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지원 님, 여성 평화 활동가 에세이 연재 요청을 드리고 싶어요.”
연재 섭외 연락에 즉각 시원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일이 바빠서, 글 쓰는 게 싫어서도 아니고 나를 평화 활동가로 명명해도 될지 아직 자신이 없어서였다. 평화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 같은 세상에 무력감을 느끼는 동시에 활동가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게 어렵고 매일 같이 무너지는 마음을 움켜쥐며 퇴근하는 나인데. ‘평화’ 활동가보다 멀고 평화 ‘활동가’에 가까운 그런 어정쩡한 위치에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한 발자국
애초에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큰 포부는 없었다. 활동가를 좋아해서 시작한 활동은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 더 평등해지기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낯가림이 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의 이야기에서 힘을 받는 습성은 활동가를 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성차별과 연결된 군사주의에 대한 구체적 관심은 평화운동으로 날 이끌었다. 주변에 평화운동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통일에 관련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분단 체제나 군사주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지만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몇 없었다. 이런저런 말들에 의미를 두지 않을 정도로 평화운동은 해보고 싶은 활동이었다.
평화를 만난 건 페미니즘 덕분이다. 2016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새벽 내내 트위터를 붙잡고 페미니즘 관련 글을 읽을 당시 ‘생물학적 여성’의 범주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고, 리트윗으로 ‘쓰까(교차성 페미니스트)’라는 조리돌림성 메시지를 받게 되면서 제대로 페미니즘을 배우고 싶어졌다.
‘페미니스트’를 자청하는 동료들과 토론하고 어울렸지만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할 수는 없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손사랫짓했다. 집회에서 큰 목소리로 여성과 비인간적 존재 등을 비롯한 몫이 없는 시민의 권리, 평등을 말하던 여성 활동가들을 그저 올려다보기만 했었다. 그때마다 힘이 된 건 동시대 페미니스트 동료들의 아낌없는 믿음과 환대, 다정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또 비슷한 교차적 존재라는 인식은 내 세상을 확장해 주었고, 점차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게 했다.
평화, 내 안에서 부서지고 열리는
페미니즘을 통해 어떤 해방감을 맛보았다면 평화는 익숙한 세계가 부서지며 열리는 감각이랄까.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 관련 자극적인 언사가 익숙한 만큼 왜 평화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한국전쟁과 분단 체제가 젠더라는 렌즈로 구성되고 작동된다는 논의가 흥미로웠다. 사회적으로 성차별주의를 기능하게 하는 근원인 폭력은 전쟁과 상명하복·위계질서를 강요하는 군대 그리고 군사주의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일상에서 군사주의적 모멘트를 찾고 저항하는 행동은 페미니스트적 실천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맞다. 에세이랍시고 길게 떠들었지만, 이 글은 어느 (새내기) 평화 활동가의 기록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 집단학살로 전 세계가 ‘전쟁의 기로’에 선 가운데,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열심히 연대하고 뛰는 평화 활동가의 일상 기록이다.
고요한 사무실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거리에서 종종 이상함을 감지한다.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상태이지만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 전쟁을 끝내라는 목소리를 내기보다 피난 식량을 사재기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여겨지는 것. 팔레스타인의 학살 상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려를 ‘(상관도 없는 일에 신경 쓰는) 속 편한 소리’라고 치부할 때 꼭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완전한 공격과 방어는 존재할 수 없다는 평화주의적 논리가 ‘이상주의’라 매도될 때 비로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인지하게 된다.
만약 집에 강도가 들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와중에도 협상할 거냐, 대항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당당히 ‘그렇다’ 답하는 의지. 모든 폭력에 반대하고 대화와 협력 같은 평화적 해법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결의. 여성 활동가를 ‘여전사’라고 칭하거나, 이견이 있을 시 언성을 높여 위화감을 주는 활동가에게 문제 제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매일
“왜 평화운동 하세요?”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혹시 페미니스트세요? 라는 물음에 얼버무렸던 그때처럼 당당히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 어렵다. 연대활동 휴지기를 갖겠다는 활동가가 내심 부러울 때, 아침에 눈을 떠 잠들 때까지 힘들다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고, (활동하고 싶지만)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 순간에 내 에너지가 소진되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왜 평화운동을 하고 있나? 아직 똑부러지게 답하지 못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사는 요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2021)』을 떠올린다. 페미니스트 동료가 절실할 때 보게 된 이 영화에는 90년대 말에 활동했던 영 페미니스트 5인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있다.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각자의 자리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내고, 경험하고, 연대하며, 투쟁하는 이들의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살면서 만난 여러 동료를 떠올려 본다. 그들이 나눠주었던 마음과 눈빛을 기억한다. 활동을 갓 시작한 나에게 든든한 동료들을 연결해 주고, 지치면 쉬기도 하고 서로를 돌보며 천천히 오래 활동하자는 말을 건네던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응원을 보내주는 동료들이 곁에 함께 있다. 평화운동 내 다양한 얼굴이 있었으면 한다는 모 활동가의 말은 나의 쓸모를 재단하며 자책하는 대신 내 몫을 열심히 해내고 싶게 만든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겠지만, 거대한 폭력과 전쟁에 저항하고자 하는 평화운동의 변화는 더욱 더디다고 들었다. 숨을 가다듬고 좀 더 긴 호흡으로 매일매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나를 살뜰히 돌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아가 자기돌봄이 내가 다른 누군가를 살피고 서로 돌보는 일로 연결될 거라 믿는다.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