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DX 8 재판 피고인)

 

작년에는 다른 해들보다 여러 전쟁들과 무기 수출에 대한 소식들을 많이 접했던 것 같다. 물론 매해 많았겠지만 내가 관심을 조금 더 기울였기에 더 많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소식이 오가는 매체에서 사람들은 전쟁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다가도, 국산 무기가 잘 수출된다는 이슈에는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함을 느꼈고, 무기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과 고민이 없는 사람들과 방산업체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내가 학생이었던 작년에는 멀게만 느껴지는, 거대자본이 투입된 무기산업 앞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 답답함과 무력감을 마음 한 켠에 안고 지내던 중 작년 9월에 DX KOREA 무기박람회 저항 행동을 한다는 소식을 보고 참여하며 탱크 위에 올라가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자 하는, 내 생각과 신념이 엉킨 채 묻혀있는 것보다 어떻게든 발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탱크 위에 올라갔다. 사실 탱크 위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재판까지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행동들이 너무나 비폭력적이었기 때문에.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외친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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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당일로부터 한 달이 좀 안 된 10월 중순에 우리는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했다. 거기에 있던 경찰관들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꼬치꼬치 캐묻고, 원하는 답을 유도하며 질문하고, 애매하게 질문해서 대답해도 되나 싶은 질문들을 많이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정말 나와 우리를 범죄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정말 폭력과 피해를 꾀하고 행하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전시를 벌이고, 수억 원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는데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약간은 비장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서에 다녀왔지만 끝나고 나니 확 긴장이 풀어지고 너무 몸이 무거워졌다. 숨 막히는 곳에서 나온 느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고 눈빛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꽤 시간이 지난 올해 8월과 10월, 두 번의 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에 방청도 한 번 안 가본 내가 재판을 받는 입장으로 그곳에 앉아있으니 꽤 떨렸다. 두 번째 재판 때는 최후진술도 준비해갔다.

저는 저희의 퍼포먼스가 거대한 탱크와 무기 앞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이 행사장에서 가려진 이 행사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외치는 행동이었다 생각합니다. 살면서 법이라는 원칙,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이번 저희의 퍼포먼스가 누군가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살면서 주변 어른들에게 문제를 느끼면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늘 배워왔습니다. 요즘은 학교를 졸업하고 일상을 살면서,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고, 세상에는 저의 목소리를 내기에 안전한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기박람회를 상징하는 탱크 위에서 짧은 시간의 상징적 구호를 외치는 것조차 처벌된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는 제가 배운 가르침은 계속해서, 더욱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목소리를 함께 내고,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판사님께서 저의 소중한 배움이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시는 그런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최후진술문 중)

사실 재판이 DX KOREA 저항행동 당시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라 최후진술을 쓸 때 생각도 많이 되짚어보고 그 때 어떤 마음으로 탱크 위에 올라갔는지, 지금의 마음은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돌아봤을 때, 지금과 그 때의 마음이 달라진 점도 있다. 작년에는 정말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답답함에 투쟁하는 마음이나 약간은 비장한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상에서 군대나 무기에 대해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며 새로운 고민들이 생겼다. 예를 들어 직장에 재판 날 출근하지 못한다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거나, PX에서 할인받아 과자를 한 박스 사왔다는 동료나, 해병대를 나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동료 등을 보며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식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고민들과 더불어 마음의 열기나 모양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내 안의 옳고 그름, 정의 같은 것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최후진술도 떨렸지만 잘 하고 올 수 있었고 경찰조사, 재판을 해온 긴 시간들을 큰 흔들림 없이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재판을 이어나가는 것이 나에게 피로감을 주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학교를 졸업해 사회운동과 약간 거리가 있는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이런 고민들을 끊어내지 않고 이어나가게 해주는 장치였던 것 같아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늘 마음을 궁금해 해주고 살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또 한 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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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무죄 판결이 나왔다. 아쉽게 당일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선고 재판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무죄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사법부에서 우리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놀랐고, 또 진심을 눌러 담은 최후진술이 조금은 가 닿은 걸까 하는 마음에 기뻤다. 점점 한국에 이런 판결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폭력 행동과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해서 며칠 전 검사가 항소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것 또한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계속 해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2심도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