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태(녹색당원)

 

사실 이번 평화캠프에 대해서는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알고 있었다. 최근까지 녹색당 정책팀에서 활동해오며 군사주의와 국제분쟁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던 나에게 어떤 의미에서 이번 캠프는 가장 관심이 많이 가고 필요한 행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3박 4일 캠프”라는 심리적 장벽은 컸고, 과거 함께 활동했던 동료가 참여할 생각이 없냐고 두 번이나 물어보지 않았다면 끝까지 홍보문만 보다가 “백수가 됐는데 참가비가 10만원이나 되네”라는 핑계를 들며 미적거리다가 신청하지 않았을 터다.

그래도 지금은 옆구리를 찔러준 그 동료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시민사회 내에서 “연결되는 경험과 운동”을 얘기할 때마다, ‘우리가 “정말”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다소 삐딱한 의심을 하는 나에게도 (어쩌면 진짜로) 연결되는 경험을 준 4일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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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는 문제의식, 연결되는 사람들

사실 새로운 사람들과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을 많이 힘들어하는 나는 캠프 참가 전날부터 몸이 배배 꼬이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첫날 평택평화센터에서 이끌어주신 캠프 험프리스와 오산 공군기지 투어를 돌고 숙소로 와서 짧게 자기소개를 하는데, 몇 명의 참가자가 ‘낯을 가려 걱정인데 큰맘 먹고 왔다’는 얘기를 해줬다. 나는 중간쯤 앉아있어서 이런 얘기들을 듣고 내 소개를 하니, 그때부터 그나마 긴장한 마음이 다소나마 풀렸던 것 같다.

사실 녹색당 활동을 소개할 것도 없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더 이상 일반 대중들에게 전혀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태평양 도서 국가들의 해수면 상승 문제나 캘리포니아의 산불, 2년 전 국토의 1/3이 잠긴 파키스탄 홍수 때까지만 해도 기후위기에 대해 남일 바라보듯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와 폭염 같은 재난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미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한계선이라는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온도 1.5도를 넘었다는 연구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기후위기와 군사주의의 관련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회자되고 있다. 군사부문 탄소배출량을 국가 단위로 비교한다면 세계 4위(전 세계 배출량의 5.5%)지만 군사부문 탄소배출량은 파리협정에서도 보고 의무가 없다. 또한 군사부문에서의 그린워싱은 어떤가? 미국 국무부는 이미 2008년부터 “More Fight, Less Fuel(전쟁은 늘리고, 배출은 줄이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어 준비해왔으며, 그레타 툰베리의 팔레스타인 옹호 발언에 이스라엘군은 인간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신들의 무기가 ‘친환경’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번 캠프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눈이 뜨이는 새로운 내용이 많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가자 학살에서 무기로 인한 탄소배출보다 재건 등의 장기적 탄소배출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점, RE100이 산정 범위에 따라 실제 재생에너지 비중이 널뛰기하듯이 군사부문 배출량도 전쟁의 직간접적 탄소배출을 대거 누락한다는 점이 그렇다. 기후위기와 군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은 항상 계급적이고, 오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문법을 따른다는 점에서 닮았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공유했다. 그리고 사회운동 일반론의 관점에서 캠페인 전략은 구체적이고 기한을 두며 측정가능한 목표(SMART 목표설정)를 두고 계획해야한다는 것이나 다양한 비폭력행동 사례들을 유형화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분량상 다 소개할 순 없지만(캠프에서 나눈 폭넓은 주제들을 다 쓰자면 이 글은 보고서가 돼야한다!) 이 모든 내용들이 향후 활동과 연구를 위해 풍부한 자양분이 될 내용이었다. 실제로 토론을 하며 경남도교육청의 무기업체 취업연계 프로그램에 대해 청소년 기후단체가 함께 대응하자는 실질적 작당모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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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물론 모르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됐으나, 이번 평화캠프에 처음 참여하면서 가장 신선했던 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이었다. 누구도 그걸 나서서 얘기하진 않았지만 매일매일의 프로그램과 시간들이 참가자들에게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구성돼있었다.

먼저 첫날 소강당에 모여서 참가자들이 작은 홈그룹을 만들어 나흘간 서로의 출석여부며 건강 상태를 챙겨줄 수 있게 한 것이 생각난다. 또한 아이스브레이킹 이후 홈그룹 첫 번째 토론거리로 나흘간 서로 지킬 캠프의 규칙을 만들어 공유한 것도 꽤나 인상 깊었다.

나는 녹색당 활동을 하며 “우리 모두는 녹색당의 주체이며, 나이, 성별, 성지향, 성별정체성, 장애여부,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혼인여부, 가족관계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다”로 시작하는 녹색당의 평등문화약속문에 대해 남모르게 꽤나 애정하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우리 스스로 규칙을 만든다는 것은 또다른 방식으로 참가자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하는 듯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성별고정관념이 담긴 표현 사용하지 않기”부터 “서로 다정하기 말하기”, “자주 환기시키고, 손씻기”까지 이번 평화캠프의 약 15가지 <우리의 약속>이 나왔다.

