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늘 ‘새로운 사회운동’, ‘이전에는 없던 운동’ 이랬던 것 같다. 출발이 좀 그렇기도 했다. 자료라고는 영어밖에 없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어 영어로 된 자료를 함께 읽으며 번역을 하고 공부를 하는 것으로 병역거부운동을 시작했다. 영어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도 한국에 합의된 번역어가 없어 양심적 병역거부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냐를 먼저 논의했어야 했다. 처음 병역거부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퀘이커 평화운동단체인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AFSC) 동아시아 담당관을 만나서 대만의 대체복무제도 도입 소식을 들은 것이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할 때도 영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War Resisters’ International(WRI)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신재욱 활동가의 걸출한 논문, <군 민주화 운동가들의 정체화 과정 연구: 1987-1993 군인·전경 양심선언을 중심으로>에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한장호(가명) 선생님을 2001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으면서도 그 운동(양심선언)과 이 운동(병역거부)을 이을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열군)의 박석진 활동가를 만나고 병역거부운동은 비로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동이 아니라 80, 90년대 군민주화운동에서 일부 출발하였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전쟁없는세상이 기획한 2005년 병역거부 전시회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양심선언이 2012년 전시회에는 포함되었다. 그랬다고는 해도 병역거부운동이 이런 양심선언을 다시 캠페인으로 고려하는 등 과거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새로 맺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박석진의 사례 정도를 끼워넣기 한 것에 불과했다. 하기에 논문의 국문초록에서 저자가 ‘한국 민주화운동사에도, 평화운동사에도 기입되지 않은 해당 시기의 군 민주화 운동의 내용을 드러내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간주되는 평화운동과의 연속선상에 위치시키려 했다’는 구절에서는 살짝 소름마저 돋았던 것 같다.

논문의 내용은 더 훌륭했다. 특히 양심선언 당사자뿐만 아니라 여성활동가 포함 당시 운동가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포함하면서 이 운동을 다면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귀한 인터뷰 자료를, 한두분도 아니고, 정말 고생이 많았고 진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본문에 밝힌 것처럼 석사과정생이면서 열군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이렇게 훌륭한 연구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논문 발간 행사에 참석하신 인터뷰이들이 말씀하셨듯이 어디가서 이런 얘기를 한 번도 입밖에 내본 적이 없었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소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저자의 인간성(응?) 등등이 모두 매우 긍정적으로 작동해서 논문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특히 이 논문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금의 병역거부운동과 과거의 군민주화운동은 어떤 연속성/불연속성을 갖는가’라는 질문을 논문이 계속 던졌기 때문이다. 두 운동이 10여년 정도의 갭이 있고 활동가들이 서로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이 연구는 병역거부운동이 이 치열한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를 다시 사고하게 만들었다.

 

12_1-강철민기자회견

이라크 전쟁 당시 파병 반대를 외치며 병역거부를 했던 강철민 이등병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강철민의 병역거부 또한 선택적 병역거부였다.

 

연속성

23년 전에 한장호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와 우리 운동의 차이를 먼저 생각했었다. 논문에도 저자가 잘 설명한 것처럼 “국민의 군대”, “애국 군인, 전경”, “국방 본연의 의무”와 같은 수사들은 당시 병역거부자들의 “차마 총을 들 수 없어요”,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군사주의 문화 비판” 등의 철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당시에는 2003년 한국군 파병을 비판하며 부대를 이탈한 강철민도, 2006년과 2008년 각각 전투경찰로 부대를 이탈한 유정민석이나 이길준도 등장하기 전이라 우리의 경험이 부족했던 탓이다. 병역거부의 이유나 병역거부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지 못했다. 지금은 병역거부운동에서 이러한 병역거부 행위를 가리켜 선택적 병역거부 혹은 부분적 병역거부라고 부른다. 양심선언과 병역거부운동이 만나는 첫번째 지점은 바로 선택적, 부분적 병역거부였다.

선택적 혹은 부분적 병역거부는 특정 상황에 반대하는 개인 무력 사용, 예를 들어 전쟁의 합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거나 또는 특정 유형의 무기에 반대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한장호 선생님을 비롯한 군민주화 운동가들도 강철민 이병도 모두 군입대를 했지만 군대의 어떤 상황이나 정책, 명령 등에 반대하거나 따를 수 없어 그 이후 군복무를 거부하였다. 이 개념은 또 병역거부 신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할 수 있다는 원칙과도 연결된다. (한국 대체역심사위원들의 안훌륭하신 분들은 당췌 이 점을 이해 못하셔서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이 형성되는 과정을 신념이 뒤집힌 것을 오해해 자꾸 대체역 신청자들을 떨어뜨리려고만 하신다고 해서 걱정이다)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한 사람도 입영 당시에는 군복무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얼마든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될 수 있다.

