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나는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활동하면서 4월 9일 광주비엔날레에서 열렸던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멸종전쟁(CICC)’에서 ‘전쟁없는세상’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수라 상영회, 러시아와 태국의 병역거부자/난민들과 연대하는 집회에서 청년기후긴급행동이 공동 주최를 하게 되면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그리고 2023년 무기박람회 아덱스 저항행동에 개인적으로 참여를 했다. 무기박람회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나가는 길 옆쪽에서 피켓팅을 했는데, 단 10분 동안 온갖 험한 말을 들으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 전쟁과 무기산업이 장악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평화의 말 걸기는 냉소적 태도로 돌아오는 듯하다.

 

우리는 정치적 주체다. 우리는 특정 소수에 의한 모든 폭력과 지배, 수탈, 착취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정치적 결의와 소망을 밝히는 바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저항하고, 해체하고자 하는 낡은 질서를 우리는 ‘구 체제’라 이름 붙이기로 한다. 구 체제는 상생, 순환, 공명이 아닌 분열, 소진, 고립을 낳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질서로서, 곧 가부장주의, 군사주의, 개발주의, 권위주의, 능력주의, 성장주의, 식민주의, 이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자본주의, 차별주의 등을 포함한다.

이 땅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70여 년 전 일어난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외세에 의한 분단은 우리의 얼과 땅을 갈라놓았으며, 자본은 생명 위에 군림하고, 한계 없는 개발과 채굴, 생산과 폐기는 규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되고 있다. 구 체제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스스로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이 땅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이 들, 억압 당한 이들, 죽임 당한 이들, 죽이라 내몰린 이들, 멸종에 이른 이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 불의의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 하고자 한다. 그는 곧 우리다.

그대 지금 아프다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해방과 지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지닌 힘을 모아 각자가 처한 현실을 해석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실로 혁명적인 실천이다. 우리 함께 숨 탄것들의 나라를 꿈꾸자. 해방의 땅을 노래하자.

– 청년기후긴급행동 생태공화국 통문중에서 –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폭력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존재와 스스로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법을 배워왔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 이 세상과 불화하는 감각이 점점 커졌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무엇일지 질문해보았을 때,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강한 자로 살아남아서 다른 이들의 존엄을 짓밟고 싶지 않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있고, 서로를 돌볼 수 있고, 지구 생태계를 돌볼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면 공격받고 무시 받는 세상이 아니라, 연약함을 드러내도 포용해줄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싶다. 아픔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 힘을 믿기 때문에, 기꺼이 연약함의 방식으로 손을 내밀어본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관계 맺지 않아도 된다. 서로의 존재 자체를 바라봐주고 함께 이 땅 위에서 숨을 쉬자.

얼마 전 DX KOREA 저항행동 때 탱크 위에 올라가 재판을 받았던 재윤, 혜성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올해 9월 삼척에서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반대 직접행동을 하며 처음으로 경찰서에 갔었고, 업무방해죄로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대부분 입시를 준비하는 같은 또래 중에서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한 우리였다. DX KOREA 저항행동 재판에서 최후진술을 하며 혜성은 이런 말을 했다.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배웠지만, 지금 세상에는 저의 목소리를 내기에 안전한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친구들이 저항행동에 대한 무죄판결 소감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폭력에 저항하는 그들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것을, 다만 이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재윤 혜성

탱크에 올라가는 평화행동으로 재판을 받은 혜성(좌), 재윤(우)

 

무죄판결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의 ‘전쟁없는세상’을 응원한다.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기후위기로 집을 잃고, 가족과 이별하고, 목숨을 거둔 이들을 애도한다.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