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연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기억에 오래 남을 여름

‘찜통 속 옥수수가 된 것 같은 더운 날씨. 밤에도 위이이잉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정찰기. 갑자기 쏟아지는 비. 마을 바로 옆에 있는 탄약고. 사고 방지를 위한 탄약고의 냉방시설. 평택 험프리스 미군 기지에 떠있는 헬기. 기지 내 아파트와 식당. 이 광경을 보며 속상해하고, 분노하고 늦은 밤까지 기후위기와 군사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각자가 편한 방식으로 눕거나 엎드려서. 모두의 평화와 안전을 바라는 대담하고 다정한 사람들. 그리고 비인간동물의 죽음이 없는 맛있는 밥과 간식. 그리고 토마토.’

올여름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기후위기X군사주의’ 기후액션캠프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액션캠프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평택 험프리스 미군 기지도 보고, 자신과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대추리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도 듣고, 기후위기와 군사주의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두 개가 만나 얽혀버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지, 효과적인 캠페인, 액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함께 쌓아 나아갔다.

군사주의 분석 및 개입지점 활동은 군사주의의 장소를 나눠 진행해 봤다. 군사주의의 톱니바퀴는 대표적으로 파괴, 생산, 판매, 소비, 결정, 일상의 장소가 있다고 소개해 주셨고, 재욱 님의 제안으로 기억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군사주의 분석 및 개입지점 활동은 군사주의의 장소를 나눠 진행해 봤다. 군사주의의 톱니바퀴는 대표적으로 파괴, 생산, 판매, 소비, 결정, 일상의 장소가 있다고 소개해 주셨고, 재욱 님의 제안으로 기억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끝이 없는 악순환, 군사주의와 기후위기

기후위기로 자원(물, 화석연료, 에너지, 식량 등)의 확보가 어려워지면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발생한다. 이때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화석연료 기업들은 전쟁에 투자하거나 이를 이용해 돈을 번다.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무기산업에 돈을 투자하고, 화석연료 개발과 투자를 하고 끝이 없는 악순환이다.

전쟁과 기후위기, 그로 인한 재난 등이 발생하면 모든 시간에 희망이 사라지고 불안은 일상이 된다.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 시설과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온 공공성과 사회안전망이 하루아침에 또는 서서히 무너지기도 한다. 기존 사회안전망의 구멍은 더욱 커진다.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해 온 사람들과 비인간 존재들에게 재난과 전쟁은 더욱 위험하게 다가온다. 재난과 전쟁이 멈췄다고 해서, 일상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고, 오래 걸린다. 과거의 경험이 반복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일상의 회복은 오롯이 개인이 몫이 되는 점도 닮았다. 재난과 전쟁을 경험한 전과 후는 같을 수 없다. 기후위기와 군사주의의 모습은 너무 비슷했다.

 

잘 보이도록 전시하는 것과 숨기는 것

셋째 날, 군사주의 분석 및 개입 지점 찾기 활동을 했다. 군사주의가 강화되는 다양한 장소들을 보고, 어떤 전략을 쓰고 있는지 분석했다. 군사주의의 톱니바퀴를 보며 기후위기를 심화하고 유지하는 것들인 ‘기후위기의 톱니바퀴’를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차별과 착취를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후위기와 군사주의는 보여줘도 괜찮은 것, 즉 이득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택적으로 보여주고 숨긴다. 군사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군사 시설을 짓고, 무기 생산을 위해 자원, 화석연료를 채굴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곳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 모른다. 착취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일부러 감추기 때문이다. 군사력을 키워야 안보를 지킬 수 있고, 결국엔 우리도 ‘안전’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함께 덧붙인다.