두번째로 드는 생각은 ‘애국 군인이 복무할만한 국방 본연의 의무를 다하는 국민의 군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반전평화운동으로 병역거부운동과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반전평화운동이라는 것이 결국 일차적으로는 전쟁을 종식시키는 운동, 더 나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반전, 반핵, 군축을 모토로 한, 1990년대 말 이후에 등장한 반전평화운동이 있다. 논문 속의 군민주화운동이 목표로 삼았던 군부독재나 미제국, 전의경제도 혹은 군대, 그리고 내부의 악습 등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가능케 한 폭력기구였다. 현재 병역거부운동의 대안 중 하나인 대체복무제도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폭력기구에 대한 평화주의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중 전의경제도 같은 경우는 군민주화운동에서 제기되어 결국 2006년 유정민석 (퀴어), 2008년 이길준 (전의경제 폐지 농성, 양심선언이라는 단어 이때도 등장)이 등장하고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는 전의경 출신 예비역 모임’의 결성, 2011년 12월 26일에 마지막으로 전경 3211기를 차출하여 2013년 9월 25일에 폐지되었다.

세번째는 두 운동 모두 시민불복종으로 보다 노골적, 집단적, 정치적 행동이었고 이것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증인들을 보면 알수 있지만 병역거부 자체는 개인적인 것이고 얼마든지 개인적인 행동으로 만들 수 있지만 군민주화운동가들과 비여호와의증인 병역거부자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군민주화운동의 성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논문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알기 어려웠지만 국방, 외교, 안보 등의 분야에서 적다면 적은 인원으로 이슈를 단박에 물밖으로 끌어올려 20년도 안되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은 시민불복종의 힘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박석진 활동가가 살아있는 연속성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두 운동을 잇는. 현재 평화운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불연속성

한장호 선생님은 병역거부자들을 두고 “과거 군민주화 운동가들의 활동을 발전시켰다”고 표현하시기도 했는데 내가 볼 때 두 운동은 군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근본적 차이가 있었다. 단적인 증거가 양심선언자의 경우 형기를 마치고 군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병역거부자의 경우 다시 군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없었다. 이는 강철민 등의 선택적/부분적 거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게 되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1년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민방위로 편입됨) 특정한 혹은 부분적인 한국군에 대한 불만과 이어지는 불복종 과정이 군대의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한 개인적 숙고로 이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군대에 대한 입장 차이이기도 하지만 어떤 행동 혹은 운동을 어떻게 사고하는가에서 오는 차이이기도 하다. 어떤 행동이 더 좋은 행동이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병역거부라는 행위를 어떤 특정 운동을 위한 도구로 사고할 경우 그 임무를 다했다 생각하면 특히 복무기간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는 군대에 재복귀해서 빨리 제대를 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가장 불연속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운동의 주체, 운동 방식, 조직 형태 등에서 오는 차이이다. 군민주화운동은 당사자들이 모두 구속된 후 끝난 당사자운동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평화운동이라기보다는 인권운동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병역거부운동도 그런 측면이 꽤 존재하며 모든 운동이 칼로 무 자르듯이 딱딱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는 것은 안다. 이것은 군민주화운동가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운동 전략의 문제, 특히 여성활동가들의 위치와도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병역거부운동은 남성활동가들(병역거부자들)의 불안전성(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 때문에 여성활동가들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였는데 선례가 없는(없었다고 생각한) 운동으로 새롭게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합의와 협력이 매우 중요한 시기에 여성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서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병역거부운동의 비당사자, 비남성 활동가들은 군민주화운동의 신경아(가명), 한수형(가명)님의 경험에서 매우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국 이 활동가들이 군민주화운동의 리더십에서 배제가 되었던 것이 운동의 소멸에 일정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병역거부운동도 이 문제로 부침을 겪었던 터라 열군에서 했던 첫 논문 행사에 참석하신 신경아 님께는 선생님의 존재를 일찍 알았거나 아니면 계속 활동을 하셨더라면 저희가 많은 도움을 받고 몇 가지 시행착오들은 겪지 않았었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이 논문이 빨리 책으로 출간되어 더 널리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