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길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 꿈꾸며, 조그만 일이라도 보탬되는 일을 하고자하는 시민)
며칠 전, ‘MADEX 2025’ 국제해양방위산업전이 열린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 들어갔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전시장을 ‘다크투어’하러 간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해 살인무기장사꾼들의 잔칫집이었습니다.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걷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전시장 한 켠, 풍산 부스에 전시된 총알들 앞에서 발이 멈췄습니다.
그 중 ‘저위험탄’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탄환이 있었습니다. 직원에게 물었지요.
“이건 어떤 탄환인가요?”
“범죄자에게 기절만 시키는 용도입니다.”
그 옆에 총알들도 설명해주던데, 갈수록 가관이었습니다.
“이것들은 훈련용입니다. 훈련할 때 쓰는 거죠.”
“그러면, 맞아도 안 죽는 건가요?”
“맞으면 죽죠…”
옆에 전시된 다른 총알은 더 끔찍했습니다.
“이건 단단한 곳에 부딪히면 아주 작게 파편으로 부서지게 설계된 탄입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나요?”
“총알이 몸에 박히면 탄만 빼내면 됐는데, 이건 촘촘히 박혀서 아예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 말을 듣고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끔찍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총알을 이스라엘에서도 사가잖아요. 그걸로 사람을 죽이는데 쓰일 수도 있잖아요. 이런 일을 하시는 게 괜찮으세요?”
제 물음에 직원은 당황한 듯 자리를 피했습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온몸으로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이 전시장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군함 모형 앞에서, 전투기 시뮬레이터 앞에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해군 함장 모자를 씌우고, 선글라스를 씌워 미친 듯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잠수함 모의운전석에 앉히려드는 엄마도 보이더군요.
아이들은 헬쓱하고 지친 얼굴로, 최신 무기들에게 정신 팔린 부모들을 말없이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정작 아이들은 그 현란한 빛과 화면들 앞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부모는 없었습니다.
저는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왜 두려움과 폭력의 세계로 몰아넣으십니까? 당신들이 지금 아이의 영혼에 무엇을 새겨 넣고 있는지 정말 모르십니까?”
하지만 그 말을 꾹 눌러 삼켰습니다. 대신 조용히 초소형 카메라로 찍기만 했습니다.
그 후 열린 MADEX 저항행동 집회 두 시간 동안, 그 슬픔이 몸을 짓눌렀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그날 ‘IAI(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가 초대된 사실도 분노를 더했습니다.
팔레스타인 학살이 이어지는 와중에 한국이 이스라엘과 손잡고 무기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열리는 이 무기박람회에, 학살 당사자가 초대받은 것입니다.
전시장 중앙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LIG넥스원, KAI, HD현대 같은 대기업들의 화려한 부스가 자리했습니다.
한화오션의 경우, 지금도 하청노동자들에게 540억 원이 넘는 손배소를 걸어놓고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그날 집회 때 들었던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김형수 지회장님이 철탑 위에서 8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라는 이야기는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지요.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지 말라.”
하지만 지금의 무기산업은 타인의 불행을 팔아 돈을 쌓는 산업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을 장난감처럼 포장해 보여주는 일은 아동학대와 다름없습니다.
돌아오는 길,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오래 담갔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맥주 한 잔 마시고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떠 수행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말 괜찮지 않았습니다.
괜찮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길을 함께 걸어주는 벗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더 이상 이런 잔혹한 산업과 어리석음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한 걸음씩 더, 다같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흐뭇한 삶을 가꾸는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남깁니다.