나라에 힘이 있어야지 남들이 괴롭히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힘이 있어야지만 평화로울 수 있는 걸까? 힘이 없는 나라는 평화로우면 안되는 걸까? 정말 힘에 의한 세계 평화가 가능할까? 나는 한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절호의 기회를 잡은 마냥 무기 수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웠다. 죽음을 수출하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괴로웠다. 한 쪽에서 수출 성장의 신화를 써내려갈 때,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를 빼앗긴 부모의 애통과 친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3

전쟁은 전쟁터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폭력의 체제에 저항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과 거리를 걸었다. 단순히 겁이 많은 사람들과도 거리를 걸었다. 어떤 이유일지는 몰라도 폭력을 싫어하는,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과도 같이 걸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평화를 위한 군대는 없다. 전쟁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라”, “침략을 거부할 용기, 평화를 향한 희망”이 적힌 피켓을 들고 태국 대사관을 향했다. 2016년 태국 최초로 공개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네티윗 초티파이산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있지만, 전쟁을 원하지 않고 평화를 바라는 것은 모두 같은 마음이다.” 

평화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태국 군사정권의 권력과 군사주의에 균열을 내기 위해 병역을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전쟁에 대한 당위성에 균열을 냈다.
병역 거부가 아닌 병역 기피로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노골적인 시선에 말을 걸었다. 

 

우리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선을 지우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국경의 선을 지우고 더 나아가자고. 일상에서 지워나가야 할 선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그러니 오늘은 멈추지 말자고. 우린 그렇게 각자의 삶에서 경험한 억압을 세상에 이야기하고,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해 연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총과 미사일이 아닌, 서로가 필요하다.
평화는 무기가 아니라 전쟁저항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