모두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도 나에게는 새로웠다. 사실 첫날 주요 활동이 이뤄졌던 소강당에 도착하자마자 내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난 허리가 안 좋은데 의자도 없이 하루 종일 여기 바닥에 앉아 있어야한다고?”였다. 그런데 웬걸? 행사 중에 그렇게 허리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상했던 걸까?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다들 각자에게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누구는 완전히 대(大)자로 누워서 듣고, 누구는 옆으로 머리를 괴고 눕고, 누구는 잠시 피곤하면 방에 다녀오고… 그러면서 각자에게 캠프에 참여하기 가장 편한 몸과 마음의 위치를 잡는 것 같았다. 나도 조금 따라 해볼 마음이 생겼다.

매일 아침마다 본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 준비된 다양한 몸풀기 시간도 잠깐이나마 서로 마주보고 깔깔거리며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주는 데 도움이 됐다. 또한 조별 토론 내용을 전지에 적어서 발표를 했는데, 중학교 이후로 전지에 내용을 적어 발표하는 걸 처음 해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물성을 느끼며 “직접 손으로 적어보는 행위”가 새삼스레 새롭게 다가왔다. 무언가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분명해지고 명확해지는 듯 한 뿌듯함(?)이 있달까?

여기에 더해 공식 프로그램이 끝나고 9시부터 새벽까지 피곤함을 참으며 이어진 피스 바(Peace Bar), 각자가 자신의 활동 공간에서의 고민을 나눈 캠페인 클리닉, “초상화 그려주기”, “손 마사지”, “사주풀이”, “마음돌봄 쑥뜸” 같이 참가자들의 숨겨진 재능을 나누며 서로 가까워질 기회를 준 “줌 쿠폰”까지…(내가 알려준 “내 얼굴에 맞는 안경 고르기”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글로 다 전달이 안 되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같은 방을 쓴 한 참가자는 자신도 평화캠프에 처음 왔다며, 이런 캠프 진행을 보고 “이분들은 평화와 비폭력 소통에 정말 ‘찐’”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방법과 과정으로서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오며 이런 문구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전하는 측이 자신의 가치관을 검증하는 일 없이 강요하려는 태도로는 받는 측과의 사이에서 건전한 커뮤니케이션을 해 나가지 못한다. 설령 그 사람이 전하려는 것이 평화나 민주주의였다고 해도 거기에 자신을 반영한 형태의 흔들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 나오는 것은 프로파간다로서의 영상이고, 그 주고받음에서는 결코 발견이 나오지 않는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200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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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을 찾아서 다시 일상으로

어쩌다보니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세월호 진상규명 조사도 하고, 녹색당에서 정책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나이로는 곧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시기가 되지만, 나는 최근 또 다시 백수가 됐다.

과거 있었던 공간에서 해소되지 않는 차이와 어긋남 때문일까. 신영복 선생은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했으나 그것이 찰나의 전율을 지나 일상 속에서 살아지는 것, 지속가능하게 진정한 ‘입장의 동일함’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사실 시간이 갈수록 고민은 많고 전망은 별로 없는 느낌이다. 활동가와 연구자 사이의 정체성도 혼란스럽고(이건 활동가와 캠페인 활동 방식에 초점을 맞춘 캠프 내내 고민되기도 했다), 통합되지 않는 나의 궤적 속에서 나의 활동 공간과 삶의 중심은 어디인가에 대해서도 갈피를 잘 못 잡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평화캠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도 광야에 서있다는 느낌은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몇 가지 흥미로웠던 주제들과 함께 문제와 질문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기록적 폭염에도 이번 여름이 앞으로 가장 덜 더운 여름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평화캠프 첫날에는 일을 시작한 지 이틀 밖에 안 된 20대 기사가 중학교 급식실에서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다가 열사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됐고, 이 글을 쓰고 오늘(8월 29일)도 역사적인 기후헌법소원 결과에 대해 언론은 “승리”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나, 헌법재판소는 2030년 이후의 탄소감축 장기계획이 없는 것이 위헌이지 현재의 절망적인 정부계획은 하나도 문제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런 와중에도 삶과 지구를 불태우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학살, 무기거래는 계속되고 있다.

오는 9월 7일에는 기후 대신 세상을 바꾸고, 자본주의를 바꾸고, 전쟁을 만들어내는 군사주의를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강남에 모여 목소리를 높인다. 전쟁없는세상도 기후정의행진에서 인간과 지구 생태계의 기반을 파괴하는 군사주의에 맞서는 길에 함께 선다고 한다. 모든 문제에서 ‘입장의 동일함’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나도 이번 평화캠프에서 느낀 작은 희망과 연결됨을 기억하며 용기 내어 이들과 함께 행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