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서(함부르크대학교 지속가능성미래센터 연구원)
현재 한국은 ‘9대 인권핵심조약’ 중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제외하고 8개의 국제인권조약을 비준한 상태이다. 인권의 역외 의무에 대한 논의는 현재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국가들 간의 협력과 인권 보호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국민국가체제 중심으로 국제질서가 짜인 상황 속에서 국경을 초월한 인권침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가 공유된 인권 의무를 인식하고, 이에 적합한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이 글은 인권 역외의무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 속에서 국제인권조약에 기초하여 도출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인권 의무를 해외 무기거래 사례에 대입하여 살펴본다.
인권의 역외의무
현대사회에서 1차적인 인권 보장의무는 주권국가가 가진다. 각종 국제인권조약이나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채택하는 결의와 보고서에는 항상 각 국가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역할이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다. 주권국가들의 책임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그동안 국가의 인권 책무는 국가가 ‘관할하는’ 영토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즉, 국가는 국적을 불문하고 관할권 안에 있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의 논리는 인권 침해 사각지대를 초래하는 국민중심적인 법과 제도를 비판하는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영토중심적 접근은 국경을 초월하여 고도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21세기 사회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인권의 역외 의무는 국가가 자국 영토 이외의 지역이나 인구에 대해서도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가 자국 영토 이외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역외 의무는 크게 소극적 인권의무와 적극적 인권의무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는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이며, 후자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의무를 의미한다. 인권 역외의무 달성을 위해서는 국가 간의 협력과 지원을 통해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국제적 협력 및 기술지원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예를 들어 사회권규약위원회는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이 사회권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제공하는 선진국들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역외 의무는 국가들 간의 협력을 강조하며, 인권 보호와 실현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오늘날 주요 인권기구들은 인권 역외의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예를 들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유럽인권재판소와 미주인권재판소의 관점 차이는 다음과 같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역외 인권의무에 대한 해석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으며, 새로운 해석적 모델을 통해 초국경적 인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개인통보사건 결정들을 통해 자유권규약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정교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의무의 존재 요건과 위반 요건을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미주인권재판소는 초국경적 인권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을 채택하여 개별 사안에 대해 인권침해 피해의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역외 인권의무를 파악하고 있다. 또한, 사회권규약위원회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협력의무를 강조하여 특정 개인과의 관할 관계에 구속되지 않는 방식의 인권의무 구성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 차이는 각 기구가 역외 인권의무에 대한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외 인권의무의 중요성을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유럽인권재판소
해외 무기거래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역외 인권의무
여러 사례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오늘날 시의성 있는 주제들을 살펴보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고문방지협약 등에 근거하여 인간의 신체적 안전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역외 인권의무로써 무기수출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 및 금지가 필요하다. 무기산업이 전 세계 보편적으로 국가의 자본주의적 경제발전과 불가분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과 미국의 ‘대외원조’ 사이 강한 연관성이 있었으며, 미국은 전쟁을 산업으로 삼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y complex)’가 막강한 로비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핵심 기반 중 하나인 무기산업은 ‘국방산업’ 또는 “미래먹거리사업”으로, 심지어 정의당 같은 소위 진보정당 안에서조차, 지지를 받고 있다.
무기산업은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민주적인 감시와 공적 책임을 면제받지만, 인권에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으로 규제와 축소가 필요하다. 무기는 비인도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생산과 사용 과정에서 인류의 안전과 복지를 향상시키는 다른 수단을 희생시킨다. 수많은 분쟁이 만성적인 빈곤과 차별대우, 불공정한 분배구조 등 구조적인 불평등과 그로 인한 상호적대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볼 때 갈등해결은 총과 포탄이 아니라 더 많은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개혁조치들로 가능하다. 무기는 아무리 ‘방어’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상호 적대를 키우고, 결국 분쟁의 악순환을 이어갈 뿐이다. 그리고 무기 생산 및 사용으로 인해 인프라가 파괴되어 사회적 권리 실현을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무기산업은 대규모 인권침해를 야기하면서, 자국에서는 사용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지역에서의 사용을 바라는 논리에 기반하여 비윤리적인 이윤 추구가 이뤄지는 산업이다.
예를 들어 최근 고문 및 그 밖의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에 악용되고 있는 여러 무기들의 목록이 담겨있는데, 그 무기들 중에는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여러 무기박람회에서 선보여지는 물대포, 테이저건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한국은 이스라엘에 꾸준히 총기, 탄약, 부품 등 다양한 무기를 수출하고 있는데, 이 무기들이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에 준하는 행위(genocidal acts)’에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 등 다른 나라들조차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인권침해를 목도하며 무기수출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정부의 뒤에서 수지타산 계산서를 작성하고 있는 기업들도 더 이상 침묵과 방조가 아니라 역외 인권의무를 다하기 위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한국산 무기가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에 준하는 행위’에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결론: 더 나은 인권공동체를 위하여
인권조약상 관할은 보편성을 본질로 하는 인권에 대한 국가의 의무 범위를 설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규범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변화하는 지구적 환경에서 새로운 인권침해 양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규범적으로 타당하면서도 맥락에 따른 유연하고 확장적인 적용이 가능한 원칙 수립과 구체화 작업이 필요하다. 국가의 역외 인권의무는 국가들 간에 공유될 수 있으며, 국가들은 영토 밖에 위치한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조건과 상황에 맞게 부담해야 한다. 국제적 협력의무는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며, 국가들은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적, 국제적 질서를 위해 공동의 그리고 개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 이 글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했지만, 조약에 포함되지 않은 권리들에 대해 고민하고, 국경을 넘어 인간의 존엄한 삶과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구조적 전환 방안을 모색하는 것 또한 인권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예를 들어,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권리(환경권)’은 1972년 스톡홀름 인간환경회의를 기점으로 50년 가까이 발전해왔지만,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규정한 국제조약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최근 유럽인권재판소에서 기후보호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인권의무를 확인하는 “Swiss grannies case”와 같은 사례를 보면, 국제조약이 부재하더라도 인권의 포괄적인 보호 및 증진 관점에서 국가의 의무를 광범위하게 해석해야 하는 시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해당 사건의 경우 스위스 관할권 내 시민들의 권리만을 다루었지만, 기후보호 의무달성은 국경을 초월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더 나은 인권공동체를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권 담론 및 실천 지형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한국의 역외 인권책무를 다 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인권책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입법, 행정적, 외교적 책무를 강화해야 하며, 기업의 민형사상 책임을 강화하고 인권중심적인 경영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고 압력을 가해야 한다. 무기수출의 경우 한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신규 무기수출 금지 및 이전 무기수출 계약에 대해 이스라엘 측의 국제법 준수 의무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스라엘에 판매된 무기라고 하더라도 무기생산자의 책임 및 역외 인권책무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한국산 무기 사용에 대한 윤리적 평가를 실시하고, 한국의 이름으로 인권침해와 학살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다 해야 한다. 무기수출로 직접 이윤을 득한 기업들은 향후 불발탄 제거 등 재건복구에 대한 기여와 무기산업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검토해야 한다. 역외 인권책무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와 기업에 대항하여 사법소송을 비롯하여 시위나 무기회사 점거 등 직접행동을 벌이는 시민들은 인권옹호자(human rights defenders)로서 정당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2024년 4월 13일,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여성 노인들이 낸 기후 소송에서 스위스 정부의 지구 온난화 대응 실패가 그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 이 글은 (사)한국인권학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