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뮤지션, 비폭력트레이너네트워크 ‘망치’ 코디네이터)
전쟁없는세상 주:
2022년 9월 22일,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은 DX Korea의 전시장의 장갑차와 탱크 위에 올라가 바이올린과 기타로 평화를 노래하고, 방위산업전시회의 실체를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이 저항행동에 대해 사법당국은 방위산업전시회의 ‘업무’가 방해됐다며 약식명령으로 활동가들에게 총 1,7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이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다가오는 2023년 8월 18일 첫 공판이 열립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저항행동 당시 장갑차 위에서 기타를 연주했던 펭귄이 재판에 임하는 글을 썼습니다. 위의 사진은 액션 며칠 후 일산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작년 가을, 기타를 메고 K808 장갑차 위에 올라갔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노래하는 마음으로 바이올린과 함께 두 곡, ‘Haste to the Wedding’과 ‘바위처럼’을 연주했다.
올라가 보니 아래에서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아래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작았다. 순간 이 쇳덩이가 진짜 무기라는 걸 새삼 절감했다. 여기에 올라타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내려다보는 시각에서 아래의 사람들을 밀어버리고 짓밟게 되는 것이구나.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는 오히려, 신기하게도, 아래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군 출신으로 보이는 분이 ”이것들 다 이북에서 온 것들이야!“하고 소리를 쳤던 것과, 관람객 가운데서 ”놔 둬요, 용기 있는 사람들이네, 저런 사람들도 있어야 해요.“ 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성향이 완전히 다른 관객이 모두 내 연주에 반응하고 있다니, 속으로 조금 자랑스러워 했던 것도.
그 일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생애 처음이다. 막상 겪게 되니 재판에는 꽤 준비가 필요했다. 변론해 줄 변호사를 구해야 하고, 변호사와 대응 방향을 논의하고, 피고가 여럿이니 우리들 사이에서도 입장을 확인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재판 비용과 벌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대책이 필요했다. 혼자가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보통 일이 아니다.
그 외에도 작지만 작지만은 않은 번거롭고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검찰과 법원에서 날아오는 등기서류를 제때 받는 것 부터가 일이고(낮에만 오신다), 원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이면 이걸 가족들이 알게 될까부터가 스트레스다. 직장인이면 재판 때마다 회사일에서 빠져야 하는데 어떻게 설명할지도 적잖이 부담이 된다. 혹시 유죄가 나오면 ‘빨간 줄’이 그이는 건데, 취업이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도 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벌금액 숫자가 주는 압박도 컸다.
다행히 전쟁없는세상은 함께 활동해온 변호사가 있다. 8명이 모두 같이 정식재판을 청구하기로 결심하면서 큰 방향도 잡혔다. 감사하게도 공익사건 법률대응을 지원하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유현석 공익소송기금에서 변론 비용을 지원해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행동기금(전쟁산업에 저항하는 직접행동과 법률 대응을 위해 전쟁없는세상이 조성한 기금) 모금캠페인을 하기로 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고 ‘멋진 나쁜 놈들’ 컨셉으로 모금 화보를 찍었다. 아니 근데 처음 찍어본다면서 활동가들이 다들 왜 이리 멋있는지. 최종본 사진이 나온 날, 나만 아니었으면 더 멋있었을텐데(난 왜 이리 어색한거냐) 하고 이불킥했다. 특별모금 홈페이지를 만들고, 열심히 링크를 올리고 보내기 시작했다.
후원을 요청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잘보였으면 좋겠고, 반응이 없을까봐 두렵고. 그런데 이번엔 그런 맘이 오래갈 틈이 없었다. 단톡방에 올린 지 얼마 안 되어 “사진 멋있다”, “(직접행동 당시의) 영상도 잘 봤다”, “근데 무슨 곡을 연주했냐” 하고 말들이 올라왔다. 다행이다, 사람들 마음에 들어갔구나. 한 사람 한 사람 응원의 말을 받을 때마다 안도감과 함께 차곡차곡 기운이 났다. 법원에도 이 마음들을 업고 가야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셔서 마음이 안 좋습니다. 법이 왜 이렇게 사용되는지.”
“나라면 무서울 텐데 용기가 대단해, 재판이 깔끔하게 잘 풀리길.”
“스텝업 운동을 열심히 해서 다음엔 삐끗하지 않고 올라가 보아요.” (feat.뼈때림)
“영혼 팔아 돈 벌고 있는데 이런 데 후원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이제는 법정에서 피의자 신문과 최후진술을 어떻게 할지, 그러니까 어떤 태도로 무슨 말을 할지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왔다. 나는 이 정도의 행동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 화가 나고 슬프다. 솔직히 이번엔 평화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어필하려고 애썼다. 음악하는 이로서 이런 예술 행동에조차 수백만원의 벌금을 때렸다는 점이 실망스럽고 짜증도 난다. 군대와 국가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을 이렇게 바라보는구나 싶어 더욱 그렇다.
활동가들을 고발한 무기박람회 측과 검찰은 우리가 “소란을 피워 관람객들이 자리를 옮겼다”며 ‘업무 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나는 장갑차 위에 올라가서 연주를 시작했을 때 아래에서 업체 직원인 듯한 사람이 “이거 우리가 기획한 거 아냐?”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던 것을 떠올리고 피식 웃음이 났다. 전시 업체에서조차 관람객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벌인 이벤트라고 헷갈릴 정도의 행동이었던 셈이다. 연주를 마치고 내려올 때 몇몇 관람객 분들이 박수를 보내주신 기억도 났다. 적어도 그 분들은 자리를 옮기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우리가 택한 평화적인 행동에 비해 무기박람회와 정부에서 취한 조치는 옹졸하기 그지없다. 법정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법정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음악 연주는 평화적’이란 인정을 받으려고 장갑차와 전차에 오른 게 아니니까. 우리가 매번 무기박람회 때마다 저항행동을 하는 이유, 장갑차와 전차 위에 오르는 이유, 그 위에서 현수막으로, 구호로, 연주로, 그리고 그 장면을 통해서 전한 메시지가 바로 내가 정말 재판에서 당당하게 하고 싶은 주장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에 무기를 파는 나라가 되었다. 전쟁 무기도 팔고 시위 진압용 무기도 판다. 그리고 그걸 새 경제성장 동력이라고 자랑한다. 국위선양이라고 치켜세우고, 정권에 관계없이 그 공을 차지하려 든다. 그러면서 국제기구에는 거래내역을 숨기고 불성실하게 답한다.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은 이제 전쟁의 피해자에서 전쟁의 가해자 대열에 확실히 들어섰다. 나는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법정에서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아니라고. 법정에 서서 행동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전쟁없는세상’이 아니라 ‘전쟁 하는 세상’, 전쟁을 사고파는 세상이 법정에 서야 한다고.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했고, 왜 했으며, 그것이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 감시받고, 수사받고, 재판받아야 한다. 바로 전쟁을 사고 파는 무기거래 주체들—무기박람회, 방위산업체들, 무기 딜러들, 그리고 정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