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참여연대)
이지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새해라니.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도 미처 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12월 3일 밤 이후로 멈춘 것 같은데 2025년이 도래했다.
2024년 12월 3일 22시 27분경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진짜일 리 없어.)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이 들이닥치며 본관에 투입되고 입구가 봉쇄되었다. (아, 현실이구나 정신이 차려질 무렵) 번화가 일대에 탱크가 지나갔다는 둥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봉쇄된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모였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과 계엄군의 국회 점거, 포고령 발표 등 믿기지 않는 현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겪은 세대인 나는 국가와 사회가 시민을 지켜주지 않을 거라는 의심에 두려움이 커졌다. 책을 통해 배운 군부 정권의 독재, 권위주의 통치 행위, 그로 인해 배제되고 희생된 사람들이 떠올라 요동치는 마음을 붙든 채 귀는 뉴스 생방송에 시선은 텔레그램 대화방에 집중했더랬다.
우리는 늘 광장에 있었다
12.3 내란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보았다. 강력한 군사력과 군대가 평화를 지키고 시민을 보호할 거라는 신화가 깨지는 것을. 수뇌부의 명령에도 ‘제복 입은 시민’ 군인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했기에 부상 등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 논점은 애초부터 국회에 무장한 군인이 투입되면 안 된다는 명제를 희석시킨다. 계엄군들은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였고 실탄을 소지하고 있었다. 윤석열, 김용현, 노상원, 여인형 내란 가담자들이 비상계엄을 계획하고 실시할 때까지 장성 그 누구도 이 부당한 명령에 ‘항명’하지 않았다.
계엄 당일, 안귀령 민주당 대변인은 계엄군이 겨눈 총구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뒤이어 “떨어져”라는 경고와 함께 군인이 뒤로 물러났고 안 대변인은 계엄군들을 향해 “부끄럽지도 않냐”고 소리쳤다. BBC는 ‘올해의 인상적 이미지’로 이 장면을 선정하며 안 대변인을 “두려움 없는 여성”이라고 표현했다. 청년 여성 정치인의 행동이 국내에서도 회자되었으나 일각에서는 훈수가 이어지고 있다. “총을 빼앗으려던 실랑이 도중 발포됐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큰일 날 수 있었던 상황인데 여자들만 모르네”, “안귀령 상대로 참은 군인이 큰 일 했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절대 하면 안 되는 짓”이라며 군대에 가지 않은 여성의 무모한 행동으로 치부해 버렸다.
광장은 응원봉을 든 여성 시민들이 대거 등장하며 후끈해졌다. 여의도와 광화문, 남태령을 넘나드는 그들의 폭넓은 연대가 주목받는 가운데 광장에서 퀴어, 장애 등 다양한 정체성이 어우러지고, 여성들을 비롯한 사회적 타자들이 소수자의 권리와 인권을 요구하는 것, 그 시도 자체가 변화다. 그러나 응원봉을 든 여성 시민들에 ‘대견하고 기특하다’는 시선은 시혜적이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여성들은 늘 광장에서 목소리 높이고 행동해 왔다. 사회가 그들을 정치적 주체로 호명하지 않았을 뿐, 우리는 언제나 서로서로 돌보고 연대하며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왔다. 안 대변인은 무모한 행동을 한 여성이고, ‘MZ다운’ 응원봉 소녀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사인가? 광장에 이러한 훈수와 열광 그리고 차별적인 문화가 공존하는 그 틈에 남성성을 기반으로 한 군사주의가 존재한다. 마치 총을 뺏을 기세로 달려드는 여성의 공격적인 모습은 남성성으로 점철된 군사주의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위협일 것이다.
전쟁터에 나올 군인과 사용할 무기가 없다면 ‘전쟁 없는 세상’은 현실이 된다. 낭만적이라 비난하는 이들에게 높은 군사력, 강한 무기 체계를 갖춰야만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 강력한 군대 만이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가? 무력으로 만드는 평화는 지속 가능한가? 군사적 행동은 결국 더 강한 무기와 병력을 필요로 하고 충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총대를 먼저 내리지 않는 이상 이 딜레마는 계속될 것이고 군사적 긴장은 완화되기 어렵다. 국익을 해칠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안보를 튼튼히 하는 일. 이 오래된 구조 안에서 지키는 주체와 지키려는 대상은 누구인지, 정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을 두고 있는지 질문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비상계엄령’은 새롭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줄곧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을 고수해 왔고 협상과 같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가짜’라고 폄훼했으며 군비 증강과 군사력 강화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상의 차별과 폭력, 국가 간 우발적 충돌이 쌓여 발발하는 것처럼 ‘비상계엄령’은 윤석열 정부의 예견된 결말일지 모른다.
광장에서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비상계엄 이후 달라져야 할 사회는 어떠한가. 일명 ‘폭주하는 남성성’이 저문 자리에 연대와 돌봄의 비중이 늘어날 때 평화적 상상력 또한 싹틀 수 있다. 여성들의 힘은 “우리의 해방이 연결돼 있다”는 교차적 인식에서부터 나온다. 광장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소수자의 목소리가 크고 깊게 울려 퍼져야 한다.
광장에 모인 당신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넨다. 광장에서의 연대는 큰 희열을 주지만 때로는 지칠 수 있다. 내란 사태 이후 많은 시민들이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호소한다고 전해진다. 특히 활동가야말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매 순간 밝혀지는 사실과 정황, 증거 등을 모니터링하고 집회라는 고강도 야간 노동을 쉼 없이 지속하다 보면 번아웃을 마주할 수 있다.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정의, 진실을 되찾는 일만큼 일상의 연대, 서로 돌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세계는 연결되고 연대할수록 강해지고, 윤석열은 반드시 파면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