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동물권 활동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동물+전쟁으로 원고 요청을 받았으나, 이후 개인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동물과 전쟁의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된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현재 출가자의 신분이므로 종교적(불교) 관점이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편지처럼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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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 동물해방 운동은 내 삶의 중심이었다. 동물이 나의 아픔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언어였다, 나의 몸이 오랫동안 그들의 몸으로 지탱되어 왔으므로, 그들의 아픔을 알지 않고서 내가 겪는 통증의 원인을 알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철저히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도살장과 수산 시장에서 죽임을 앞둔 동물들을 마주하는 활동을 하며, 너무 많은 이들이 어떠한 애도도 없이 철저히 상품으로 대상화되어 죽임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수가 너무도, 너무도 많아서 하루에 목격한 이들만 해도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렀다. 그것이 매일 반복되었으므로 나는 그 고통의 밀물 앞에서 엄청난 좌절을 느꼈다.
나는 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비극적 현장을 가까이 목격한 이들이 그것을 ‘전쟁’으로 비유하는 일에 대해 공감한다. 나는 내가 목격한 것이 분명 전쟁의 한 양상이라고 느꼈다. 전쟁이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를 죽이거나 해치는 일이라면, 수많은 생명들을 하나의 목적 아래 철저히 수단화하는 일이라면, 그래서 멈춰야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전쟁이었다.
우리는 많은 생을 살았다. 이번에는 사람의 몸을 입었지만, 이전에는 사람 아닌 몸으로 더 많이 살아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한두번 죽어 본 것도, 한두번 태어난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죽이기도, 죽임 당하기도 했고 그만큼 누군가를 살리기도, 살려지기도 했다. 그 모든 삶을 살아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다. 한 존재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그토록 타자로 살아보는 경험(=윤회)을 반복하는 이유다.
최근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장면 중 하나는, 어떤 남자가 아버지의 영혼이 깃든 개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엄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말을 몰고 가는 여자, 그리고 어쩌면 형이나 누나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지 모르는 반려견을 괴롭히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박진여, <당신의 질문에 전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김영사, 2020)
억겁의 시간 동안 우리는 죽고 나고 나고 죽으면서 누군가의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었다. 그 수많은 나의 딸들, 아들들, 어머니들, 아버지들…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내가 도살장에서 마주한 이들 중, 과거생에 다른 모습으로 인연 맺었던 이들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모두 나의 부모요 연인이요 친구였으므로, 그러나 지금껏 그들의 살을 먹고 있었으므로 나의 몸과 마음이 그토록 아팠던 것이다.
내가 ‘고기’가 되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죽임당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집단적으로 나고 죽는 과정이 계산되어 조금의 행복도 허용하지 않는 무심히 잔혹한 구조에 놓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을 죽임으로써 연명하는 이였던 적도 있을 것이다. 그 모두가 나였을 것이다. 전쟁의 현장에서도, 내가 죽이고자 하는 이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이 모두 다른 얼굴을 달고 있는 나였을 것이다.
우리는 마음 세계에 있는 것을 형상 세계로 실현시킨다. 에너지가 물질이 되고 물질은 다시 에너지가 된다. 전쟁의 발현 또한 기본적으로 마음의 전쟁 상태에서 비롯한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해서, 내가 그를 죽이고 싶어 해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길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작년, 평화캠프 후기의 글에서 올해 병역거부선언을 하겠다고 했는데, 출가를 한 지금, 나는 나의 삶이 그 자체로 병역거부선언이라고 생각한다. 글의 형태만이 선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이 그 존재 자체로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나는 당신의 삶이, 몸이, 영혼이, 병역거부선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살리고 돌보겠다는 의지가 선언이며, 매순간 사랑을 선택하는 일이 병역 거부다.
지옥이 매 순간 우리 마음에 나고 지듯, 전쟁도 매순간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또한 그곳을 한순간 천상으로 만드는 일, 평화로 만드는 일 또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나의 마음이 이미 평화롭다면 어떤 무기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어떤 무기가 내 손에 쥐어진들 그것은 모두 한 송이 꽃으로 변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자주 전쟁 상태이고 아주 가끔 평화롭지만, 함께 평화롭고자,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그 자체로 이미 평화다.
사랑이 인간의 소임이다. 함께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적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쓰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롭다. 그리고 사랑을 회복할 때, 그러니까 사랑이 사랑 아닌 것을 대체하는 순간 그것은 반드시 세상을 바꾼다. ‘전쟁없는세상’이 하고 있는 일 또한 그러하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었고,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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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인연되어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모쪼록 우리가 마음의 전쟁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의 밭을 일굴 수 있기를, 영원한 자유와 행복 속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