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녹색당원)

 

어김없이 촌스러운 현수막이 걸려있다. 올해도 외치는구나. 동성애가 에이즈의 주범이란다.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라고 부르는 6월이 다가오면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공들인 헤메코(헤어, 메이크업, 코디)를 뽐낼 준비를 하는 동시에 서울 곳곳에 걸린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거짓 선동 현수막을 웃어넘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른 색의 현수막”, 연합뉴스, 2023. 7. 1

“다른 색의 현수막”, 연합뉴스, 2023. 7. 1

 

에이즈 확산의 주범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를 향한 혐오다. HIV(에이치아이브이라고 읽는 에이즈AIDS의 원인 바이러스)감염인에게 낙인을 찍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것을 유도하는 정부의 방관이 에이즈와 에이즈 혐오의 돌림노래를 만든다.

연대의 다양한 실천 중 하나는 바로 알기라고 확신한다. 알아보려 하지 않는 HIV/AIDS는 ‘남성 동성애자의 문제’라는 편협한 고정관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30여년의 시간 동안 한국 정부가 주도하여 고정해낸 통념이다.

 

서보경 인류학자가 쓴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반비, 2023)의 속표지

서보경 인류학자가 쓴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반비, 2023)의 속표지

 

책 『휘말린 날들』은 HIV/AIDS 서지목록에 여태 없던, 한국을 배경으로 하며 한국어로 쓰인 HIV/AIDS 아카이브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는 알려고 하지 않으면 더더욱 알 수 없는 PL(People living with HIV/AIDS,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 HIV 감염인을 낙인 없이 가치중립적으로 부르는 용어) 변방의 목소리를 모았다는 것에 있다.

동성애자 혐오에 반기를 들기 위해 들여다본 HIV/AIDS 의제에는 성소수자만 있지 않았다. HIV감염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막론하고 이루어진다. 세이프 섹스를 요구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감염에 쉽게 노출된다. 감염과 감염 이후의 삶은 자주 빈곤과 얽히곤 한다. 전파경로 추적 등을 우려하여 제때 검사를 받지 못하고 때로는 검사를 피하며 치료로부터 멀어지는 성노동자, 한국 체류자격 심사과정에서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바로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었던 이주민 여성 PL을 빼놓고는 한국의 HIV/AIDS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한다.

 

지난 4월 일본의 도쿄레인보우프라이드에서 만난 ‘도쿄에이즈위크’ 활동가. 피켓에는 단체의 메인슬로건인 ‘업데이트 HIV’가 쓰여있다.

지난 4월 일본의 도쿄레인보우프라이드에서 만난 ‘도쿄에이즈위크’ 활동가. 피켓에는 단체의 메인슬로건인 ‘업데이트 HIV’가 쓰여있다.

 

외국에서 생활을 하는 동안 성병 감염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다. 들어놓은 보험도 없이 빠듯한 생활비로 지내고 있던 나에게 200불짜리 피검사는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의사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정확한 검사를 생략하고 항바이러스제만 처방받았다.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미등록이주민, 난민, 출생미등록자 등 국민건강보험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거나 양성반응 기록이 남았을 때에 경제활동이 강제로 중단되는 성노동자가 간단한 검진에서마저 어떻게 자발적으로 빗겨날 수 있는지를, 소수자가 의료시스템에서 어떻게 배제되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정확한 검사과 적절한 치료였다. 그렇지만 검사를 받을 수 없는 (경제적)환경에서 증상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며 한 것이라고는 나에게 성병을 옮긴 파트너가 누구인지 의심하고 분개하기, 앞으로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절망하기, “왜 조심하지 않았냐” 등 질타의 뉘앙스가 섞인 시선을 받으며 살아갈 것을 상상하기뿐이었다.

성병에 관해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집에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는 내가 성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실토’하며(수치스러웠다) 식기류를 따로 쓰자고 자진해서 제안했다. 대부분의 성병은 환부가 상대방의 점막에 직접 닿지 않는 이상 침이나 땀과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지는 않는다. 그때는 몰랐다.

“나 오늘 학교에서 감기 옮아온 것 같아, 조심해”라는 말은 그리도 쉽고 일상적인데 어째서 성매개감염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리도 고통스러운 걸까? 그리고 왜 유독 바이러스를 옮긴 상대를 특정하여 알아내고 싶어지는 걸까? 감염경로를 탓하고 비난하는 것은 치료에 있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말이다.

이것이 HIV예방사업의 경향성과 닮아있다는 것을 알게된 건 나중의 일이다. 국가주도의 HIV예방사업은 전파경로 차단, 감염인 파악과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감염인을 관리적 시선으로 통제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거나(HIV감염인에게 제공되는 유일한 복지정책이 있다면 기초생활수급자 특례이다) 시설에 몰아넣는 등 사회로부터 고립을 시키는 것은 HIV에 관한 낙인을 강화할 뿐이다. 감염인을 사회적으로 분리하지 말고 공동체 안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HIV인권활동의 핵심 주장이다.

 

(사진 4) 2021년 질병관리청의 U=U캠페인 포스터

2021년 질병관리청의 U=U캠페인 포스터

 

HIV치료에서 꾸준한 약물복용을 통해 ‘미검출undetected’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은 바이러스 증식이 충분히 억제되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병증이 생겨날 수 없고, 타인 감염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의하면 HIV에 감염된 적이 있는 사람은 치료여부와 관계없이 콘돔 없는 섹스를 했을 때 형사처벌을 받는다. 전세계 인권운동진영은 물론 한국의 질병관리청에서도 진행하는 ‘U=U’ 캠페인(바이러스 미검출=감염 가능성 없음 Undetectable=Untransmittable)을 무시하는 악법이다. “실질적인 위험을 야기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법의 판단에서 이미 중요하지 않다.”(p.302) 어느 판결문을 인용하자면 “전파매개의 가능성이라는 추상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것”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몸을 멋대로 통제하며 선택적으로 처벌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약칭 에이즈 예방법이다. 소수자에 대한 억측을 부추기며 이성애중심적 ‘정상’의 몸을 강요하고 단결시키는 것이 군사주의가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니던가.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임과 관계없이 HIV감염인의 사생활을 처벌하는 에이즈 예방법, 군대에서 항문성교를 할 시에 처벌을 하는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가 그렇다. 개인의 성생활이라는 아주 내밀한 영역에서 HIV감염인과 성소수자를 골라내어 처벌하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성소수자의 섹슈얼리티를 탄압하는 것이 합법이다. 지금은 그렇다. 매년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마다 길거리에 걸리는 혐오세력의 현수막은 사실상 에이즈 예방법과 군형법상 추행죄가 허락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HIV에 관해 알려고 할수록 절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와 금지가 아니라 성적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책임있게 섹스할 수 있는지”(p.73)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HIV예방사업의 핵심이어야 한다. 공포와 금지는 혐오만을 낳기 때문이다.

책 『휘말린 날들』은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HIV라는 바이러스를 추적하다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질병을 낙인화하고 범죄화하는지, 소수자는 왜 건강할 권리를 빼앗기는지를 알게 된다. 이를 깨닫게 되는 모든 과정이 대단히 ‘휘말리는’ 경험이었다.

당신도 이 세계에 기꺼이 휘말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감염인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병원에서 차별받지 않고 감염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있어야 그것이 평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