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jungmin.duck@gmail.com)
일명 DX8[1]의 두 번째 재판이 곧 열린다. 활동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집회/시위/직접행동과 기소/재판, 벌금/감옥은 업무의 일종이라 이번 재판도 특별히 비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재판을 받을 때마다 법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의아한 점이 있어 이번 기회로 좀 정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다른 경우에 비해 이번 사건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8명의 벌금이 모두 똑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나와 용석, 쥬 이렇게 전쟁없는세상의 사무국 3인은 다른 사람보다 벌금이 많게는 3배 적게는 1.5배 더 많이 나왔다. 그런데 이 3명은 모두 탱크에 올라가 액션을 하지 않고 아래에서 보안요원을 상대하거나 촬영을 하는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저들(DX Korea 조직위원회)이 자신들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하는 그 행위를 엄밀히 말하면 하지 않았다.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오히려 액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벌금이 부과된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적은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왜 그런 것일까?
우선 경찰 조사를 복기하며 실마리를 찾아가 보자. 이번뿐만 아니라 데모를 해서 재판을 받다 보면 왜 집요하게 이런 질문을 계속 할까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워딩 자체가 정확하진 않지만 “000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입니까?”, “어떻게 이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까? (a.k.a. 누가 시켰습니까?)” 등의 질문들. 내 입장에서는 내가 한 행동과 크게 관련이 없는 질문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경찰 조사 관행에서 이 질문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경찰이나 검찰의 입장에서는 주모자(주최자)가 누구인지, 사전에 범행(응?)을 공모했는지가 꽤 중요한 일인가보다. 일반 형사범죄에서는 일리가 있는 얘기일 것도 같다. 하지만 확신범에게도 이 논리가 타당한가.

전쟁없는세상의 전형적인 참여형 워크숍 모습. 소그룹으로 논의한 내용은 전체로 공유되고 다시 조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이런 류의 행동을 기획할 때 보통 참여형 워크숍들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워크숍에서는 그 행동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사회모순(DX8의 경우는 무기박람회가 단순히 무기전시회가 아니라 현재 분쟁이 벌어지는 곳의 국방관계자를 한국정부가 우리 세금으로 초대해서 전세계 무기상인들과 만나게 하고 실제로 수주계약을 맺도록 방음부스까지 제공하는 살인무기시장이라는 사실)과 그것의 원인에 대해 토론한 후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룰 것인가를 논의한다. 아이디어스토밍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낸 후 행동의 형태를 신중하게 고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가,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가 등등이 고려되며 아이디어들이 편집되고 합체되는 아름다운 혼돈의 단계에 오래 머문다. 행동이 결정되면 그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식별하고 각자의 사정과 관심사, 특기 등에 맞게 각자 역할을 가져간다. 전체 워크숍을 진행하는 진행자는 있을지언정 이 과정 어디에도 누군가가 지시를 내리거나 주도를 하는 경우는 없다. 전없세 사무국 3명을 주모자로 보고 더 많은 벌금을 매긴 것 같은데 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폄하하는 불쾌한 발상이다.
전쟁없는세상은 본 액션을 위해 2인이 미리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사전 답사를 하면서 확인 했던 것은 ① 플랭카드 등 액션 물품을 무사히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② 어디에서 액션을 해야 우리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③ 우리가 위험해질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어디서 어떻게 탱크 위로 올라가면 좋을 것인가 ④ 경호팀이 출동했을 때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위력도 행사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최대한 우리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었다. 비폭력 직접행동에서 이러한 사전답사, 공모 아닌 공모는 필수적이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이런 제반의 체크포인트들을 미리 고려해두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이나 권력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때 고의적이고 공개적으로 법을 어기는 시민불복종적인 성격의 행동일 경우 이러한 사전답사를 1회가 아닌 몇 차례에 걸쳐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물론 이번 DX8의 행동은 시민불복종이 아니었고 국민의 법 감정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된다고 생각되는 수준의 행동이었다. DX8 구성원들은 양심적인 시민으로서 관습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행동을 기획했다. 집회신고를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우리 세금으로 진행되는 행사이고 그곳에서 그 정도의 행동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권리 내에서 보장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맞게 행동하였고 과도한 피해나 불편을 초래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 했고 이를 통해 우리 신념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려 했다.
