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2022년 무기 수출 실적 173억 달러… 폴란드로만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212문, K239 천무 288문, FA-50 경공격기 48대 수출 계약 수주… 한국 정부가 언론을 통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한국이 올해 유엔에 제출한 2022년 무기 수출 내역 보고서에는 이중 K2 전차 10대만 포함되고 나머지는 전부 누락되었다. 한국 정부의 무기 수출입 내역 축소·은폐 보고, 과연 이번 한 번뿐일까?
무기거래조약에 의한 무기 수출입 내역 보고 의무
한국은 무기거래조약 당사국으로서 조약 제13조에 따라 전년도 무기 수출입 내역에 관한 보고서를 매년 5월 31일까지 조약 사무국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보고 대상 무기는 전차, 장갑차, 대구경야포, 전투기, 공격용헬기, 전함, 미사일 및 미사일 발사기 등 7대 재래식 무기와 소형무기 및 경무기다. 한국 정부는 이에 따라 2018년부터 매년 연례보고서를 제출해왔다. 문제는 2018년 이래 한국 정부의 보고가 줄곧 엉터리였다는 사실이다.
무기 수출입 내역 보고는 무기거래조약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유엔 재래식무기등록제도(UNROCA)에 따라 이뤄졌다. UNROCA는 재래식 무기 수출입 내역 및 보유 현황, 국내 생산을 통한 조달 현황 등을 유엔에 등록하는 제도로 1993년부터 시행됐다. UNROCA의 등록 대상 무기는 무기거래조약과 동일하다.
UNROCA는 재래식 무기 이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인 동시에 군비 투명성 제고를 통해 신뢰를 증진하고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국제평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무기거래조약과 목적을 공유한다. 그러나 정보 등록 및 제출 자체가 참여국의 재량인 데다가, 특히 2006년 이후 등록 국가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한계가 명확했다.
무기거래조약은 이렇게 재량에 맡겨져 있던 무기 수출입 내역 보고를 의무사항으로 만들었다. 조약의 효율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투명한 정보 공유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의무적으로 기록 및 보고할 정보는 7대 재래식 무기와 소형무기 및 경무기의 수출 허가 혹은 실제 수출에 관한 정보이다. 수량, 가격, 모델명, 최종 도달국, 경유, 환적 등 세부사항의 기록 및 보고는 안보 및 거래 정보 보호 측면을 고려하여 ‘권장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무기 거래 상대국 (출처: UNROCA)
무기 수출입 보고서 매년 누락 사항 다수
올해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에 K2 전차 10대(폴란드), 화물트럭 342대(부르키나파소·말리), 소형전술차량 10대(칠레)와 소총 654정(페루·인도네시아), K1A 경기관총 42정(미국)을 수출 허가하고, 돌격소총 40정(불가리아)를 수입 허가했다.
세계 10대 무기 수출국이자 수입국이라기에 너무 초라한 실적이다. 방위사업청과 방산업체들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에 폴란드와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212문, K239 천무 288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 124억 달러에 달하는 수출 계약을 맺었다. 폴란드 외에도 이집트(K9 자주포), UAE(천궁-II), 필리핀(원양경비함) 등에 무기를 수출해 합계 173억 달러의 기록적인 매출액을 달성했다.
겨우 K2 전차 10대와 화물트럭, 소형전술차량을 수출했다는 위의 보고 내용과 크게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화물트럭과 소형전술차량은 군용차량은 맞지만 장갑차1)가 아니므로 무기거래조약의 보고 대상도 아니다. 보여주기 식으로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전쟁없는세상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외교부 수출통제담당관실은 이런 보고가 “’22년 내 계약상대방에게 실제 납기완료된 품목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사실일까? 실제로 2022년 12월 인도된 폴란드 수출 초도 물량은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4문이다.
하지만 보고서상의 용어 정의에 따르면 보고서는 “실제 이전이 아니라, 수출 허가를 기준으로” 작성됐다. 보고서와 모순된 답변을 한 것이다. 더욱이 실제 납품된 것을 기준으로 작성했다고 해도 K9 자주포 24문이 누락된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용어 정의 (출처: 2022년 한국 무기거래조약 연례보고서)
2022년에만 그랬을까? 2018년 이래 주요 무기 수출국들의 보고 기록을 비교해보자. 도표를 보면 한국 정부의 보고가 얼마나 허술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주요 무기 수출국의 2018~2022년 무기 수출 보고 내역 (출처: UNROCA)
남색 원은 해당 국가가 신고한 내역이고, 회색 원은 거래 상대국이 신고한 내역이다. 참고로 러시아, 프랑스, 영국의 2022년 부분이 비어 있는 것은 아직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에 한국이 수출했다고 되어 있는 미사일 9,160기는 우즈베키스탄에 수출한 2.75인치 유도로켓 연습탄이다.
이것을 제외하면 한국 정부가 2021년 이전에 보고한 주요 무기 수출 내역은 태국에 호위함 한 척, 페루에 초계함 한 척(중고 무상 공여이므로 엄밀히 수출은 아니다), 세네갈에 KA-1S 4대, 태국에 T-50TH 8대가 전부다. 심지어 2020년에는 주요 무기를 하나도 수출하지 않았다고 신고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방산 수출품으로 핀란드, 에스토니아, 인도, 노르웨이, 폴란드 등에 수출된 K9 자주포는 거래 상대국의 보고를 통해서만 간간이 포착된다. 세계 9위 무기 수출국인 한국이 5년 동안 수출한 주요 무기체계가 고작 배 한 척, 전차 10대, 훈련기 12대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 5년 동안 한국은 누적 334억 달러의 무기 수출을 달성했다.

