졔졔(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2023년 11월 8일. DX KOREA 2022에서 직접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약식 기소 후 1,7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평화활동가(쭈야, 뭉치, 재윤, 쥬, 용석, 펭귄, 혜성, 오리)들이 정식 재판을 청구해 진행되던 1심 재판의 선고가 나왔다는 소식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달받은 날입니다.

무죄.

무죄 판결을 하나도 기대하지 않은 듯해 급하게 손으로 써 내려 간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는 활동가들의 사진을 회사 사무실에 앉아 보며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기뻤지만, 예기치 않았던 기쁨이라 놀란 마음도 더러 있었습니다. 직접 행동을 지지하며 후원금을 보냈지만, 속으로는 못내 이것이 벌금이 되겠구나 생각해 버린 체념이 제 안에 있었나 봅니다. 자연법이 기준이라면 죽이는 것이 언제나 유죄여야 할 텐데, 살리려는 행위가 언제나 무죄여야 할 텐데, 실정법이 늘 정의의 속도에 발맞추어 걷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질 것이 뻔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패배의 마음이 내 속에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없는세상 <무죄 축하 파티 – 탱크 위의 사람들>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건 무조건 가야겠다 생각하며 참여를 신청했습니다. 활동가는 아니지만,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빠지기 쉬운 함정인 무기력의 내면화를 피해, 평화가 이기는 경험을 떠들썩하게 축하하고 나누는 자리에 꼭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활동가가 아니라 오히려 일개 직장인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만나는 얼굴들에서 평화에 대해 얘기했을 때 느끼는 균열을, 어느덧 얼굴을 익힌 평화 활동가들과, 왁자하게 평화를 얘기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으로 채우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2월 15일. 기대를 안고 참여연대 아름드리홀로 향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고, 환대의 인사와 반가운 얼굴, 풍성한 비건 간식과 전쟁없는세상 20주년을 축하하는 (하지만 실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20주년 때도 쓰여 두 번째 활용 중이었던, 숫자 0이 피스마크인)  풍선 장식, 시대의 명저 <평화는 처음이라>와 <병역거부의 질문들>로 가득 찬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죄파티

7월, 8월에 태어난 사람들의 테이블. 처음 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섞여 앉을 수 있도록 생일이 속한 월을 기준으로 테이블을 나눠 앉도록 안내 받고, 처음 보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며 조금은 어색했지만, 이곳에서 만났기 때문에 마음의 벽은 한 꺼풀 내려놓게 되는 감각이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긴장감마저도 행사가 시작되며 용석 님의 자연스러운 진행 때문에 훌훌 털어내 졌지만요. 용석 님의 귀여운 개회와 아이스 브레이킹 진행이 시작되자, 같이 둘러 앉은 테이블에서 만난 사람들과 우리 모두의 공통점, 우리 중 가장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그 특징, 전쟁없는세상을 만난 때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각자 삶의 점선면을 슬쩍 들춰볼 수 있었던 것이 즐거웠습니다. 병역 거부로 수감 생활을 했던 분, 금번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쭈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활동가, 이들과 친구가 된 장애운동의 활동가, 평화에 관심이 많은 학생과 직장인, 함께 참석한 모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눴던 대화가 즐거워, 생각해보면 후원만 해왔지 전쟁없는세상의 이름으로 진행된 공식 행사에는 첫 참석 중이란 사실을 생경하게 느끼게 되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말랑말랑해진 분위기 속에서 평화 행동과 모금, 재판 투쟁, 투쟁 과정에 있던 아덱스저항행동, 무죄 선고까지의 과정을 담은 슬라이드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영상 속에서 제 얼굴이 보였을 때는 혼자서 몰래 반가워하기도 했고요. 다시 한번 우리가 지금 축하하고 있는 자리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값진 자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던 영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연하고 심각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진들에 함께 하는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서린 걸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활동가

1부 토크쇼 패널. 액션에 참여했던 쥬, 혜성, 재윤

 

토크 패널

무죄 선고를 함께 이끌어낸 지지자들. 왼쪽부터 스카 목사님, 이소현 감독님, 소라님, 토크쇼 사회자 손희정님

 

이어 1,2부로 패널이 나뉘어 진행된 토크콘서트가 문화평론가 손희정 선생님의 모더레이션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만나 본 이들은 DX 8(인의 피고인) 중 쥬, 오리, 재윤, 혜성, 넷이었는데, 직접행동 기금모금 페이지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재윤과 혜성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DX 당시 학생이었던 재윤과 혜성의 얘기를 들으며, 같이 어떤 운동을 만들어 나가는 동료가 청소년일 때에 나이주의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동료를 돌보고 지키면서, 그러면서도 지우지 않으면서 함께 할 수 있을까를 다 같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어 그 뒤의 이야기들을 더 알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활동가들의 토크 콘서트 다음 진행된 토크 콘서트의 패널은 전쟁없는세상의 지지자 세 분이었는데, 전쟁없는세상의 사무실이 있는 당인리 교회의 힙한 담임 목사 스카, <장기자랑>의 감독인 이소현 감독님,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활동가(가 될 예정인) 소라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모로 공감되는 지점이 많아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중간중간 활동가와 지지자 패널의 답변 사이사이에 손희정 선생님이 귀신같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환기하는 찰떡같은 후원 독려 멘트도 금번 파티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였고요.

파티라면 무릇 즐거운 이야기와 함께 음악을 빼놓을 수 없겠죠. 뭘 좀 아는 흥 많은 전쟁없는세상의 파티엔 음악과 춤과 웃음도 흘렀습니다. 쭈야와 쭈야의 동료들이 함께하는 ‘바디퍼커션그룹 녹녹’이 몸으로 만드는 숲의 소리, 펭귄이 만들어 아덱스저항행동때도 불렀던 노래, 펭귄과 쭈야가 탱크 위에서 연주했던 아일랜드의 음악이 아름드리홀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오리와 스카의 춤도, 참여한 사람들의 얼굴에 띄워졌던 웃음도 모두 귀해 눈에 정신없이 담다 생각했습니다.

 

몸을 악기 삼아 연주하는 바디퍼커션 그룹 녹녹의 공연

몸을 악기 삼아 연주하는 바디퍼커션 그룹 녹녹의 공연

 

탱크 위에서 연주했던 곳을 다시 한 번 연주하는 쭈야와 펭귄

탱크 위에서 연주했던 곳을 다시 한 번 연주하는 쭈야와 펭귄

 

지금 이곳에 평화가 있다. 평화가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곳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검찰은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무죄 축하 파티에서 채운 힘으로, 일상의 언어와 공간 속에서도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웃으면서 계속 싸워야겠다, 싸우는 이들의 뒤에서 지지를 보내야겠다, 있는 자리에서 평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뿐 아니라 파티에 참여했던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짓겠지요. 2심도 3심도, 내년에도 계속될 전쟁의 포화와 무기 거래의 장에서도, 꾸준히 평화를 짓고 우리가 지은 평화가 연결되어 더 큰 평화의 장을 펼쳐낼 거라고 믿습니다. 어느 날 다시 문득 내 안에서 내면화된 패배감이 발견되는 날도 있겠지만, 그때쯤이면 또 우리가 두 번째 무죄 파티에서 만나 축하하며 춤추고 기뻐하며 평화가 이기는 날을 기뻐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다음 무죄 파티에서 다시 한 번 평화의 승리를 환희로 함께 합시다.

 

20231215_탱크위의사람들_093_DSC_0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