확신범들의 범죄는 개인적 이기심의 발로나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익적 목적의 행동이다. 따라서 경찰과 검찰은 이들을 체포하거나 조사할 때 이를 반영하여 절제된 행동을 보여야 하고 판사 역시 양심적 동기를 고려해 선고해야 한다. 활동가들이 기소될 경우 혐의는 주로 업무방해(DX8의 경우), 공동주거침입, 퇴거불응, 공무집행방해, 특수절도(동물구조활동의 경우), 폭행(몸싸움이나 실랑이가 수반되는 행동의 경우), 일반교통방해(도로에서 벌어지는 행동의 경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공직선거법위반(낙천낙선 등의 유권자운동), 국가보안법 위반, 출입국관리법 위반(외국인의 경우) 등등이 있을 수 있는데 구체적인 혐의 자체로만 사건을 다루게 되면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방구뽕씨 같은 경우가 되기 십상이다.
드라마에서 방구뽕씨에게 씌워진 혐의는 미성년자 약취유인(학원 버스를 탈취해 그 안에 타고 있던 초등학생들을 근처 산으로 데려가 실컷 놈)이었다. 하지만 방구뽕씨는 자신의 행동을 사회변화를 꾀하는 일종의 공익적인 행동으로 생각했고 변호사 우영우는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기 보다는 피고인의 뜻을 받아들여 사상범으로 변호를 택했다. “피고인은 현존하는 사회 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지고 개혁을 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지은 사람. 다시 말해 사상범입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죄를 저지른 파렴치범이 아닙니다. 피고인이 망상장애 환자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그건 피고인의 감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어린이 해방에 대한 피고인의 사상을 욕되게 할 것입니다.”

2015년 영국의 DSEi 무기박람회에서 직접행동을 해 재판에 부쳐진 활동가들이 2016년 3월,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불에 타고 있는 집을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사람을 구하는 경우 창문을 부순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종종 인용하곤 한다. 학원 버스를 탈취해 초등학생 12명을 산으로 데리고 간 사실에만 집중한다면 약취유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의 양심적 동기를 고려해보면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상에서 방구뽕씨가 결국 어떤 선고를 받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판사가 “피고인은 피고인이 저지른 행위를 반성하나”라고 물어보는데 방구뽕씨는 “반성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또 “앞으로 이와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를 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고 답한다. 몇 년 전 삼성물산 직접행동으로 잠깐 교도소에 있을 때 공교롭게 또 다른 직접행동의 재판을 받게 되어 소 안에서 최후진술서를 쓰는데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내용이 안 들어갔다며 함께 방을 쓰는 제소자 언니들에게 한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야 판사가 정상을 참작해준다는 얘기다 (실제로 참작을 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신범들에게 이 질문은 함정과 같다. 방구뽕씨나 우리들은 반성은커녕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사회부정의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 행동을 고안하고 실행할 것이다. 반성? 무엇?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드라마에 비춰진 방구뽕씨의 모습이나 법정의 분위기, 변호사의 태도 등은 현실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내가 만약 방구뽕씨의 입장이었다면 아이들을 말도 없이 산에 데리고 가지도 않았겠지만(문제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 안 함) 법정에서의 태도도 달랐을 것 같다. 나는 활동가들이 자신을 옹호하고 감형을 추구하는 것은 억압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상황이 그렇게 된 데까지 이르게 된 복잡한 맥락을 법정에서 최대한 설명했을 것 같고 일부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무죄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적극 어필을 했을 것 같다. 정직한 시민으로서 나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친구들을 불러서 증인도 세우고 내가 하는 일, 내가 어떻게 내 삶을 꾸려가는지, 이 행동이 내 삶과 어떻게 부합되는지 등등을 진술했을 것이다. 휴… 방구뽕씨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빨리 최후진술문을 쓰자.
각주
[1]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서 영감을 받아 영국의 평화언론 Peace News에서 지어준 애칭이다. 지상군 무기박람회 DX Korea 전시장에 들어가 악기를 연주하고 살인무기를 판매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친 8명의 활동가들을 지칭.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포스터에 합성한 DX8의 사진
무죄 선고 요청 탄원
DX8 재판이 10월 13일(금)에 열립니다. DX8의 8명은 모두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와 목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경찰조사에서도, 재판에서도 한결같이 우리의 행동을 부정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이 여덟 명의 액션이 전쟁이라는 큰 범죄를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점, 비폭력으로 진행된 직접행동으로 어떤 물리적 위압도 행하지 않았던 점, 헌법에도 표현의 자유와 집쇠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13일 재판에도 DX 8 활동의 무죄를 주장하려고 합니다. 재판부에게 DX8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힘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탄원서로 함꼐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기박람회 중단 요구 팩스 보내기 액션
DX8 활동가들이 액션을 한 무기박람회는 2022년에 열린 대한민국방위산업전입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 아덱스가 열립니다. 무기 박람회 중단을 요구하는 팩스를 국방부장관과 방위사업청장, 아덱스 운영본부장에게 보내는 액션이 진행 중입니다. 무기 대신 평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세요. 10초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번 참여할 수 있고 여러번 참여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