2018~2022년 방산 수출 추이, 수주 기준 (자료: 방위사업청, 산업연구원)
다른 나라들도 충실히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는 것 같다. 당사국들의 충실한 보고가 조약 이행 노력 강화 및 투명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빈칸 투성이에 오기입까지
그 밖에 전반적으로 보고서 자체가 빈칸 투성이에 각종 오기입된 항목까지 무성의하게 작성되고 검토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맨 앞의 보고일부터 2023년이 아니라 2022년 5월 31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오타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이다. 5월 31일은 조약상의 보고 마감일로 실제 한국 정부의 보고는 2023년 6월에 이뤄졌다.

연도가 잘못 기입되어 있다. (출처: 2022년 한국 무기거래조약 연례보고서)
내용을 보면, 최종수입국 칸이 아닌 가격 칸에 국가명이 기재되어 있다.

국가명이 잘못된 자리에 기입되어 있다. (출처: 2022년 한국 무기거래조약 연례보고서)
게다가 담당자 이름, 직위, 소속, 연락처가 누락되어 허술하게 작성된 보고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물을 수도 없다.
언론에 공개해놓고 국가안보·경영상 비밀?
한국 정부에게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조약 제13조 제3항에 따라 “상업적으로 민감한 정보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는 [보고에서] 제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서 작성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 예외는 [무기거래의] 투명성 촉진이라는 조약 제1조상의 목적에 부합해야 하며, 이 점에서 완전히 생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보고 제외에 관한 내용 (출처: 무기거래조약 보고 가이드)
일부 정보를 생략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무기가 수출 또는 수입되었는지는 보고해야 하며, “수량과 가격 중에 선택해서 기입할 수 있다”는 취지다. 조약이 상업적 민감성 및 국가 안보와 관련해 어떤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는지 기준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런 판단은 투명성 향상이라는 조약 제1조상의 목적을 고려하여 공공의 이익에 따라 건건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어떤 판단 기준에 따라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공개 기준이 비공개 대상이라는 것이다. 무기 수출 내역 중 어떤 것이 국가안보 및 경영상 비밀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국가안보 및 경영상 비밀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과 방산업체들이 언론에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가 어째서 국가안보 및 경영상 비밀로 간주되는지 의아스러워 질의했지만, 역시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당사국회의 의장국이 이래도 되나?
한국은 올해 8월 21~25일 열리는 무기거래조약 당사국회의 의장국이다. 당사국회의는 조약 이행 평가, 조약의 이행 및 보편화 증진 관련 권고사항 채택 등 주요 사항을 논의·심의하고 당사국에 필요한 권고를 하는 무기거래조약의 핵심 의사 결정 기구다.
한국 정부는 이번 무기거래조약 의장국 수임이 그동안 “재래식 수출 통제 선도국으로서 무기 거래 조약 활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온 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를 계기로 “수출통제 및 비확산 관련 국제 논의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고, 책임 있는 방산 수출국으로서의 위상을 제고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동안의 보고 행태를 보면 과연 한국 정부가 재래식 수출 통제 선도국으로서 얼마나 기여했는지 의문이다. 한국 정부가 정말로 책임 있는 방산 수출국으로서 위상을 제고하고자 했다면 작년 무기 수출 내역부터 충실하고 투명하게 보고해야 하지 않았을까? 언론을 통해서는 173억 달러의 사상 최대 무기 수출 기록을 세웠다고 자랑하면서,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한 제도에는 같은 내용을 축소·은폐 보고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 UNROCA에서 장갑차는 “장갑 보호 및 험지 주행 기능을 갖춘 궤도, 반궤도 또는 차륜형 자주 차량으로, (a) 4인 이상의 보병 분대를 수송하도록 설계 및 장치되었거나 (b) 12.5밀리미터 구경 이상의 일체형 또는 유기적 무기 또는 미사일 발사기로 무장된 차량”으로 정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