첫째날, 함께 활동하는 보림 님과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는 인철 님을 초대해 한국 기후운동의 목표와 활동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첫째날, 함께 활동하는 보림 님과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는 인철 님을 초대해 한국 기후운동의 목표와 활동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화석연료 산업도 마찬가지다. 화석연료 발전소는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지역(비수도권)에 건설된다. 화석연료를 통해 생산된 에너지는 수도권으로 보내지거나 일부 기업의 이익으로만 이어진다. 화석연료 발전소와 시설을 지으면 지역 경제가 좋아지고, 국가의 산업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포장하지만, 지역경제뿐 아니라 지역도 침체되고 발전소에 종속되어, 발전소가 멈추면, 지역은 살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여러 지역에서 이러한 일은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알지 못한다.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이득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무기산업과 기업이 탄소를 덜 배출하는 에너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친환경’무기를 생산한다며 그린워싱 하는 것이 그 예다. 저탄소 탱크, 태양광에너지로 돌아가는 탱크라니! 온실가스를 수치적으로 줄이거나 에너지원의 전환만 하는 것은 기존의 불평등, 폭력을 유지하고 키우는 것뿐이다.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해병대캠프가 열리는 곳에서 기후평화집회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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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기대 했던 시간은 캠페인 액션 설계 시간이었다. 군사주의의 장소들(군사주의 톱니바퀴)에서 어떤 전략을 사용해 강화하는지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캠페인의 타겟은 누구인지, 만들고 싶은 상은 무엇인지 등등 캠페인 과정에 대해 배웠다. (캠페인의 수립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읽어 보시길 추천해요)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룬 캠페인과 액션의 사례도 보고, 서로가 경험한 좋았던, 효과가 없었던 캠페인을 공유했다.

캠페인의 사례를 소개하며 캠페인을 설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원칙들을 모으기도 했다. 사람들의 말들을 들으며 기억할 것들을 공책에 열심히 기록했다. 캠페인의 메시지와 타겟, 타겟 오디언스가 동떨어지지 않게 연결하고, 참여자가 동원되지 않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또한, 정보와 장소 접근성을 낮추고 확보해야 한다는 점들은 항상 기억하며 행사나 캠페인을 만들어가야겠다고 한 번 더 다짐했다.

조를 나눠, 각각의 장소에서 실행하게 될 캠페인, 액션에 대해서도 계획했다. 의견을 덧붙이는 시간도 가졌는데, 각자의 운동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서로의 목표와 다짐을 썼다. 서로를 응원하는 짧은 댓글도 함께 남겼다. 자주만나요라고 말했지만, 헤어지기 아쉬워서 주저리주저리 긴 편지를 썼다. 힘이 필요할 때 써준 댓글을 종종 읽고 있다.

마지막 날, 서로의 목표와 다짐을 썼다. 서로를 응원하는 짧은 댓글도 함께 남겼다. 자주만나요라고 말했지만, 헤어지기 아쉬워서 주저리주저리 긴 편지를 썼다. 힘이 필요할 때 써준 댓글을 종종 읽고 있다.

 

토마토로 바위 치기

폭력과 전쟁을 반대하며 군수산업을 파헤치며 평화를 이야기하고, 위기 속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존재 없이 모두가 안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많이 닮아 있었다. 서로의 가까이서 우리는 비슷한 곳을 향해 끊임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균열을 내기 위해 고민했을 것이다. 마지막 날, 캠프 참여 소감을 다섯 글자로 이야기하고 캠프를 마무리했다. 더 많은 곳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나는 ‘자주 만나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언젠가 활동가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고,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유지해 온 정부와 기업, 착취와 불평등의 구조는 너무 단단했다. 기후위기의 위험 속에서도 누구도 타자가 되지 않고, 재난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이들 없이, 누구든 회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안전망이 보장된 사회를 바란다. 하지만, 정치는 공공의 돈으로 국방산업을 확대하고 군사화된 한국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가 가능할까. 착취와 폭력들은 지금보다 일상화될 것 같았다. 무력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런 마음들을 일기장에 빼곡히 끄적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캠프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고, 깊게 문제를 파고, 함께 캠페인과 액션을 만든다면, 조금은 실마리가 보일 것 같았다.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만나며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변화를 만들길 희망하고 기대한다. 우리가 차곡차곡 쌓아 올릴 고민의 힘을 믿는다.

캠프에서 간식으로 토마토를 먹다가 ‘토마토로 바위치기’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세상도 바뀌겠지』에서 유비는 ‘토마토 던지기/바위치기’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계란을 토마토로 바꾼 표현이 인상 깊고 멋져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토마토로 바위치기라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이들이 강한 이들과 싸울 때 쓴다. 그리고, 무모하거나 불가능하며 승산이 없는 일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히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문제를 깊게 파고, 분석하며 단계별로 목표를 짜고 캠페인을 만들고, 점검하고 우리가 바라는 변화는 무엇인지 되묻고, 서로를 돌보며 하면 된다. 처음에는 토마토 몇 개가 바위에 살짝 묻어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토마토의 붉은 색깔이 바위에 물들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바위가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으로 물들 것이다. 동료들이 바위를 향해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 주황색의 야채들을 던져 줄 테니. 먼저, 나는 토마토를 던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