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한국에서는 매년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국제치안산업대전(KPEX) 등 다양한 무기박람회가 열린다. 주최 기관도 각각 육군협회, 해군,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경찰청으로 육해공군 및 경찰을 대표하는 무기박람회가 하나씩 있는 상황이다. ADEX와 DX KOREA는 각각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방산·지상무기 전시회를 자임한다.

한국의 4대 무기박람회
무기박람회 = 죽음의 시장
무기박람회는 국제 무기 거래를 촉진한다. 무기박람회는 단순히 첨단 과학기술의 군사력 접목과 강한 국사력을 다른 국가와 기업, 그리고 자국민에게 선보이기 위한 전시장이 아니다. 무기박람회에서 실제 무기 수출 상담과 거래가 이뤄진다. 주최측은 참가 기업과 해외 대표단 또는 바이어 사이에 미팅을 주선하고, 전시장 한편에 미팅 룸이 완비된 비즈니스 센터가 있다. 국내외 ‘VIP’를 위한 별도의 라운지 공간도 조성되어 있다. 첨단무기 기술 세미나 및 학술회의도 열린다. 지난 ADEX 2021에서는 G2B 미팅 709건, B2B 미팅 1,017건이 성사됐다.
한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현대로템, 풍산, S&T모티브 등 국내 업체들은 물론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노스롭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L3해리스(이상 미국), BAE 시스템즈(영국), 레오나르도(이탈리아), 탈레스, 사프란(이상 프랑스), 사브(스웨덴), 라파엘(이스라엘), 로켓산(튀르키예) 등 해외 유명 업체들이 국내 무기박람회에 참가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웬만한 무기는 (러시아제 빼고) 다 살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이야기다.
이 무기들을 누가 사는가? 초청 ‘VIP’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각국 군대의 무기 획득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방부장관 및 군 수뇌부, 방위사업청장급 인사들이다. DX KOREA 2022에는 28개국에서 ‘VIP’가 초청됐다. 이들은 대부분 전쟁이나 무력 분쟁, 인권 침해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문제적 국가에서 왔다. 오직 이윤 동기로 무기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은 이들 전쟁 국가의 ‘VIP’를 각별히 모신다.
사우디아라비아, UAE는 예멘 내전 개입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아랍 동맹군은 예멘 반군뿐 아니라 민간 시설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냈다.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에콰도르, 파키스탄, 필리핀 등은 분쟁 중인 국가이다. 분쟁 지역이나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선 국가로 팔려나간 무기는 살상 및 인권 침해와 직결된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국이다. 이들 국가에 판매되는 무기는 직간접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되는 셈이다.

DX KOREA 2022 초청 ‘VIP’ 명단 (‘문제적 국가’는 색깔로 강조 – 예멘 내전 개입국: 노랑, 분쟁 국가: 빨강,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국: 파랑)
군사주의의 선전장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무기박람회가 열리지만 한국처럼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고 적극 권장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한국의 무기박람회는 전문 관람일과 일반 관람일을 따로 두어 전문 관람일에는 군 관계자 및 무기 회사 임직원이 주로 참여하고, 일반 관람일에는 일반 관람객들이 방문해 무기체계를 구경한다. ADEX는 일반 관람일 중 하루를 ‘학생의 날’로 정해 초중고 학생들을 단체로 유치한다. 일부 부스에서는 첨단 무기를 게임처럼 체험해볼 수 있다.
사람을 해치고 건축물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물건들이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로 선보여진다. 이런 ‘멋진’ 물건을 만들어 사고파는 사람들은 국방을 지키고 경제를 살리는 애국자로 포장된다. 무기 거래의 현장인 무기박람회가 사실은 살상을 담보로 하며, 전쟁과 인권 침해를 부추긴다는 사실은 철저히 감춰진다. 무기 회사들은 그들의 제품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는 데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에서 보았듯 전쟁과 무력 분쟁, 인권 탄압에 사용됨을 알고도 서슴지 않고 무기를 팔고 있다.

ADEX에서 한 학생이 F-35 비행 체험을 하는 모습 ⓒADEX 2019 웹사이트
혈세 낭비에 이권 다툼까지
무기박람회는 많은 세금을 들여 개최된다. 이에 대해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협 더불어민주당 국방·정보위 전문위원은 무분별한 방산전시회에 대해 통폐합을 주장했다. 국방과학기술대제전, 대한민국 방산부품장비대전, 대한민국 군수산업발전대전, 대한민국 전력지원체계 전시회 등 각 방산 기관과 군에서 주최하는 박람회가 너무 많다. 특히 DX KOREA는 ADEX와 통합하고 중복된 방산 전시회에 따른 예산 중복과 낭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외 무기박람회에 참가하는 중소·중견 기업에는 방위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국고보조금이 지원된다. 협회·단체는 전시장 임차료 및 장치비, 전시물 운송비, 통역비 등을 3억 원까지 전액 지원받는다. 무기박람회가 부추기는 무기의 생산과 이전, 실전 및 훈련에서의 사용은 대규모 탄소배출을 동반한다. 다른 군사비와 마찬가지로 무기박람회에 쓸 세금은 기후위기 대응, 사회 안전망 구축, 재난 예방에 사용할 수 있다. 진짜 ‘안보’를 위해 쓸 돈이 군비 경쟁과 기후위기를 부채질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
DX KOREA는 최근 2024년 행사를 앞두고 주최사와 주관사가 법정 다툼에 나서는 등 분쟁을 겪고 있다. 육군협회가 기존 주관사인 디펜스엑스포와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고 전시회 이름을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 2024)로 바꿔 새 주관사를 찾는다는 공고를 낸 것이다. 디펜스엑스포 측은 육군협회가 특정 업체를 사전에 내정하고 부당하게 이권을 취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진짜 범죄자는 누구?
영국에서는 지난 2017년 무기박람회 DSEI 행사장으로 향하는 도로 한가운데 누워 차량 통행을 막은 시위자들이 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항소했고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지만, 2021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이 경우에 평화적인 목적을 위한 집회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행사가 일시적 공공질서 유지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사법부가 확인한 것이다.
1996년에는 세 명의 영국 평화활동가가 BAE 시스템즈 무기 공장에 들어가 망치로 전투기를 훼손해 150만 파운드 상당의 피해를 입혔다. 그들 역시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그 전투기는 인도네시아로 수출되어 동티모르를 공격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다. 타인의 기물을 파손한 행위 자체는 범죄지만,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을 포함해 8명이 무기박람회 DX KOREA 2022를 방해한 죄로 벌금 1,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전원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DX 8인의 재판’은 오는 8월 18일에 시작된다. 아까운 세금을 써 가며 전쟁과 죽음을 부추기는 무기박람회를 개최한 것이 범죄인가? 아니면 그것을 방해한 것이 범죄인가? 과연 여기서 진짜 범죄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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